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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시편

시 139편 13-16절(목적이 이끄는 삶) - 신만교

by Preacher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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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9편 13-16

목적이 이끄는 삶

신만교 2019.08.11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본문내용

 

(시 139:13)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시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시 139: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는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하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는 하는 걸 봤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이 거울을 만드는 것을 봤는가?” 우리가 이 거울을 만드는 것을 보지 못했어도, 누군가가 만들었으니까, 있는 것 아닌가? 만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서, 만든 사람이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만든 분이 있기에 질서정연한 이 우주가 있는 것, 아닌가? 성경은 말씀합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히 3: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우주만물뿐 아니라, 사람도 지으셨습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성경은 우주만물과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증언합니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여러분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아멘?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기억할 것은

 

1. 나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나는 어쩌다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에 의해 지음 받은, 존귀한 자입니다. 그 누구의 출생도 실수도 아니고 불운도 아닙니다. 혹시 부모는 계획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부적절한 부모는 있어도, 부적절한 자식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의 생명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때라도, 하나님은 이미 이시고 우리의 장부를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쉬운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시 139:13) 주는 내 몸의 모든 기관을 만드시고 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베 짜듯이 지으셨습니다.

(시 139:14) 내가 이처럼 놀랍고 신기하게 만들어졌으니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시 139:15) 내가 보이지 않는 어머니 태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그 때에도 주는 내 형체를 보고 계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지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예쁜 코도, 눈도 하나님께서 빚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체가 은밀한 곳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할 때, 부모는 미처 몰랐으나, 하나님은 이미 아셨습니다. 우리를 이처럼 놀랍고 신기하게 만들어주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안 보인다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건 마치 물고기가 물이 안 보인다고 물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가 공중을 날면서 공기가 안 보인다고 없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물이 없는가? 공기가 없는가? 하나님은 영으로 살아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이 없다면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는가? 저절로, 우연히 존재하는가? 여러분, 자동차나 컴퓨터가 우연히, 저절로 생겼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가 저절로 생겼다고요? 인류의 비극은 창조주 하나님을 잃어버린 데서, 시작됐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니, 결국 자기 자신도 잃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소위 ‘자아 정체성의 상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내가 누군지’를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 “나는 도대체 누군가”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인간의 불행의 근본 원인입니다.

 

어린 아기가 부모를 잃으면, 그 순간 고아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기 성(姓)도, 이름도, 고향도 모릅니다. 고아가 됩니다. 그 고아 앞에 무슨 예쁜 형용사를 붙인들 행복하겠는가? 어려서 입양 간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고국을 찾아와서 자기를 낳아준 친부모를 애타게 찾습니다. 왜요? “나는 누구인가?”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고민, 고민하다가 자살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찾지 않는가? 여러분은 “나는 누구이며. 내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물어야 할 궁극적인 물음이 아닌가? 그리고 이 질문에 누가 답을 주겠는가? 이 질문은 하나님께 물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보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가령, 내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최신 발명품을 선물로 받았다고 합시다. 그 상품의 목적과 사용방법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간단합니다. 그 물건을 만든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아니면, 제품 사용설명서를 읽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인생 사용설명서’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하찮은 물건도 목적이 있고 용도가 다 있습니다. 여기 이 마이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컵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물며 인생의 목적이 없겠는가? 그냥 동물처럼 먹고 마시고 살다가 죽으면 끝인가? 절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더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 목적을 찾아야합니다. 그 목적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나침반이 없는 배와 같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유리방황하다가 결국 파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목적을 알고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 목적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실 때, 가지셨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목적이 없이 열심히만 살면 되는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실 때, 디자인 하셨던 그 목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목적을 아는 것은 여러분의 삶에 큰 의미와 보람을 줍니다. 이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감동을 주고 영향력을 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는가?

 

(사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시려고 당신을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인간의 제1 되는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꼭 알고 살아야 합니다. .

 

전에 미국에 법정에서 총기를 난사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때 이 살인범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가, 그 살인범을 감화시켜, 자수하게 만든 애슐리 스미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가냘픈 여인이 포학한 살인범을 자수시킬 수 있었을까? 살인범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총알처럼 박혔습니다. “당신의 삶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에 그 살인범이 자극을 받았습니다.

 

우리 화평교회의 어린이 여러분, 학생여러분, 청년여러분, 그리고 성도여러분, 저도 여러분에게 똑같은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십시오.” 아멘? 안타깝게도 지금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문화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헛된 우상에 이끌려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런 것에 이끌려 살면 불행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하나의 수레나 마차에 비교할 때, 이 수레를 무엇이 끌고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이끌려 살고 있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죄의식에 이끌려 다닙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 상처 받은 것에 묶여서 끌려 다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원한과 분노의 쓴 뿌리에 포로 되어 살아갑니다. 용서가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대개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며 삽니다. 그래서 몸매도 가꾸고 얼굴도 더 예쁘게 보이려고 성형수술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에 매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자가 40이 되면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똑같아 지고 50이 되면 고친 사람이나 안 고친 사람이나 똑같아 진답니다. 60-70이 되면 남편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그게 그거랍니다. 80이 되고 나면 돈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아지고 90이 되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그게 그거랍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변합니다. 변하는 것이 우리를 이끌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봅니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러분,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창조하실 때, 디자인 하셨던 그 목적! 그 거룩한 목적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이 목적이 바울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바울의 고백입니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여러분, 이렇게 한 가지 목적에 초점이 맞춰진 삶만큼, 강력한 삶은 없습니다. 빛이 한곳으로 모아지면 종이를 태웁니다. 그러나 분산되면, 아무 힘이 없습니다. 학생 여러분, 목표가 있습니까? 목표가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목표가 그 사람을 만듭니다. 고상한 목표는 고상한 사람을 만듭니다. 큰 목표는 큰 사람을 만듭니다. 영적인 목표는 영적인 사람을 만듭니다. 그런데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입니다. 목표는 내가 원하는 것이고, 목적은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목표는 성취하였지만, 하나님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불행한 인생을 삽니다. 변할 수 있는 목표보다, 변할 수없는 목적이 중요합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입니다. 긴 항해를 마치고 배 한 척이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피곤한 선장은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을 보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방향을 20도 바꾸시오!” 그러자 저쪽에서도 신호가 왔습니다. “당신들이 바꾸시오!” 기분이 몹시 상한 선장은 다시 신호를 보냈습니다. “난, 이 배의 선장이다!” 그러자 상대 쪽에서 “난, 이등 항해사다!” 무지 열 받은 선장이 다시 신호를 강하게 보냈습니다. “이 배는 전투함이다! 당장 항로를 바꿔라. 만약 바꾸지 않으면 발사하겠다.” 그러나 저쪽에서 그 다음 오는 신호를 보고 선장의 얼굴은 벌개졌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떤 신호였을까요? “여기는 등대다!” 등대는 변할 수 없는 목적입니다. 나의 목표를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표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고도원 시인이 그것을 ‘꿈 너머 꿈’이라고 했습니다.

 

‘꿈 너머 꿈’

 

백만장자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백만장자가 된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바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꿈 너머 꿈이다.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 너머 꿈이 있으면 위대해진다.

 

‘꿈 너머 꿈’이란 꿈을 갖되, 그 꿈을 이룬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비전입니다. 적어도 백만장자를 꿈꾸었으면 백만장자가 된 뒤에, 그 꿈을 징검다리 삼아, 더 의미 있는 발걸음을, 한 번 더, 내디뎌야 합니다. 여러분이 대학 목표의 꿈을 가졌다면, 그 대학졸업의 꿈을 이룬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이 ‘꿈 너머 꿈’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은 ‘꿈 너머 꿈’이 있는가? ‘꿈 너머 꿈’은 단순히 개인의 행복을 넘어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꿈 너머 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끝으로

 

3.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이 세상 삶이 끝이 아닙니다. 현재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실제공연을 위한, 최종연습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오래 살아야 100년도 채 안 되는 삶을 살지만, 그 후 천국에서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의 마음에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우리는 영생하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헨리 나우엔이 지은 책 가운데 ‘죽음, 가장 큰 선물’이란 책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이란성 쌍둥이가 함께 대화를 주고받는 토막이 나옵니다. 여동생이 오빠에게 얘기합니다. “오빠, 우리가 저 밖에 나가면 우리를 만든 엄마와 아빠가 있을는지도 몰라.” 그랬더니 오빠가 “너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구나. 그냥 우연히 너와 내가 만들어진 거야.” 여동생이 “아니야 오빠. 지금 여기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우리에게 있을지도 몰라. 아름다운 하늘이 있고 예쁜 꽃들이 있고 새들이 노래하는 우리가 마음껏 자라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오빠가 “아니야. 네 머릿속에 누가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넣어 주었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어느 순간, 내 숨이 멈추는 그 순간, 펼쳐지게 될 영원한 세계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를 위하여 이 70-80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성경은 사람의 육체를 ‘장막’ 즉 ‘텐트’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미래의 몸은 ‘집’ 즉 ‘맨션’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천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소망을 둔 사람은 이 세상 삶도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아파트를 분양 받고 이제 입주할 때가 되면 얼마나 기쁘고 흥분이 됩니까? 믿음 안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영혼의찬양 123장(‘우리에게 향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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