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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여호수아

수 23장 1-13절(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 허창수

by Preacher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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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23장 1-13

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

허창수 목사 4.12.21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나그네들입니다. 잠시 살다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어떻게 살았느냐 계산될 것입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마칠 것인가? 우리 모두의 질문이고 답입니다. 내가 떠난 후에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평가할 것입니다. 뒤에 남은 성도들이 그때 여러분들의 남긴 자취를 평가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남겨야 할 좋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바르게 살다가 불행하게 마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기스의 아들 사울입니다. 사울은 키도 준수하였으며 효자였고 겸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교만하여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전쟁터에 나가 아들과 함께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죽은 시체도 블레셋 사람들이 가져다 벽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부터 아름답게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여호수아입니다. 여호수아는 젊어서 모세로부터 가나안 정탐꾼 중에 한 사람으로 발탁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여호수아는 모세를 도왔습니다. 광야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칼로 아말렉을 쳐서 이겼습니다(출17:13).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되었을 때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삼았습니다(신34:9).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들을 쳐서 물리치고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루 분배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실패를 하였거나 잘못한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서 반석을 두 번을 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였다’고 하시며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민20:12). 모세는 마지막에 실수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 산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에게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전쟁없이 편히 쉬게 해 주셨습니다. 1절에 “여호와께서 주의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는 말씀에서 ‘주의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쉬게 하셨다’는 말은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막아주셨기 때문에 약 20 년간 전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늙어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14).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대표자들을 불러 놓고 자신의 살아온 경험들을 말하며 간곡하게 부탁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이 받은 복을 자신이 떠난 후에도 백성들이 그 복을 받기를 바라면서 간곡히 부탁하고 자신의 사명감을 끝맺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먼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라고 하였습니다(3). 여호수아 자신이 앞서고 백성들이 뒤따라 가나안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자신들이 가나안 족속을 쫓아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신 것을 너희가 다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쉽게 범할 수 있는 실수가 ‘내가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해서 성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쳐서 빼앗은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않고 남아 있는 족속이 있었는데 이후에 남아 있는 그 족속도 하나님께서 쫓아내시고 남은 땅도 차지하도록 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5). ‘남아있는 족속들을 떠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의 땅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6절에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남은 족속을 쫓아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고 전쟁없이 평안히 살수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백성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세상을 이길 수 있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첫 번째 로 권면한 것은 ‘율법을 지켜 행하라’입니다. 6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똑 같은 말씀이 1:7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젊었기 때문에 감히 이스라엘 대군을 인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시고 다음으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그 말씀을 믿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행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말씀을 일평생 잊지 않고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는데 제일 먼저 요단강이 길을 막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 물가에 들어가라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 강물은 언덕까지 넘쳤습니다. 인간적으로 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들어가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들어섰을 때 하나님께서 흘러내리던 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요단강을 마른땅처럼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수3:17).

 

여리고 성이 길을 막았을 때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앞서고 백성들은 소리도 내지 말고 조용히 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은 성을 일곱 번을 돌고 나팔을 크게 불 때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을 때 여리고 성은 무너졌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안 맞아도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켜 행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남아 있는 가나안 족속들이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7).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그들이 섬기는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며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우리를 유혹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세상의 유혹에 빠져들게 됩니다. 우리도 계명을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도 길을 막는 요단강이 있고, 요리고 성이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잡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얼마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까? 말씀의 위대함을 얼마나 믿고 말씀 중심으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고 이길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두 번째로 권면한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라’입니다. 8절에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가까이’란 ‘친근히 하다’, ‘바짝 달라붙다’, ‘떨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모든 일에 형통할 것을 백성들에게 당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낸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능력이 있어서 가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맞선자가 하나도 없이 평안히 살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9). 그래서 앞으로도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아 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10). 하나님께 가까이 하면 하나님이 대적과 싸워 이기게 해 주십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해야 합니다. 사람을 가까이 하고, 물질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실패했습니다.

 

자주 만나는 사람을 닮아 갑니다.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자기도 모르게 나쁜 사람을 닮아갑니다. 인격은 전념성이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요.

 

여호수아가 세 번째로 권면한 말씀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입니다. 11절에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느 만큼이나 사랑을 요구하십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6:5).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게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신앙문제가 생기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나안에 아직 쫓아내지 않고 남아 있는 족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결혼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12,13절에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기까지 하며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혜도 주고 물질도 부어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왕중의 왕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가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 애굽의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드렸습니다. 오늘 같으면 교단의 총회장이 불교의 최고의 높은 총무원장 딸과 결혼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들을 사랑하여 아내로 첩으로 맞아들였습니다(왕상11:1). 이방 여인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이스라엘의 왕궁으로 가져왔고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결국 솔로몬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습니다(왕상11:4).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다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십시요.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까지 들어가 확인한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제자고 뭐고 떼려 치우고 고기나 잡아먹고 살자고 바다로 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기잡는 바다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왜 나를 버리고 고기를 잡느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정말 네가 나를 모르느냐?’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물었습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시기 위해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내 양을 치라’고 하시며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믿음도 떨어지고 사명감도 없어집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은 ‘너희의 모든 심령으로 깊이 숙고하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흥망 성쇠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으니 조심하라는 교훈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맡겨준 직분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 행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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