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9장 1-18
영적 침체를 극복합시다.
문기태 목사 2017.07.02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장 1-18절)
열왕기상 18장은 엘리야의 화려한 승리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 혼자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맞대결하여 멋지게 승리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제물을 다 태우고 모든 백성이 엎드려 '여호와 그분이 하나님이로다.'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단숨에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갈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여 하늘 문을 열어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가뭄을 끝내는 큰 비가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합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타고 내려가소서." 라고 하고는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어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갑니다. 마차보다 빠르게 날아가는 엘리야를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멋집니까
한 번의 기적과 승리도 대단한데 연이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어마어마한 기적을 행하며 승리의 연속입니다. 실패나 좌절이란 엘리야 선지자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 대승리의 여세를 몰아 계속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새롭게 개혁하며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백성들까지 바알 종교를 몰아내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참된 신앙으로 변화되리라 기대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증명하였으니 이제 이스라엘에는 바알 신상을 깨뜨려버리고 바알 제사장들을 다 쫓아내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받드는 대 부흥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엘리야의 기대는 19장에서 산산이 깨어지고 맙니다. 1절에 아합 왕이 궁으로 돌아와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모든 바알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는지를 왕비 이세벨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이세벨은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라고 합니다. 이세벨의 말 한 마디에 엘리야의 개선장군의 위용은 일순간에 패잔병의 몰골로 바뀌고 갈멜 산에서 점화됐던 부흥의 불길은 순식간에 꺼져버립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더 이상 갈멜 산의 영웅이 아닙니다. 엘리야는 한 여인의 말 한마디에 기겁을 하여 정신 없이 도망치는 도망자가 되고 맙니다. 아합 왕의 마차를 앞질러 질주했던 능력의 엘리야는 어느새 자신의 목숨을 위해 비겁하게 도주합니다. 더욱 놀랍게도 기진맥진한 엘리야 선지자는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는 나약한 자가 됩니다.
엘리야는 오랜 세월 동안 길르앗 광야와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에서 믿음 생활의 맹훈련을 받고 갈멜산 정상에서 하나님의 불을 내리게 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는 죽은 자를 소생시켰고,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을 해결했습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었고 강인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엘리야는 단신으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무찌른 담대한 여호와의 종이었습니다. 그런 엘리야가 갈멜 산의 대승리를 거둔 직후에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구차하게 도망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사역과 백성들의 기대를 내던지고서 광야에서 죽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달음박질을 할 때도 있고, 불신의 탈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등장하여 담대하게 믿음을 드러낼 때도 있었고, 두려움에 붙잡혀 소극적인 자세로 퇴장할 때도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많은 회중 앞에서 믿음의 담력을 과시하기도 했고, 홀로 절망과 자기 연민에 젖어 흐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비슷한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시선을 엘리야에게서 그의 하나님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갈멜 산에서 엘리야의 하나님보다 엘리야 자신에게 시선을 두고 그에게 온갖 희망을 걸었을지 모릅니다. 갈멜 산의 주인공은 엘리야가 아니고 엘리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기진한 엘리야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웅은 엘리야가 아닌, 엘리야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승리의 깃발을 따르는 자들만이 모든 좌절과 실의를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아합 왕은 왕궁으로 들어간 후 이세벨 왕비에게 갈멜 산에서 있었던 놀라운 사건들을 전하였습니다. 아합은 갈멜 산에서 일어난 엄청난 기적들이 여호와의 능력이었음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바알 선지자들의 죽음이 오직 엘리야 때문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아합은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아합은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하나님께 돌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아합은 우유부단하게 이세벨의 눈치만 보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합 왕은 갈멜 산에서 하나님이 불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도 기도하여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도 엘리야가 자신의 마차보다 빠르게 달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도 자신의 우상 숭배나 그릇된 옛 삶을 청산하지 않고 아무 변화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 자체가 무기력해서가 아니고 이를 보는 자가 결단하고 죄로부터 회개해야 하는데 여전히 회개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의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을 보고도 끝까지 부인하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화를 버럭 냅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능력을 보면 깨닫고 곧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하며 하나님께 큰 능력을 구했습니다. '제가 손을 얹고 기도하면 불치의 병을 앓는 이들이 깨끗이 낫고 귀신이 쫓겨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귀신이 쫓겨가고 중병이 나아도 사람들은 대부분 그때만 환호할 뿐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로 교회가 부흥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말씀을 꾸준히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야 변화가 일어나지, 큰 능력을 본다고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습니다.
이제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3절은 엘리야에 관한 기사 중에서 가장 큰 충격과 실망을 던져주는 본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갈멜 산에서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처형시켰던 용맹스런 선지자가 한 여인의 협박을 듣고 자기 생명을 잃을까 봐 북 왕국에서 남 왕국 유다의 최남단인 브엘세바까지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까닭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엘리야가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요 왜 엘리야에게 갑자기 큰 영적 침체가 일어난 것일까요
1. 엘리야는 부흥운동이 실패한 것을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하나님께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불을 내려 주셨고 번제 물을 일시에 태우셨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목격한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지휘를 받아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가지고 기손 시냇가에서 죽였습니다.
이제 엘리야는 이스라엘에서 바알 종교를 몰아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합왕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능력을 직접 목격하였기에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바알 숭배 정책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적을 목격한 백성들이 엘리야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여호와 신앙의 부흥운동에 동참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다 돌아갔습니다. 아합 왕은 바알을 포기할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바알 제사장들을 잃은 이세벨도 건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과 수고가 허사가 된 듯한 어이없는 현실 앞에서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습니다. 그가 본 것은 실패로 돌아간 여호와 신앙의 부흥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흥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것을 보고 힘이 빠져 일어나 도망했습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졌습니다.
2. 엘리야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았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갈멜 산에서 그녀의 바알 선지자 850명이 전멸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세벨은 살기등등하여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이를 갈았습니다. 엘리야가 본 것은 표독스럽고 악독하며 살의가 가득한 이세벨의 얼굴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복수를 맹세하는 일그러진 이세벨의 눈동자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엘리야는 갈멜 산의 승리와 가뭄 후의 단비를 체험하고도 이세벨의 협박에 마음이 눌려 하나님 대신 악녀의 얼굴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믿음의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사명감에 불타는 광야의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자기 생명을 지켜주셨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앞에서 가뭄을 선포한 이래, 하나님이 그를 그릿 시냇가로 옮기셔서 까마귀들을 통해 음식을 날라다 주시고 아합의 수색으로부터 숨기시며, 심지어 바알의 본토인 시돈 땅 사르밧 과부의 집에 숨기시고 오래 보호해 주셨음을 잊고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세벨의 협박을 듣기가 무섭게 갈멜 산의 승리를 내던지고 도주해 버렸습니다. 우리도 얼마나 자주 십자가의 승리를 내던지고 예수님의 얼굴을 외면한 채 도망쳐 버리는지 모릅니다. 악인이 내뱉는 한두 마디의 부정적인 말로 인해 쉽사리 가슴이 내려앉고, 여망 했던 일에 약간의 차질만 생겨도 당황하며, 고난의 조짐이 조금만 비쳐도 무서워합니다.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어려워질 때 우리 믿음은 갈대와 같습니다. 약간의 미풍에도 흔들리고 약간의 파도만 쳐도 곧 뒤집힐 듯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는 예수님이 함께 타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믿음의 항해를 합니다. 그렇지만 풍랑이 일기 시작하면 우리는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의 평강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배를 할퀴는 파도와 강풍뿐입니다.
우리의 시선은 산만합니다. 예수님의 얼굴만을 응시하는 지조와 충성의 시선이 아니고, 외적 환경에 따라 초점이 바뀌는 시선입니다. 우리의 눈은 갈멜 산의 불을 목격한 체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세벨의 복수의 위협 앞에 직면하면 갈멜 산의 신령한 불길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 승리의 체험을 이세벨의 궁전에까지 연결시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 위에서는 여호와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할 수 있었지만 이세벨의 복수의 칼 앞에서는 여호와의 승리를 선포할 수 있는 믿음의 담력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영적 침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3. 엘리야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지 못함을 보았습니다.
엘리야의 시선은 이미 갈멜 산의 승리를 주신 여호와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보지 못하는 시선은 자아를 보게 될 뿐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대신 자신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그 생명을 위하여" 도주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이스르엘 평지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4절에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며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했습니다. 10절에는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자신의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특별함을 두 번이나 열거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허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다'고 자신의 특별함을 강조합니다. 엘리야는 은근히 자신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운 선지자이며 용감하게 바알 선지지들 850명과 맞대결해서 승리한 선지자이고 기도하여 하늘을 닫고 여는 능력의 선지자라는 명확한 사실에 잠시 우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금방 곤두박질합니다. 이세벨의 말 마디디에도 두려워 어쩔 줄 모르고 정신을 못 차리는 연약한 인간이 됩니다.
엘리야도 우리처럼 하나님이 여러 해 동안 기껏 가르쳐 주신 귀한 교훈들을 하루 아침에 내던지는 우매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한심한 백성들을 계속 참아주시고 용서해주시며 마침내 온전한 주의 자녀들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렇게 보면 엘리야가 훌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승리할 때와 이스르엘에서 패배자가 될 때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1) 갈멜산에서는 믿음으로 제단에 물을 부었고 믿음의 귀로 큰 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르엘에서는 협박의 말에 놀라 믿음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잃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2) 갈멜산에서는 기도를 힘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간절하고 믿음에 찬 기도를 힘썼습니다. 그러나 이스르엘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 말씀에 따라 행하였던 엘리야가 기도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않고 도망을 가는 실수를 보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존귀한 신분도 잊어버리고, 이제껏 하나님께 받은 엄청난 은혜도 잊어버리고 스스로 비참한 패배자가 되어 정신 없이 도망쳐 로뎀나무 아래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기껏 하는 말이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하고 원망 섞인 간청을 합니다. 극단적인 도망자가 되어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십니까 "이런 못난 놈!"하고 호되게 꾸짖지 않으십니다. "야! 네가 선지자냐"하고 비난하지도 않으십니다. "너한테 크게 실망했다." 하며 기를 꺽지도 않으십니다.
1) 엘리야 자신도 포기하였으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를 찾아 오셔서 지치고 상처받은 그의 마음을 사랑으로 어루만지십니다.
2) 안식을 주시고 먹여 주십니다. 엘리야는 연속되는 사역 속에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시고 하나님은 그에게 단잠을 주십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예비하셨다가 먹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필요를 공급해주시며 힘을 주십니다.
3) 실패를 승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부끄러움을 감추어 주시고 다시 도전하게 하십니다. 로뎀나무 아래로 도망 온 것을 엘리야의 실수요 실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향하여 사십일을 나아가도록 하시고 거기서 다시 엘리야를 만나주시고 다시금 영적 무장을 시켜 주십니다. 다시 중요한 사명을 주시고 감당하도록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는 큰 승리를 하다가도 영적인 침체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열심을 보이고 성장을 보이며 열매를 잘 맺는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무너지고 불순종하고 도망가며 내리막을 향해 달려 믿음도 잃어버리고 의욕도 잃어버리며 영적으로 침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찾아와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믿음과 사명을 회복시켜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 영적인 침체의 시험을 잘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사명을 감당하며 잘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구약 -------------------- > 열왕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상 18장 41-46절(엘리야의 기도) - 김창진 (0) | 2023.06.16 |
---|---|
왕상 18장 41-46절(작은 구름 한 조각) - 안효관 (0) | 2023.05.31 |
왕상 18장 20-24절(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라) - 이백민 (1) | 2023.05.18 |
왕상 18장 20-24절(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겠느냐) - 허창수 (0) | 2023.05.18 |
왕상 19장 9-12절(세미한 소리) - 이백민 (0) | 2023.05.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