삿3장 31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
김창진 목사 2019.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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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께끼 같은 사사
오늘 본문은 사사 시대의 3번째 사사인 삼갈에 대한 말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갈은 돌라(삿10:1), 야일(삿10:3), 입산(삿12:8), 에론(삿12:11), 압돈(삿12:13)과 함께 짧은 기록으로 6명의 소(小) 사사로 불립니다. 그런데 다른 소(小) 사사들은 사사라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어느 지파 출신인지 알 수 있는 정보도 있고,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지냈는지, 죽은 후 어디에 묻혔는지 언급하지만, 삼갈은 사사라는 칭호도 붙지 않고, 어느 지파 사람인지, 얼마 동안 사사로 활동했는지, 사사로 활동 후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삼갈을 수수께끼 같은 사사입니다. 어떻게 보면 무명에 가까운 사사입니다.
삼갈이 언제 사사로 활동했을까? 본문 말씀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라는 말씀에서 삼갈이 에훗이 죽은 후 사사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는데, 여자 사사 드보라의 등장 배경을 말씀하는 사사기 4:1에는 에훗의 죽음만 언급하며 삼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추론하면, 삼갈은 에훗이 죽고, 여자 사사 드보라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 가나안의 힘의 공백기에 블레셋의 압제로부터, 사사로 부름을 받고 활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단, 한 구절의 사사 삼갈은 어떤 인물일까? 몇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 어느 지파?
일반적으로 사사가 등장하면 그가 어느 지파 출신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갈은 어느 지파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삼갈이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다는 말씀으로 미루어 블레셋과 근접한 유다 지파나, 단 지파 출신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본문은 삼갈이 어느 지파 출신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아낫의 아들 삼갈’이라고만 합니다.
보통 누구의 아들 하면 아버지를 살펴서 지파를 알 수 있는데, ‘아낫’은 삼갈의 아버지 이름이 아닙니다. ‘아낫’은 당시 가나안 족속이 섬기던 여신 이름입니다. 삼갈을 ‘아낫의 아들’이라고 표현하므로, 그의 부모가 가나안 문화에 깊이 물들어 아들을 아낫 여신에게 바쳤다는 의미로 ‘아낫의 아들’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아낫의 아들’은 삼갈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학자들이 추론하기도 합니다. 또한, 삼갈이란 이름의 뜻이 ‘칼, 검’인데, 이것은 바벨론식 이름으로 이방인에서 이스라엘로 귀의한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이런 정황들을 보면 삼갈은 제대로 된 신앙 교육, 율법의 교육을 받지 못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블레셋의 핍박과 압제를 보고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그것은 삼갈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삼갈을 통하여 이루신 일입니다.
● 블레셋 족속
삼갈이 죽인 블레셋은 어떤 족속인가?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눈엣가시 같은 족속입니다. 블레셋은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에게해나, 크레타섬으로부터 이주한 그리스계열의 해양 세력으로 다곤이라는 반인반어(半人半漁)를 숭배합니다. 블레셋은 한때 애굽을 공격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졌으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갈 때 일주일이면 갈 수 있는 해안 길을 두고 광야로 돌아간 이유가 지중해 해안에 있는 블레셋 족속 때문임을 출애굽기는 말하고 있습니다(출13:17). 그뿐만 아니라.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온전히 차지하지 못한 곳이 블레셋 땅이었습니다(수13:2).
삼손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40년 동안이나 압제하였고(삿13:1), 엘리 제사장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삼상4:11). 이러한 블레셋의 기세가 꺾인 때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후이고(삼상17:50),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블레셋은 멸망합니다.
▶ 그러한 블레셋 족속은 에훗이 죽고, 가나안 왕 야빈이 득세하여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드보라가 사사로 등장하기 전까지 힘의 공백기에 이스라엘을 압제합니다. 그 모습을 본 삼갈이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입니다.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다는 것은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인 사건(삿15:15) 이상으로 대단한 사건입니다. 삼손은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하나님이 택하셨고, 특별한 능력을 주셨지만, 삼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평범한 삼갈
삼갈은 농부로 평범하게 지낼 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의분을 갖게 되었고, 그런 삼갈에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서 자신이 가진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는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분명 사사로서의 활약입니다. 그래서 본문 끝에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라고 말씀하면서 삼갈을 에훗과 같음을 말씀합니다.
▶ 삼갈이 사용했던 소를 모는 막대기는 약 2.5m 길이로 한쪽 끝에 뾰족한 것이 달려 소를 몰아갈 때 사용하고, 또 다른 한쪽 끝에는 끌 모양의 쇠붙이가 있어 밭을 손질하는 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전쟁의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삼갈은 자신이 일상적인 삶 속에서 사용하던 것을 가지고 싸움에 능한 블레셋 사람을 쳐서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이러한 삼갈의 활약이 본문 단 한 절로 끝납니다. 더 이상의 사사로서의 활동도 없고, 죽음에 관한 말씀도 없습니다. 아마도 삼갈은 이스라엘을 압제했던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는 일을 하고,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갔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
수수께끼 같은 사사, 무명에 가까운 사사 삼갈을 보면 하나님은 능력에는 제한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가 농부든, 목자든, 어느 지파든, 부모가 누구든, 이름이 무엇이든, 가진 것이 무엇이든, 과거가 어떻든, 하나님의 능력에는 제한이 없어서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면 들어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거기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배경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하나님께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음을 삼갈이 보여줍니다. 문제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 비록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약하고, 능력이 없고, 극히 평범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능력이 무엇이 있습니까? 삼갈처럼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는 능력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자기 백성을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하고,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으로 하나님께 간청하고, 성령의 검인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갈 때, 자기 백성을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삼갈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비록 소를 모는 막대기지만 그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듯이, 우리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 영혼들이 우리의 가족일 수 있고, 친구일 수 있고, 이웃일 수 있고, 나를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 삼갈이 블레셋의 압제와 핍박을 보고 자기 백성에 대한 연민과 의분을 가졌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소를 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듯이, 우리 주변의 예수님을 모르는 영혼들, 방황하는 영혼들, 잠자는 영혼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과 안타까움이 있다면 비록 우리가 가진 능력은 작지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갈처럼, 평범하지만 제한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구원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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