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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여호수아

수 24장 14-18절(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 신만교

by Preacher 2023.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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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24장 14-18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신만교 목사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수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수 24: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수 24: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수 24: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모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청년 여호수아가 어느덧 노년기에 이르렀습니다. 여호수아 24장은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장으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고별사 내지는 고별설교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고별사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신 것과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음을 회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정복전쟁 가운데 친히 싸우시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수고하지 않은 땅과 건설하지 아니한 성읍과 포도원을 주셨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큰 것입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내다보며, 기쁨보다는 염려가 앞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여호수아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게 될 가나안 땅은 무인도(無人島)가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민족, 즉 가나안 7족속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유한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곳에서 살게 될 때 이방종교와 문화에 흡수될 것을 우려하는 것입니다. 이방 종교와 세속문화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놓여진 ‘유혹의 덫’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것에 약합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환경에서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염려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하게 명령하였습니다.

 

무엇을 명령하였나요?

 

1. 하나님을 경외하되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수 24: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이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여 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10여년이 넘는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을 끝내고 이제 약속의 땅에서 정착하는 단계에 와있습니다. 더 이상 천막을 치고 거친 모래바람 부는 광야를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한 곳에 정착해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편안한 삶을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광야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안하면 살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나님이 공급해주시지 않으면 의식주가 해결이 안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좋은 집에 살고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호의호식하며, 살게 됐습니다. 문제는 이때에도 하나님을 온전함으로 섬기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등 따습고 배부른데 하나님을 진실함으로 섬기겠는가를 우려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 점이 염려돼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바 계십니다.

 

(신 6: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신 6: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신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사람은 물질에 약합니다. 이게 마귀의 전략가운데 하나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넘어갔고 유럽교회가 하나님의 자리를 물질문명으로 대체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신자들도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신앙의 열정이 식은 것이 사실입니다. 가난할 때는 다른 것은 의지할 것이 없으니까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을 잘 섬기지만 부자 되고 성공해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당시 이방인이 믿고 있던 신들이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농경신이라 해서 농사가 잘 된다고도 하고 다산의 여신이라 해서 애를 잘 낳는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당시 이방 신전에서는 공식적인 매음(賣淫)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런 것들이 다 여호수아에게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경종을 줍니다. 이 세상에도 우리를 유혹하는 우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우리는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현대판 우상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것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의지 하는 것, 그것이 현대인의 우상이요, 또 다른 신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공이 신이 되고 물질과 탐욕이 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좇는 쾌락이 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코 이런 것들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겨서는 안 됩니다.

 

(마 6:24)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

 

또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우상을 삼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피조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을 빼앗는 우상들을 것들을 제거해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남편의 마음에 다른 여자가 있다거나 아내의 마음에 다른 남자가 있으면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촉구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섬기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 말은 영어에서 ‘serve’, ‘service’ 예배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경외하라’는 것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예배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한 검사의 말에 의하면 아무리 세상에서 힘 있고 권세 있는 정치인이라도 피고인 자격으로 불려오면 아들 같은 검사 앞에서도 벌벌 떤다고 합니다. 조사를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자신의 인적사항을 묻는데 너무 떨려서 자기 이름이나 집 주소도 제대로 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딴 생각을 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우리 교회는 없는 데요, 껌을 씹으면서 예배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번번이 예배에 지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불러도 하나님 앞에서 부르는 것이요,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 앞에서, 예물을 드려도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요4:23).

 

또한 14절에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예배하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일편단심’으로 예배하라고 번역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서 예배하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나뉘지 말고 한 마음으로 예배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아 집중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빗물이 한 곳으로 계속 떨어지면 큰 바위도 깨집니다. 태양 빛을 한 곳으로 모으면 불이 붙습니다. 예배에 집중하면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하늘의 불이 임합니다. 우리들이 전심으로 주님을 예배하면 병든 자가 치유되고 눌린 자가 자유하게 되고 가난한 자가 부유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새해에 우리가 여러 가지 계획도 세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참된 예배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일편단심으로 섬기기를 다짐하기를 바랍니다.

 

2.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합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이 말은 여러 신이 있으니 아무 신이나 골라잡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렇게 유혹하는 우상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선택하고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선택과 결단의 연속입니다. 특히 신앙생활은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그 인생을 좌우합니다. 한 번의 선택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우상을 섬기든지 양단간에 선택해야 합니다. 참 신앙에는 중립이란 없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바알을 섬길 것인지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왕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 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사자 굴에 들어갈지언정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던 다니엘처럼, 또한 풀무불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결심한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단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니’ 여호와를 선택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잠1:7). 신앙의 선택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선택입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 법과 대학장이었던 사이몬 그린리프 박사는 어느 날 학교 강당에서 무신론자와 일대일로 공개토론을 했습니다. 공개토론을 마치고 그린리프 박사는 “만일 당신이 옳아서 당신의 말대로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저에게는 전혀 손해가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 하나님과 함께 평생을 재미있게 의미 있게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만에 하나라도 내 말이 옳아서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당신은 영원히 문제가 있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실패자가 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신앙적인 결단을 하십시오. ‘결단'(決斷)이란 결정적인 판단을 하여 단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결심할 ’결‘(決)자에 끊을 ’단‘(斷)자입니다. 중요한 것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목숨을 건 결단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것을 사생결단(死生決斷)이라고 합니다.

 

사생결단(死生決斷)

 

그럼에도 결단하지 못하고 미루는 사람도 많습니다. 술을 끊겠다고 결단하지 못해 알콜 중독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담배를 끊겠다고 결단하지 못해 폐암에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박을 끊겠다고 결단하지 못해 모든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쁜 습관을 끊겠다고 결단하지 못해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선택하고 결단하십시오. 결단하고 행동하면 됩니다. 안 되는 것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종이를 찢는 버릇이 있었대요.

 

결단을 잘못하면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불명예가 됩니다. 유대지방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았지만 백성들의 여론에 밀려 자신의 중심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그의 잘못된 결정은 사도신경을 통해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또한 선택과 결단에는 때가 중요합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선택과 결단이 매우 긴박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믿어야 합니다. 오늘 은혜 받아야 합니다.

 

(고후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3.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결단합시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위대한 결단을 했습니다. 이것은 강요도 아니고 선동도 아닙니다. 이 고백은 여호수아의 솔직한 신앙고백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것은 하나님을 체험한 여호수아의 신앙고백입니다. 또한 그의 삶의 모토였고 하나님만을 그의 전부로 여기는 숭고한 신앙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누구의 눈치를 보고 결단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결단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을 선택해도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신앙을 선택하면 왕따가 될 각오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고독하고 외로울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기에 모든 것을 걸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외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른 신앙을 촉구하는 음성입니다. 이런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통하여 아직도 세상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그의 집, 그의 가족과 함께 결단했습니다. 나만 예수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와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결단은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가장(家長)으로서 바른 결단을 내리면 온 가족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됩니다.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여호수아의 결단은 그의 가족의 결단을 이끌어 냈고 그의 가족의 결단은 그 민족의 결단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내가 살면 내 가족이 살고 내 가족이 살면 내 민족이 살 수 있습니다. 위대한 선택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 우리 모두 예배의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되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섬길 자를 오늘 선택하고 결단합시다.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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