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여호수아

수 14장 6-15절(이 산지를 주소서) - 강대식

by Preacher 2023. 12. 22.
728x90
반응형

수14장 6-15

이 산지를 주소서

강대식 목사 2020.07.12

한가족교회 http://ahttp://afamily.ijesus.net/

 

1. ‘이 산지’는 사탄의 왕국, 기럇 아르바 였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수14:15) ‘기럇 아르바’는 아르바의 성읍이라는 뜻이다. 아르바는 아낙의 아비였다. 헤브론의 옛 이름이 기럇 아르바이다. 헤브론은 ‘친교’, ‘동맹’, ‘연합’의 뜻이다.

 

아브라함은 얼마동안 이 부근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거주하였으며(창13:18,35:27), 사라는 여기서 죽고, 아브라함은 묘소로서 막벨라 굴을 샀다(창23:2-20). 이삭과 야곱도 한때 헤브론에 머물렀다(창35:27,37:14) 헤브론은 예루살렘의 남쪽 30km 지점에 있다. 과연 ‘이 산지’라고 할만한 곳이었다. 그것은 요단 강 서쪽에서 가장 높은 지점(표고 927m)을 차지하는 성읍이며, 둘러싼 산들은 표고 1,000m를 넘는다.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전에 세운 곳이라,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다”(민13:22)고 한다. 헤브론은 `도피성'으로 되고(수20:7),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에게 분여(分與)되었다(수21:11). 기럇 아르바는 사탄의 왕국이고, 아르바는 사탄의 큰 종인 셈이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처음 정탐했을 때 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곳이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13:28)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라”(민13:32-33)

 

사람들은 크고 견고한 성, 큰 거인들을 보면 두려워한다. 그래서 크고 견고한 것을 만들려 하고, 거기에 속할려고 하고, 크고 위대해질려고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 만큼 위안과 보호막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큰 문 넓은 길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요 길이라 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우리 주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때 저들은 높이 쌓은 바벨탑을 자랑하였다.

 

이 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복하는 사람은 나이 어린 소년 다윗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인들만 보면 겁을 먹는 DNA가 있었다. 골리앗이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조롱하였지만 용기 있게 나서는 자가 없었다. 골리앗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고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었다.

 

골리앗을 향해 나선 사람은 아버지 심부름 나온 어린 소년 다윗이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다윗이 주머니에 있는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졌다.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 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벴다. 큰 산도 스룹바벨 앞에서는 평지가 되는 법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슥4:7) 믿는 자들을 가로막고 위협하는 큰 산 견고한 성 거인 아낙 자손들, 기럇 아르바도 다윗, 스룹바벨, 갈렙 앞에서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분은 더 크고 영광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 ‘이 산지’는 헤브론이 되었고 갈렙과 그 자손의 기업이 되었다.

 

“오늘 내가 팔십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그곳에는 아낙 자손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2) 팔십오세이면 편안히 죽을 준비나 하고 과거 영광의 추억에나 젖을 나이인데, 갈렙의 기상은 골리앗 앞에 나선 어린 소년 다윗 만큼이나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기에 나이에 구분이 없다.

 

모세는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고,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우리 손이 하는 일을 견고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한 걸 보면 팔십이 가까웠을 때의 기도이다.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건축자들은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지만 그 돌로 머릿돌을 삼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거름더미에서 일으키사 영광의 자리에 앉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갈렙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말씀의 사람이었다. 다른 열 정탐꾼들은 다 백성들을 낙담케 하고 밤새 울도록 통곡하게 하였다. “내 나이 사십 세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를 보내어 이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므로 내가 성실한 마음으로 그에게 보고하였고 나와 함께 올가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수14:7-9)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고 성실한 마음이다. 여호와께 충성한 자가 받을 보상은 발로 밟은 땅을 영원히 그와 그 자손의 기업으로 받는 것이다. 후손들에게 물려줄 것은 돈과 부동산이 아니고, 여호와께 충성하고 성실한 마음과 믿음이다.

 

굳건한 믿음은 말씀에서 난다. 소유와 환경에서 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다. 갈렙은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말씀으로 살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믿음을 나타내고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은 부지런과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받았다. 오직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자는 속에서 불안해 하지 않고 고난 앞에서 낙심하지 아니한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속히 이루게 하신다.

 

85세의 갈렙을 지도자 여호수아는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였다.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수14:14)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사람은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사람이어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모세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정들이 광야에서 다 죽게 하였지만, 믿음의 사람,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85세가 되도록 생존케 하셨고, 마침내 이 산지, 헤브론을 기업으로 받았고 자손들에게 물려주었다.

 

우리도 생애 가운데 기럇 아르바, 이 산지를 나의 헤브론으로 빋아야 한다. 사탄이 왕국을 차리고 거인 아르바들이 거주하는 곳, 그곳이 강남 한복판이든 어디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으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소망을 가져야 한다.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야 한다.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는 믿음의 꿈과 소망이 없다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고, 말씀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말씀 공부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바이다. 믿음을 회복하는 길이요 성장하고 성숙하는 길이요 꿈과 소망을 갖는 길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아진다.

 

3. ‘이 산지’는 다윗의 고난이 끝나고 왕으로 세워지는 헤브론이 되었다.

 

다윗은 사울왕과 3천 정병들에게 쫓기어 아둘람 굴과 요새들을 전전하다가 결국 적군인 블레셋에 망명하였다. 거기서 작은 성 시글락을 아기스 왕에게 얻어 1년 4개월을 머물렀다. 아기스 왕이 사울 왕과 싸우는 전쟁터에 갔다가 사흘만에 시글락에 돌아오니 아말렉 사람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아내와 자녀들이 다 사로잡혀 갔다. 백성들이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아말렉을 치고 다 회복하였다.

 

그러고 있을 때 사울 왕의 패전과 세 아들과의 사망 소식이 들려 온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대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삼하2: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삼하5:3)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으로서 두 번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곳에서 유다의 왕으로 7년 반을 치리하였다.(삼하 2:11) 여섯 자녀를 얻었다(삼하 3:2-5). 헤브론은 갈렙의 기업으로 끝나지 않고, 다윗이 마침내 왕위에 오르는 곳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글락 시절이 있고 헤브론 시절이 있게 마련이다. 홍해 후에 광야가 있고 광야 후에 가나안이 있다. 다윗에게 있어서 시글락의 위기는 모든 것을 다 잃고 부하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위기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단련하시고 회복하고 왕권의 길을 여는 마지막 문이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 성읍은 다 불탔지만 사람은 하나도 죽지 않고 끌려가게 했고,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셨고 전화위복의 길을 여셨다. 갈렙이 이 산지, 헤브론을 받는 데 45년의 세월과 용기 있는 전쟁이 필요했다. 다윗에게도 요셉에게도 헤브론을 얻는데 10여년의 긴 세월의 시글락 시절이 있어야 했다. 요셉의 억울한 감옥살이, 다윗의 아말렉 위기, 다 시글락의 마지막 위기였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을 다 잃고 생명까지 위협을 받는 위기가 시글락 위기이다. 마지막 고난의 위기이다. 고난이 밤이 깊을수록 영광의 새벽이 가까운 것이다.

 

헤브론이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이 아니고 재앙이 되기도 한다. 압살롬은 반역의 거점을 그 출생지 헤브론으로 하였다가 멸망하고 말았다.(삼하 15:7,10). 요단을 건넌 2세대들이 가나안에서 망하는 것과 같다. 언약궤를 매지 않고 요단을 건넌 사람이나 시글락 없이 헤브론에 오른 사람의 운명이 같다. 우리가 헤브론에 오르는 것은 광야의 고난에서 훈련한 것을 영광으로 살기 위함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 고난이 말씀을 배우는 유익이 되지 못한다면 헛고생만 한 것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시글락 위기 속에 있는가? 그렇다면 헤브론의 영광이 머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룬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갸 이르매 거둘 것이다. 때가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속히 이룰 것이다.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다.

 

요 몇 주간의 주신 말씀의 순서에 주목해 보기 바란다.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모든 축복과 영광이 말씀에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형상과 왕권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레위의 축복’. 우리의 축복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손의 강하심’. 언약궤를 매고 요단을 건너게 하신다는 것이다. ‘산지를 주소서’. 헤브론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우리는 요단을 건너야 한다. 우리는 헤브론에 올라야 한다. 헤브론은 갈렙이 받은 축복의 상징이요, 헤브론은 다윗이 받은 왕권의 상징이다. 갈렙과 다윗은 한결같이 언약궤의 사람이었다. 갈렙이 헤브론을 받은 것처럼,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권을 받은 것처럼, 헤브론에 올라야 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