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8장 41-46
엘리야의 기도
김창진 목사 2016.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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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기도하십니까?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무엇을 기도합니까? 본문을 읽어 보면 엘리야는 하나님께 “비”를 달라는 기도입니다. 왜 “비”를 달라고 기도했을까요?
열왕기상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 이스라엘의 7번째 왕 아합이 다스리던 때입니다. 그 아합의 시대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29. 유다의 아사 왕 제 삼십 팔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왕상16:29-33)
이런 아합 왕의 시대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하여 경고하십니다.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그 경고대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습니다.(눅4:25, 약5:17) 그러니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겠습니까? 그 당시 상황을 보여 주는 것이 열왕기상 17장에 등장하는 사르밧 과부이야기입니다. 사르밧이란 동네에 사는 과부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서 한 움큼의 가루와 병에 기름 조금 있는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고(왕상17:12) 했던 처지의 상황이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상황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러한 고난이 끝나기 위해서는 아합 왕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의 문제를 해결되어야 합니다.
● 갈멜 산에서의 영적 싸움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을 찾아가서 바알 선지자 400명, 아세라 선지자 450명을 갈멜 산으로 불러 어느 신이 참 신(神)인지 알게 하자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아합 왕은 정한 날에 온 백성들을 갈멜 산에 모으고,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엘리야 선지자의 영적인 싸움을 합니다. 제단 위에 나무를 놓고, 그 위에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놓고, 불을 지피지 않고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하면 그 신이 참 신(神)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 무렵까지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소리치고 난리치고 자기 몸을 칼과 창으로 상하게 하면서까지 기도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해가 저무는 저녁 즈음에 엘리야는 12개의 돌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제단 주변에 15리터의 물이 들어갈 정도의 도랑을 파고, 송아지를 각을 떠서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시켜 통 넷에 물을 가득 채워서, 각을 뜬 송아지와 나무에 부으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엘리야가 쌓은 제단은 물로 흥건합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왕상18:37)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열왕기상18: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그러자 사람들이 엎드려 소리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이 “참 신(神)”임이 증명되자 그동안 이스라엘의 영적 문제의 원인이었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다 죽이게 합니다. 열왕기상18:40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 엘리야의 기도
이어서 오늘 본문에 엘리야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기도입니까?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엘리야가 누구를 생각한 겁니까?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살아 보겠다고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을 숭배합니다. 그것을 부추긴 것이 아합 왕입니다. 그 모습에 하나님은 3년 6개월 동안 가뭄을 주십니다. 그리고 갈멜 산의 영적 싸움에서 하나님이 참 신임을 증명됩니다.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떠냐! 이놈들아 너희가 버린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바알과 아세라를 따르더니 꼴좋구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 줄 아느냐! 너희는 더 고통을 당해봐야 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3년 6개월이란 가뭄 속에 힘들고 고난당했을 백성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비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런 엘리야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 모습을 살펴봅니다.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나” 중심적인 기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교회, 내 가족, 내 문제, 내 자녀, 내 앞 날, 내 사업, 내 직장....” 너무나 나 중심적인 기도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 나를 아프게 한 사람, 나를 고난 가운데 빠지게 한 사람들이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아프고 고난당하고 실패하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내 교회, 내 가족, 내 자녀, 내 사업, 내 직장, 내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기도입니다. 그러나 내 기도만하고 기도의 시간이 끝이 난다면 우리는 너무 이기적인 신앙 아닙니까? 그 이기적인 신앙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지탄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오늘 엘리야의 모습을 보면서 더 넓게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크게 기도해야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째, 엘리야는 약속을 믿고 기도합니다.
엘리야가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그 말씀을 믿고, 지금 “비”를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냥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려주신 약속, 하나님이 보여 주신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서 보이는 기도의 응답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기도의 응답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는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므로 응답 받은 것 아닙니까! 요셉이 긴 시간 동안 인내하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이, 비전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즉흥적인 기도가 아니라 욕심에 의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왜요?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고 약속하시고 말씀하셨기에 성경 말씀을 알고 그 속에 담긴 약속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둘째로 엘리야의 기도는 실제적인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42절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 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음으로, 약속을 알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실제적인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겔36:37)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해 주셨지만, 이루어주시기를 구하고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믿고는 살지만, 약속을 기다리고는 있지만, 기도를 귀찮아합니다. 기도라는 것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내놓아야 하고, 의도적으로 기도의 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나는 무시로 기도합니다. 나는 장소에 구애됨 없이 기도합니다. 기도하는데 무슨 시간과 장소가 따로 필요합니까? 말하기도 합니다. 무시로 어디서든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시간과 장소를 따로 떼어 놓고 규칙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22:39-41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약속을 믿고, 실제적으로 기도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친히 보여 주셨고, 오늘 본문의 엘리야도 실제적으로 기도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엘리야의 기도는 끈기 있는 기도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라고 해서 기도하자마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43절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엘리야가 기도하고 사환을 시켜 응답의 흔적을 찾습니다. 그러나 아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자 엘리야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십니다. 그 만큼 오랜 시간 기도하였던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일곱 번까지 가라는 것은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욕심을 관철하기 위해 응답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에 의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엘리야가 일곱 번까지 가서 기도 응답의 흔적을 찾으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해야 함을 말씀하는 겁니다.
엘리야도 일곱 번씩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면 하물며 평범한 우리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내놓고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기도에는 분명한 응답이 있다는 겁니다. 야고보서 5:17-18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18.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한 기도의 응답 내용이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 44-46절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 말씀을 정리해 봅시다.
오늘 엘리야의 기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엘리야를 통해 볼 수 있는 기도의 모습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실제로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하고, 약속이 응답될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엘리야의 기도를 기억하시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의 응답을 맛보는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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