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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신명기

신 30장 19-20절(천지를 목격자로 삼아) - 박병은

by Preacher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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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장 19-20

천지를 목격자로 삼아 [신년설교]

박병은 목사 2015.01.04

덴버둘로스장로교회 http://whttp://www.denverdoulos.org/

 

새해 2015년이 밝았습니다. 2015년 올해는 한국인들에겐 해방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는 특히 양의 해라고 해서 온순하고 부드러운 한해가 되길 소원하며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에게와 각 가정, 그리고 하시는 일마다 풍성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든 다사다난한 지난 한 해가 갔습니다. 2014년은 우리 한국인들에겐 사실 기억하기조차 싫은 한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숫한 사건과 사고 가운데서 특히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에 서해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총체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와 사회의 수준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참사였으며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각종 비리와 도덕적인 타락 현상은 온 국민을 할 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저물어가는 시점에 벌어진 진보정당의 해산으로 들어난 노골적인 남과 북 사이에 이념 갈등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못하고 더욱 노골화되어 극심하게 남한 내의 국민 간 갈등으로 혼란스럽게만 한 한 해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렇게 새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한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래서 불안과 걱정이 가득하기만 합니다. 미국은 지난 선거에서 패배한 오마바 민주당 정권이 정치적으로 공화당에 상하 양원에서 밀려 고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종 차별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로 올해도 평안할 날이 없는 형편입니다.

 

특별히 고국의 형편은 심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방 70년이 되는 올해 뭔가 역사적으로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들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과연 한반도에 전쟁 없이 남과 북이 교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전쟁과 같은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까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온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불안정하고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심각한 때에 사이비 교주들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나 한국 교계는 숫한 이단 사설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전히 종말론과 관련한 수 많은 거짓 교사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여전히 ‘신년축복성회’니 뭐니 하면서 한국교회는 여전히 구복신앙에 매달려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과 의무 보다는 이기적인 모습의 현세 성공만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가운데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이 권면하시는 것과 같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 롬 1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왜 “마음을 새롭게 해야(renewing your mind!)”합니까? 세대가 악하여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 악한 세대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앞으로 살아갈 시대 모두가 악한 시대의 연속입니다. 앞으로의 시대가 지난 시대와 별로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특단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도저히 변화를 기대할 수조차 없을 정도 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철저하게 과거에 대하여 점검하고 진단해야 할 뿐 아니라, 결연하게 스스로 결단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 증언과 권면의 말씀

 

오늘 우리가 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입니다. 그의 나이 어느 덧 120세(신 30:1)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모세에게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을 보여주시기만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제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 전에 마지막으로 출애굽하여 광야 40년의 전 과정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하는 유언적인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이 신명기서입니다. 이 신명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전합니다. 19절의 말씀을 봅니다.

 

* 신 30:19-20a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첫째,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 1세는 거의 다 죽고 1.5세와 2세와 3세가 있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과거 그들의 역사를 정리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사실을 고스라니 알고 있을 하늘과 땅을 증인 삼아 말합니다. 여기서 모세가 하늘과 땅을 언급한 것은 공평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증언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우리나라도 “하늘이 증인이다!”, “하늘을 두려워하라!”는 식의 말이 있듯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답답함을 들러내어 말씀하실 때 이런 방식의 표현을 하여 강력하게 호소하기도 하십니다. 그 예를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 사 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하늘, 땅을 언급하실까요?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라!”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과거 40여년의 역사의 증인으로 하늘과 땅을 부른 것입니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과거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친밀성 즉 사랑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그들을 택하셨고 또한 부르셔서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이는 전적인 사랑 때문이요, 일찍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과거 40년간의 역사 속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역사 속에는 참으로 많은 사건과 사고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쁘고 신나는 일들, 예를 들면, 홍해 도하, 만나, 십계명과 율법의 수여받음, 아말렉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도 있었지만, 슬프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 즉 음행사건, 각종 반역 사건, 송아지 우상 숭배 사건 등등 참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멸하지 않으시고 지금 여기까지 그들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놀라운 현재 우리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믿음의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곳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비록 여러 가지 일들이 이민 생활 속에 있었습니다. 역시 기쁜 일, 슬픈 일들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간혹 절망 가운데 좌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오셨습니다.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하심이며 사랑으로 단련해 가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또한 고려하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의 생활의 어려움과 고난을 불평만 했지 그 속에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망각하였으며 외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명백하게 말씀하십니다.

 

* 신 32:6 우매무지(愚昧無知)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언은 우리로 하여금 이 사실을 믿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출생 시 자기를 나아준 친모를 보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지난 일 년을 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려는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세밀하신 그 은혜를! 이 은혜를 부인 할 수 없는 은혜요 사랑입니다.

 

둘째, 인간의 잘못과 반역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토록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온갖 지혜와 간교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고 또한 배반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배교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시고 또한 그 모든 사실에 대하여 하늘과 땅은 하나님께 증인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은 부인할 수 없고 또한 지울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과정은 참으로 들추어 낼 수 없을 만큼 배교적이었으며 또한 그에 대한 결과에 대하여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의 시대를 앞두고 그들이 겪은 잠간의 성공에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한 점검을 통하여 새로운 지혜와 믿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진취적인 도전을 시작해야만 하였습니다.

 

실로 참 지혜는 이러한 잘 잘못을 명확하게 살펴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모세가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러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결단을 하고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2. 선택의 순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복을 받는 길과 저주를 받을 수 있는 방식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선택할 것을 명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생각해야 할 점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 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타성이 붙어 있는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이러한 모습에 대하여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실까요? 이제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것저것을 살펴보는 시기가 아니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것은 두 가지 조건입니다. “생명이냐 사망이냐? 복이냐 저주냐?” 하는 것 입니다. 이는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로 다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생명과 복

 

이 조건은 흔히 말하는 죽지 않고 그저 살아있고(livings), 복(blessings)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이어 설명되고 있는 바를 보면 그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보다 종교적인 면을 요구하는 조건인 것입니다. 즉 “생명”을 택하라고 하면서 그것은 살아있음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살아있음은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며 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종하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붙잡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저 살아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께서 그런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 분께서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를 수행하시기 위하여 심지어 죽기까지 하나님께 붙어 있었고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래서 우리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 빌 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그렇습니다. 예수를 선택하고 믿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도 여러분, 이 새해 이 확실한 진리를 다시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모세의 간곡한 권면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조건은 죽지 않고 살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을 받아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생명이 있어야 하고 진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축복의 개념은 장수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여 부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복일까요?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갑 질의 횡포”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집안에 돈이 많아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자란 재벌 2, 3 세의 의식없는 행동이 온 나라의 공분을 사고 있음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KAL의 소유주의 자녀들뿐이겠습니까? 가진 자의 교만함은 아무리 건강하고 재신이 많더라도 그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복을 받은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생명을 택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속에 생명이 있고 진실이 있고 의미가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복입니다.

 

둘째, 사망과 저주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살아갈 때 아무리 건강하고 돈과 권력과 명예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은 바로 저주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생명이 없어서 사망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러한 삶 자체가 절망과 함께 살아가는 저주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러한 강력한 권면은 흔히 말하는 “대박을 꿈꾸라!”고 덕담을 하고 축복을 하는 년 초마다 나누는 축복 풍년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말씀입니다.

 

3. 생명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라

 

과연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0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신 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명이시며 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며 이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 창 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렇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고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셔서 가나안 땅 곧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언약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 창 15: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언약에 따라 하례의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에 따라 이삭을 주시며, 그 언약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결론으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니라.

 

아비가 자식에게 아무리 말을 하고 가르쳐도 그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기가 어렵듯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일하시는 바의 의도와 생각을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모세의 권면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 언약의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붙잡고 순종하며 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이제 그저 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복을 빌고 복을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참으로 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구하며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력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평안과 소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한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있음을 믿습니다. 비록 죄로 인하여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이 말씀을 기억하고 생각한다면, 나를 향하신, 우리 가정을 향하신, 그리고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의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에게 복됩니다! 그래서 더욱 더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과 생각을 깨닫게 하는 비밀의 통로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는 성도가 진정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앞에 놓여 있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진정 우리가 이러한 말씀과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됩니다. 올 한해 말씀과 기도 가운데 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상 가운데 방황하지 말고 세파에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신령하신 뜻을 분별하여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숙된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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