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열왕기상

왕상 14장 1-5절(여로보암) - 김창진

by Preacher 2023. 12. 24.
728x90
반응형

왕상14장 1-5

여로보암

김창진 목사 2019.9. 1.

https://https://blog.naver.com/hinsem/

 

● 여로보암 왕

 

본문의 내용은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이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자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내면서 아비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여로보암이 어떤 왕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서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 선한 왕의 기준(그의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이라면 여로보암 왕은 악한 왕의 기준이 됩니다(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지파 출신(왕상 11:26)으로 솔로몬의 신하(왕상 11:26)로서 부지런함을 인정받아 다윗성을 보수하는데 요셉 지파의 책임자(왕상 11:28)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왕상 11:1-2)하고, 하나님을 떠나고(왕상 11:4, 9-10) 우상의 신전들을 세우는 일(왕상 11:7-8)로 인하여 하나님은 솔로몬에게서 이스라엘을 빼앗아 신하에게 주겠다(왕상 11:11)고 하십니다. 그 신하가 바로 여로보암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버지 다윗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다 빼앗지 않으시고, 유다 지파 외에 한 지파를 남겨서 솔로몬의 아들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왕상 11:12-13). 그 일에 대한 예표로 선지자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12조각으로 찢어서 10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줍니다(왕상 11:30-31). 사울, 다윗, 솔로몬 시대에 한 국가였던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이루어진 남 유다와 나머지 10지파로 이루어진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지고,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로보암입니다.

 

● 여로보암의 범죄

 

본문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든지라.’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든 때를 ‘그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그때’가 언제일까? 여로보암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때입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자기의 새 옷을 12조각으로 찢어 그중에 10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열왕기상 11:37~38 ‘37.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스려 이스라엘 위에 왕이 되되, 38.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여로보암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일개 신하에서 10지파를 대표하는 왕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다윗 같이 행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여로보암의 집을 견고하게 하시며, 이스라엘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자자손손이 후손들이 왕이 되어 북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됩니다. 왕이 된 후 세겜을 북이스라엘의 수도(왕상 12:25)로 정하고, 세 가지의 일에 역점을 둡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는 일입니다.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남쪽 경계이고, 단은 북쪽 경계입니다. 북이스라엘 지형의 양 끝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왕상 12:28c).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열왕기상 12:27~29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하나님께 제사하러 굳이 남 유다의 예루살렘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벧엘이 가까운 사람은 벧엘에서, 단이 가까운 사람은 단에서 제사하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민족의 삼대 절기중 하나인 장막절(초막절, 수장절)을 7월 15일에서 8월 15일로 변경하고(왕상 12:32), 남 유다의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의식하여 벧엘과 단에 큰 산당을 짓고, 일반인들로 제사장을 삼아 벧엘과 단에서 제사를 집례하게 합니다.

 

열왕기상12:31-33 ‘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 여로보암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아 주신 기회로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지만, 자신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솔로몬을 배신했던 것처럼,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자기를 죽이고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 위기감에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져버리고, 스스로 어리석은 방법에 빠졌던 것입니다. ‘그 때에’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 여로보암의 기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여로보암을 우상 숭배한 악한 왕,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왕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벧엘과 단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큰 산당을 짓고, 레위 지파가 아닌 보통사람으로 제사장을 삼고, 절기를 변경하였으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골라서 한 것 같아 여로보암은 악한 왕이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정말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까? 문제는 그렇지 않은 데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여로보암은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들자 찾은 것은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가 아니라 자신에게 옷의 10조각을 주며, 하나님이 너를 선택하여 왕으로 삼으셨음을 말해 주었던 아히야 선지자를 찾아갑니다. 왜 아히야를 찾아갔을까?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는 하나님이 아니며, 거짓이며,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우상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백성에게는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에 제사하면, 예루살렘에서 제사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받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자신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모조품으로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에게는 계속 그 일을 하게 했습니다.

 

왜요? 그것이 자신의 목적을 유지하는데 들어맞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참되고 옳은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행하면서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 안위(安慰)하고, 백성들을 기만한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욕심과 욕망을 위해 백성들을 기만하던 때에 아들 아비야가 병이 듭니다. 자기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위기가 오고, 어려움이 닥치자 그의 진짜 태도가 드러납니다. 선지자 아히야를 찾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무신론자가 되었거나, 믿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자기 아들 때문에 여로보암은 아내를 보냅니다. 여로보암의 아내인 줄 모르도록 변장시켜 보냅니다. 그러나 열왕기상 14:4-6을 보면 이미 아히야 선지자는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웠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은 왜? 직접 가지 않고 아내를 보냈으며, 변장시켜 보냈을까? 그것은 자신이 행하였던 모든 일이 거짓임을 알았고,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을 알고, 그로 인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여로보암의 아내가 가져온 소식은 하나님의 재앙과 저주가 담긴 무서운 메시지였습니다(왕상 14:7-16). 결국, 아비야는 죽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왕조는 나답이라는 아들 때에 여로보암의 부하였던 바이사의 반란으로 끝이 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여로보암의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약속하시기를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11:38)고 하셨습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이며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 은혜와 기회를 다윗처럼 하나님이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살고, 자기 백성들을 믿음의 길로 잘 인도했다면 약속하신 대로 여로보암의 왕조는 견고하여 오래도록 이어졌을 것이고, 악한 왕의 기준이 되는 불명예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여로보암이 아히야 선지자를 직접 만나고, 회개했다면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기회를 자신의 욕심과 욕망으로 잘못 사용한 여로보암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기회는 무엇입니까?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가야 할 죄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런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대속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천국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 우리가 성도로서 사는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주신 귀한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지요?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일을 염려하며, 근심하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하루의 시간을 허비하고, 세상의 것에 집착하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여로보암 같이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하는 삶을 사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성도로서 사는 매일의 삶의 기회를 세상의 것을 채우는 데만 사용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통해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이웃들에게 선포하며 나누며, 우리에게 주신 하루하루의 기회를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믿음의 길을 걷는데 잘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