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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잠언

잠 22장 9절(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 안효관

by Preacher 2023.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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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22장 9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어린이주일]

안효관 목사 2008.05.06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우리가 젊게 살겠다고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얼굴을 뜯어고쳐도 시간이 지나면 다 헛것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의술이 발달되어 수명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지 않으시면 언제 우리의 생명이 끝날지 알 수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생명도 그럴진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영원한 생명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었다고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학교 때에 부른 노래처럼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그렇지 않습니까? 벼슬로도 못가고 어여뻐도 못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갈 수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만 영생을 얻을 습니다.

 

여러분,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은 자녀로 키워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하면 뭐합니까? 결국 지옥 간다면 말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요하여 떵떵거리며 산다 한들 뭐합니까? 결국 세상에서 가진 것 다 썩고 그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진다면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영생을 얻는 사람으로 양육하십시다. 우리 후손들이 혹 세상에서는 가진 것 없어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이 되도독 기도하십시다.

 

오늘 본문에서 겸손하게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보상 중에 하나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단순히 영생을 얻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재물’과 ‘영광’이라는 단어는 단수로 쓰여 있는데, ‘생명’이라는 단어만은 복수로 쓰여 있습니다. 성경에서 ‘생명’이라는 단어가 복수로 쓰여질 때에는 건강하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활력 있게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완전한 삶을 살아감을 의미합니다.(옥스포드 주석) 바꿔 이야기하면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세상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삶을 성실하게 삽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과 명예를 얻습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생명’이라는 단어의 복수형이 뜻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그렇게 살면 되지 않습니까? 많은 것 가지지 못했어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멋진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더 교훈을 얻는다면 우리 자녀들을 선한 눈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 그렇게 말씀합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선한 눈을 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9절 말씀을 통해서 유추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사랑과 온정을 베풀줄 아는 사람’입니다. ‘선한다.’는 단어의 구약성경 언어는 ‘토브’입니다. 이 토브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는데, ‘선하다, 충실하다, 아름답다. 존귀하다. 참 좋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면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 거듭거듭 말씀하십니다. 그 때 쓰인 단어가 토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좋은 모습이 토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9절을 다시 읽는다면 이런 의미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참 좋다 그렇게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양육할 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든 것을 돈 구멍을 통해서 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돈에서 시작되고, 모든 것이 돈으로 끝납니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온통 돈의 힘에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그럴지라도 우리는 아이들을 돈에 세뇌된 아이로 키워서는 안 됩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갈 때 돈이 있으면 편리합니다. 지금보다 돈이 좀 더 많으면 여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고생 좀 덜 해도 되고, 돈이 있으면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돈이 정말 중요한 것은 맞지만 돈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돈에 지배받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받는 삶이어야 합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이 최고의 가치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돈보다도 신앙이 우선이고 먼저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결코 돈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참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눈은 어렸을 때부터 세상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며 살도록 세뇌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의 눈에서 세상의 시각이라는 눈꺼풀을 벗겨내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성경적 관점이라는 각막을 우리의 눈에 이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도록 영적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관심 가지시는 곳을 바라보며 삽니다. 세상은 출세와 성공이라는 거대한 산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신앙인은 골고다 십자가의 언덕을 바라보며 주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출세가 아니라 섬김의 모습으로, 영광을 얻는 자리를 위해서 아니라 나누고 베푸는 삶의 자리를 보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십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의 발걸음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아무리 험한 세상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발을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인생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말의 가르침이 아니라 삶으로 우리 자녀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바른 신앙으로 사십시다. 바른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가정과 우리 자녀들을 당신의 능력의 손길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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