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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아가

아 2장 10-17절(그래도 봄은 왔습니다) - 정오영

by Preacher 2025.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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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2장 10-17

그래도 봄은 왔습니다.

정오영 목사 2020-03-23

울타리교회 : 군산시 문화동

 

지난 주를 깃 점으로 마지막 동장군이 물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날씨적으로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 같습니다. 봄은 전통의 절기에서 입춘에서부터 하지까지인데 입춘은 벌써 지나가고 봄의 가장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싹이 돋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즈음에 아지랑이기 피어오르는 시기입니다. 개구리나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계절이고, 일어나는 계절입니다. 아직도 겨울인가 싶더니 봄이 성큼 다가와 우리 앞에 있습니다.

 

봄이 올 것 같지 않게 겨우내 찬바람이 불었지만 봄은 여지없이 찾아온 것입니다. 봄이 우리의 문턱까지 왔는데 지금도 움츠리고 있어 추위에 겨울잠을 곤히 자고 있습니까? 겨울은 벌써 지나가고 봄이 벌써 중반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이제 겨울잠에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봄에 피는 꽃향내를 먹음으며 봄 마당 축제가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부터 영산 강변에 매화꽃이 피어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백정에는 동백꽃이 활짝피기 시작하여 동백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개나리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봄 마당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의 ‘아가서’는 솔로몬의 노래입니다. 솔로몬의 1,005개의 노래 중에 유일하게 성경에 포함된 노래입니다. 주후 90년 유대랍비들의 회의인 얌니야회의에서 39권의 구약을 정경으로 만들 때 정경에 포함되었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노래한 내용인데,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비유하고, 예수님이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남녀의 사랑에 빗대어 쓴 노래라고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아가서에서 사랑의 발단 부분으로 추운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쳤으니..... 아름다운 동산에서 함께 하자고 하는 고백입니다. 추운 겨울에 움츠리고 있던 술람미 여인에게 솔로몬은 청혼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났고 비도 그쳤다고 말 합니다. 추운 겨울이 지난 봄은 상징적으로 인생의 역동적인 시작의 때를 의미합니다. 환경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지금과 같이 코로나가 창궐할지라도 봄은 여전히 왔습니다. 코로나로 암울한 오늘에도 그래도 봄은 왔기에 솔로몬에 사랑의 노래가 봄을 맞는 우리 노래로 불리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희망찬 앞날의 소망을 말할 때도 “고생 다음에 희망찬 봄이 온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계절적으로 봄은 다시 시작하는 때요, 다시 일어나는 때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봄이라고도 하여 인생이 기지개를 펴고, 신앙적 봄이 왔기에 영적 기지개를 펴는 힘찬 약진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말씀으로 은혜를 충만하게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이제는 일어날 때가 이르렀습니다. (11-14절)

 

[아]2:11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아]2:12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습니다. 지면에는 꽃이 피고 노래할 때가 이른 것입니다. 비둘기 새의 우는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립니다. 봄 일는 때가 이르렀다는 것 입니다.... 과거의 추운 한 겨울은 지나고 꽃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렀다면 때를 잡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흔한 말로 시대의 영웅호걸은 때를 타고 나야 한다고 하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웅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계절도, 세상도, 인생도 만사가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정의에 대하여, 개혁을 위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영혼이 잠자는 자여 깨어 일어나라”고 정신을 흔듭니다.

 

[눅]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야곱에게도 가족들에게 말합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하시며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니 그 지긋지긋한 고난의 여정에서 벗어납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시며 새로운 결단을 위해 일어나야 때 임을 일러주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외칩니다...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세상을 향해 일어나야 하고, 세상이 어둡기에 빛을 발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임하면 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세상의 빛인 우리가 세상에서 빛을 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입니다. 일어나야 빛을 발할 수가 있습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19가 위협한다고 움츠리고 잠을 자면 안 됩니다. 목사님은 설교 도중에 “하나님 편에 있는 자들은 다 일어나 보십시오”라고 했는데 움츠리고 잠든 사람만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다시 “악마 편에 있는 자는 일어나 보십시오”라고 했는데 잠들어 있던 사람은 “일어나”란 말만 듣고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모두가 당황하였습니다. 인생도 졸고 있고 잠을 자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집에 왔습니다..

 

[요]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일어나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습니다. 농사든 장사든 사업이든 이미 다른 이들이 선점한 이후에 후발 주자입니다. 잠자다가 늦게 일어나니 그런 것 입니다. 땅은 일찍갈아 엎어야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즉시 아니면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 가을에 갈아 엎어야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충도 죽고, 토양이 다시 살아나서 풍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려서 우리 동내 술을 많이 드시고 놀기 좋아하는 어떤 분은 날마다 술집에서 놀다보니 자기 집에 소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다 논 밭을 다 갈아서 농사가 시작되었음에도 제일 나중에 갈아서 늦게 파종합니다. 그 집은 가면 갈수록 가난하여 졌고 자식들이 고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갔습니다.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롬]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움츠리고 삶에 할력이 없습니까?...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예배 시간이 졸리고 성경을 읽는 시간이 되면 졸리고 잠이 옵니까? 피로가 문제가 아니라 영혼이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선 이 예배시간 영혼이 깨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 여러분들의 영적 잠을 깨워 주실 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이 달콤한 분들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있는 분들이십니다.

 

2. 이제는 일어나서 함께 가자(13절)

 

[아]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그래도 우리는 주님과 손을 잡고 일어나서 함께 가야 합니다. 솔로몬은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일어나 함께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는 함께 가고 싶은 자이고, 사랑하는 자가 함께 가면 어떤 일이라도 힘들지 않습니다. 일어날 때 머뭇거리지 않고 사랑하는 자와 함께 갈 때 활동이 힘이 납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함께 일하러 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일러줍니다.

 

[아]2: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솔로몬과 그의 신부 술람미와 서로 함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 신부된 성도들과 서로 함께 속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됨을 가장 아름답게 보시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 뿐 만 아니라 이제 주님과 하나가 되면 됩니다. ‘함께’ 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함께 하는 것은 가장 큰 힘이 됩니다. 함께 하는 것은 가장 인격적인 방법입니다. 함께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고난도 슬픔도 함께 가야 궁극적인 행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함께 보내사 전도도 하시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신 목적은 함께 있게 하고, 전도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게 하고, 병든 것을 고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삼으신 제 1목적이 바로 ‘함께 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함께 하는 것 이상으로 제자가 스승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이 지으신 인간을 이 땅에다 두셨습니다. 그 인간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이 땅에 독생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간과 함께 하시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인 천국에 당신이 택한 성도들을 인도하는 것도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하시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은 희미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장차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희미한 죄 안개가 벋겨지고 확실한 하나님과 동거동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구원을 받은 우리들의 영혼이 함께하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까지 주님과 더불어 일어나 함께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제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15절)

 

[아]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팔레스타인의 들판에는 많은 여우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땅에서 여우라는 것은 언제나 포도농사를 망치는 원흉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이 작은 여우는 갑자기 어느 날 포도원에 나타나서 땅을 파고, 구덩이를 만들고, 심지어 포도줄기를 갉아먹는 이런 여우들은 포도원의 무법자들로 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➀ 여우는 이기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주인이 있는 포도원에 자기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하여 몰래 들어옵니다. 여우는 매우 영리함을 자기의 이기심을 위하여 사용하는 데 선수입니다. 그래서 여우는 자기의 먹이는 절대 빼앗기지 않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동물의 특징을 지녔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에 이런 여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에 이런 여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에는 이런 이기심의 여우가 없어야 하는 곳입니다 교회와 가정이 이기적인 집단이 되면 그 집단은 무너집니다. 교회와 가정이 이기적인 집단이 되면 마귀 소굴이 되어갑니다.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천국 공동체의 모형입니다. 교회는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입니다 철저하게 이기심을 버려야 하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와 가정의 포도원에서 이기심의 여우를 잡내어야 합니다. 포도원의 여우를 잡아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➁ 여우는 의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여우는 의심이 참 많은 짐승이라고 합니다. 여우를 거기다가 포획될 위기를 겪은 상처받은 여우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여우는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더 은밀하게 움직이며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숨기기에 잡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도 마음의 상처들 때문에 불신과 의심이 잔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불신과 의심의 잔재는 심령의 문을 잘 열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 작은 상처들이 낫지 않고 덧나면 큰 병이 되어 인생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가듯이 우리 성도들에게 영혼을 말라버려 죽이는 비극으로 몰아가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심령에 잔재하고 있는 의심의 여우를 잡아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여우는 포도원에서 솔로몬과 술람미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방해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이 여우의 역할이 영적 공동체인 주님의 동산에서는 마치 마귀의 역할과 같은 것입니다. 마귀라는 말은 diavbolo" {dee-ab'-ol-os : 디아볼로스} (상징적으로)'비방하다', 비난하다) 중상하다, 거짓 비방자, 악마를 말합니다.

 

이 디아볼로스 (마귀)라는 말은 희랍어에서 두 단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 던져서 사이를 가른다, 참소자, 이간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단은 부부 사이를 이간시키고, 부모와 자녀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사단은 성도와 성도 사이를 이간시키어서 공동체의 모든 아름다운 관계들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때때로 아주 작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교묘하게 우리의 공동체 속에 들어와서 서로의 틈새를 벌어지게 만듭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작은 여우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작은 여우를 잡아라.....할렐루야! 성도들 심령 안에 숨어 있는 작은 여우를 잡아내어야 합니다. 이 작은 여우를 잡아내기 위하여 절박한 마음으로 회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4. 이제는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와서 ...(17절)

 

[아]2:17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 아무리 힘든 고난의 하루일지라도 날이 저물어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앞에서 만사에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작할 때도 있지만 그 시작할 그 때 안에도 마지막이 있습니다. 봄에도 마냥 봄만이 아닙니다. 봄에도 봄의 끝인 마지막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시작하는 아침이 있고 마치는 저녁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의 때에도 마냥 신앙의 대가 아닙니다... 그 신앙의 삶 안에 마지막이 있습니다. 그 기회를 잡는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시간은 절대로 계속 흘러가서 절대로 도중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인간들을 농간 부릴지라도 시간은 결코 늦추어지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너무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당신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잖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당신에게서 멀리했나이다. 당신이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사 눈 멀음을 쫓으시니, 향 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당신을 그리며, 당신을 한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당신이 한번 만지시매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 어거스틴의 고백은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잠시도 떠나신 적이 없는데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한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얼어붙었던 나의 완고한 심령을 두드립니다. 지금까지 나의 심령이 얼어붙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의 심령이 녹는 봄이 왔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시어 심령의 봄을 주시었습니다.

 

그래도 봄은 왔습니다...!(아2:10-17)

 

1. 이제는 일어날 때가 이르렀습니다.(11-14절).

 

2. 이제는 일어나서 함께 가자(13절)

 

3. 이제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15절)

 

4. 이제는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와서...(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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