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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스바냐

습 3장 14-20절(우리가 절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 - 조성노

by Preacher 202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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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3장 14-20

우리가 절망해서는 안 되는 이유

조성노 목사 20170108

푸른교회 [분당 불정로] http://thegreen.or.kr/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우리 사정도 많이 힘들고 혼란스럽습니다만, 스바냐 선지자 시절, 주전 약 630년 경의 유다 사정도 최악이었습니다. 므낫세의 부패와 타락과 폭정이 아들 아몬을 거쳐 요시아까지 이르렀습니다.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로 재판하고, 예언자들은 돈 받고 점을 쳤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누구도 남을 믿지 못했고, 심지어는 자기 아내마저도 믿지 못하는 극단한 불신 사회가 조장되었습니다. 가족 관계도 파탄이 나서 원수가 자기 집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신앙도 완전히 타락해 성전 안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태양신에게 제사했습니다.

 

그러한 어둡고 절망스런 시대에도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막장으로 치닫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변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소수가 있었습니다. 남겨둔 가난한 백성, 시온의 딸이란 말이 다 그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은 자들 조차 서서히 절망하기 시작한 겁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16절 하반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혼자 남았다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착각하지 말아라.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칠천 명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의 남은 자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스바냐 시대의 남은 자들처럼,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던 아합왕 시대의 엘리야처럼, 우리도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스바냐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런 좋은 이름을 가진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님이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14절을 보면 오히려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어깨를 늘어뜨리거나, 낙심하거나, 지치거나 포기나 체념해서는 안 되고 이 아픈 시대를 주님의 심장으로 품고 가야 할까요? 남은 자들이 올해도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얼까요? 왜 주님이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너지지 말라고 하실까요?

 

본문은 우리가 다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5절 상반절입니다.“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그러니 절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는 환경보다는 실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 때문에 비겁해지고, 용기를 잃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모든 죄악과 형벌을 이미 다 제거하셨다고 합니다.

 

로마서 5장에 의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지간이었을 때,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우리가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도 알기 전에, 우리가 사죄의 기도를 하기도 전에, 주님이 일방적으로 우리 죄를 대속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남은 자들은 즐거워할지언정 낙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죄용서는 결코 회개의 열매, 기도의 응답, 헌신과 충성의 대가가 아닙니다. 100프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개해서 죄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죄사함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회개한 날은 죄용서의 날이 아니라, 내가 이미 죄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최초로 깨달은 날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성취하신 죄사함에 내가 처음 리액션하며 감사한 날이 회개의 날입니다. 죄사함은 어디까지나 주님의 일방적인 긍휼입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남은 자들은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절대 어깨를 떨어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환경과 현실이 어떠하든지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남은 자들과 함께하심으로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15절 하반절입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7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어린아이는 부모와 함께 있으면 절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집니다. 남은 자들도 절대 두려워하거나 좌절하거나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며 늘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는 구원자요 전능자이십니다. 우리는 막연히 이것을 긍정하면서도 실제는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념적으로는 신앙인이지만,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데도 늘 기죽어 삽니다. 야곱도 그랬습니다. 처음 형을 피해 망명길에 오를 때도 천애의 고아라 생각했습니다. 베델에서 노숙하다가 하나님을 체험한 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20년간 객지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도 그랬습니다. 분노한 에서가 앞에서 달려왔을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씨름을 거시며 함께 하십니다. 종교개혁가 루터도 큰일을 하며 자주 실망에 빠집니다. 한 번은 잔뜩 낙심해서 귀가했는데, 아내가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 아내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루터가 화를 내며 망발이라고 하자, 카타리나는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토록 좌절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루터는 아내의 그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차립니다. 개혁에 매진해 성공에 이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남은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부디 낙심치 마시고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체험하시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두려워하거나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정말 믿기 힘든 말씀입니다. 내가 무엇인데 하나님이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까?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일까요? 이것은 과장이나 문학적 수사가 아닙니다. 믿기 어렵지만 주님의 사랑은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늘 우울하고 낙심천만해하고 땅이 꺼질 듯 한숨만 쉽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부담스럽습니까? 대체 언제까지 주님만 우리를 이렇게 짝사랑하게 하시렵니까? 우리는 결코 절망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한,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20절 말씀이 본문의 결론입니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를 용서하시고, 나와 함께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모으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그때는 가장 이상적인 때, 가장 적절한 때, 주님이 예정하신 가장 복 된 때를 가리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처지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십니까? 지금 무슨 일 때문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계십니까? 힘을 내시고 기운을 차리십시오. 그때가 되면 주님이 우리를 다시 모으시고, 놓여나게 하시고,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깨를 떨어뜨리지 말라는 주님의 뜨거운 음성을 들으시고, 새해를 힘차게 시작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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