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학개

학 2장 6-9절(땅과 하늘을 진동시키시는 여호와) - 윤석준

by Preacher 2024. 12. 15.
728x90
반응형

학2장 6-9

땅과 하늘을 진동시키시는 여호와

윤석준 목사 2015년 10월 18일

유은교회 [부산시, 하단동] http://cafe.daum.net/sola-gratia/

 

성경봉독 : 합3:6-15; 히12:18-29

주일오전찬송

경배찬송 - 시66편 1,2

십계명 낭독 후 찬송 - 시66편 3,4,5

사죄선언 후 감사찬송 - 시25편 1,3

설교 후 찬송 - 시90편 1,5,6

성찬식 찬송 - 시103편 1,4

폐회찬송 - 시97편 1,4,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주일 말씀을 통해서 성전 재건을 시작한 이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전재건이 시작되었지만 과거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본 노인들이 있었고, 이들은 성전 기초를 닦을 때 통곡했습니다. 새롭게 짓는 성전이 너무나 초라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마음에는 “우리가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라는 회한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의 마음을 읽으시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십니다. 학개서의 말씀은 나태를 딛고 새롭게 일어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입니다.

 

오늘 말씀 역시 5절까지의 위로의 말씀에 이어 계속되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하지만 5절까지의 말씀에서의 위로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라는 위로였다고 한다면, 6절부터 시작되는 위로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말씀하심으로써 백성들을 위로하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현재진행형’인 위로를 말씀하셨다면, 6절부터는 미래, 즉 ‘다가올 위로’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들이 행하고 있는 일이 가치로운 것일 때, 그것으로 인해 큰 힘을 얻곤 합니다. 지금 당장에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땀을 흘리는 것이 장래에는 매우 값진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거기에서 힘이 나는 것입니다. 6절부터의 말씀은 바로 이런 종류의 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도 위로이지만, 자신들이 하는 이 성전 재건의 일을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께서 무엇을 이루실지를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십니다. 이 위로에 한 번 동참해 보도록 합시다.

 

진동 : 히브리서 12장

 

세상을 흔드시는 하나님 먼저 오늘 시작이 되는 말씀은 6절 말씀입니다. 같이 말씀을 봅시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제 곧 하실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진동’입니다. “진동시킨다”는 것은 흔들리는 것, 떨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장차 주실 위로는 이 ‘진동’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진동케 하실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진동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사실 세상이 진동하는 것 자체를 가지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위로를 받을 수 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땅이 진동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건 그냥 ‘지진’입니다. 지진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진이 일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가 진동한다.” 했을 때, 중요한 것은 흔들린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 이고, 이 흔들림이 의미하는 바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신학사전에 이 “진동하다”(히. 라아쉬)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라아쉬는 대부분의 문맥에서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하늘, 땅,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에 의해 흔들릴 것이다(학2:6-7, 학2:21). 어떤 구절에서는 하늘이 떨며(욜2:10) 땅이 진동한다고 언급한다. 살아있는 피조물이 떨 것이라고 언급된다(겔38:20). 말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땅을 흔든다(욥 39:20).”

 

“물리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묘사한다!” 진동의 의미가 이해가 되십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진동시키신다.”고 말씀한다면, 그것은 그저 자연현상으로의 지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흔드실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이 진동할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일에 개입하셔서 무언가 커다란 일을 이끄시겠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어떤 일을 만드시겠다......이런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진동은 충분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짓고 있는 성전이 초라한 것으로 인해 상심하고 있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이 성전 짓는 일이 얼마나 크고 중대한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살피시고는, “너희가 지금 짓고 있는 성전이 초라하다고 상심하지 마라! 내가 이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세상을 흔드는 일을 행할 것이다! 보아라! 조금만 있어 보거라! 그러면 내가 이 성전 짓는 일을 통해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케 할 것이다!” 6절의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인가? : 히브리서에서 그러면 이 말씀을 들은 우리들에게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진동케 하시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무슨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시길래, 그것을 “하늘과 땅이 모조리 진동하는 그런 일이라고 하시는가?” 이것을 단지 비유법으로 읽어서는 그 뜻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대한 주석,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에 대한 뜻풀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진동케 하신다는 것이 구체적으로는 무슨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인가? 그것을 성경을 통해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똑같은 말씀이 바로 우리가 오늘 본문으로 택하여 읽은 히브리서 12장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함께 히브리서 12장으로 가보도록 합시다.

 

1) 먼저 2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기에 보면 두 번의 진동이 말씀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1) 먼저 첫 번째 진동은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즉 땅을 진동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그 앞부분을 쭉 읽어보면 “그때에는” 이라고 언급된 때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던 때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했다”는 말을 그대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반포하실 때 세상이 진동한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12장 26절 말씀이 시내산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분명히 이 말씀에는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했다.”라고 하면서, 그런데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히브리서 12장 말씀에 의하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반포되었을 때에는 ‘땅만’ 진동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연이어, 이제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할 것”, 즉 시내산의 율법 반포 이후에, 그보다 더 크게 하늘까지도 진동할 어떤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반포될 때에는 땅이 진동하는 정도였는데, 이제 그보다 더 큰 어떤 때가 올 것이라고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자, 그러면 여기에서 이 히브리서 말씀을 염두에 둔 채로 다시 오늘 본문인 학개 말씀을 보도록 합시다. 우리가 처음에는 그 진동하는 것이 하늘인지 땅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지 않았었지만, 다시 학개 본문을 보면 이 날의 진동은 분명히 하늘을 포함하는 진동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물론 이 말씀을 단지 ‘하늘’이 같이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히브리서와 연결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다른 성경에서도 땅 뿐 아니라 하늘도 진동한다고 나오는 말씀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삿5:4; 삼하22:8; 시68:8; 사13:13; 욜2:10; 3:16, 그리고 학개 본문과 히브리서 12장이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학개서 말씀을 히브리서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 학개서의 말씀이 히브리서가 다루고 있는 그 주제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제 살펴보려고 하는데, 먼저 한 마디로 답을 말해 두자면, 히브리서는 옛 시대와 새 시대의 예배를 비교하면서 이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학개서의 정황은 옛 성전과 새 성전의 대비입니다. 그래서 학개서에서 하나님이 “내가 땅 뿐 아니라 하늘도 진동시키겠다.”하신 말씀을 히브리서의 해석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이것을 조금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언제 하늘이 진동하는가?

 

다시 한 번 히브리서 12장으로 가서, 그렇다면 히브리서가 말한 “그때에는”의 일과, “이제는”의 일이 어떤 것인지 상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12장 18절부터 시작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서는 ‘두 예배’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1) 18절이 기술하고 있는 말씀은 시내산의 전경입니다.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이 장면은 시내산입니다. 불 붙는 산, 흑운, 흑암, 폭풍,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계시던 시내산에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만났던 첫 번째 방식의 하나님 접견이었습니다. 이 때의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은, 19절, 20절, 21절을 보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다.”, “이는 돌로 침을 당하리라는 명을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게 무서워서 모세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다.” 무서움! 두려움! 떨림! 그래서 정말 진심으로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까 보았던 26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이 “그때”가 언제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바로 시내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율법을 받고, 하나님을 제대로 뵈옵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예배하던 때! 그래서 하나님이 더 이상 말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던 때! 그때였습니다.

 

2) 그리고 이제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22절은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이라고 시작합니다. 여기 “너희”는 말할 것도 없이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입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이지요. 히브리서는 구약의 시내산과 비교하면서, “하지만 너희가 지금 이른 곳은 다르다!”라고 말합니다. 자 그러면 신약교회의 성도들이 이른 곳은 어디인지, 이 말씀을 보도록 합시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어디에 이르렀습니까! 시내산이 아니라 시온산! 땅이 아니라 하늘의 예루살렘! 시내산에 운집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 그분!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 그분!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친히 뵈었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만나던 때와는 전혀 달리, 신약교회의 성도들은 하늘에 친히 도달했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뵈면서 예배드립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한 것입니까? 이것을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만났던 것은 땅의 진동이요, 신약에서 교회가 하나님을 하늘에서 뵈옵는 것이 하늘까지 진동하는 것이라고 히브리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개서에서 말씀된 일 : 성전을 통한 구속역사의 진전, 새 언약 시대를 바라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학개서의 사람들은 무엇을 짓고 있는 것입니까? 히브리서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오늘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이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고 하셨는지 결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만으로 말하자면, 스룹바벨 성전이 솔로몬 성전보다 더 위대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학개 시대에 세웠던 이 성전이 결코 솔로몬 성전의 영광보다 단 한 순간도 더 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이 전의 영광(스룹바벨 성전)이 이전 영광(솔로몬 성전)보다 더 크다고 하신 것입니까? 집의 크기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들이 새로 짓게 되는 이 성전은 이전의 솔로몬 성전과는 전혀 다르게, 이후에 오게 될 성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옛 시대의 성전은 가고 새 시대의 성전이 오게 될 것을 보여주는 데에 이 성전이 사용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짓게 될 성전은 단순히 크기의 문제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보다 더 위대해 질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혀 다른 차원에서, 그 성전이 의미하고 있는 의미에 있어서, 솔로몬 성전이 전혀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룹바벨 성전은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놀라운 일을 비춰주는 방편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이 성전을 건축하는 이들은 이 장차 오게 될 성전 때문에 기뻐해야 했습니다.

 

이 장차 오게 될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옛 성전인 솔로몬 성전을 대치할 새 성전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포로로부터 돌아온 사람들이 세우게 될 새 성전으로 하여금, 구약의 집 성전이 무너지고, 장차 오게 될 영구한 성전, 곧 하나님의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막14:58)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히9:11)

 

학개 시대에 이들이 지은 성전은 단순한 돌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하나님의 구속계획의 아주 커다란 한 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옛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 옛 예배가 끝나고 새 예배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 돌 성전은 무너지고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실 것이라는 것......그들은 바로 이것을 보여주는 집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동치 않을 것을 바라보라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이 말씀! 곧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전의 옛 성전이 아니라 장차 올 새 성전이라는 사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자세를 갖게 만듭니까?

 

1. 진동치 않을 것을 바라보라 학개 시대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바라보고, “진동할 것을 바라보지 말고 진동치 않을 것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진동할 땅의 건물들을 보는 대신, 눈을 들어 진동치 아니할 영원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히브리서는 왜 땅이 진동하는 것을 떠나 하늘까지도 진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히브리서 말씀은 옛 시대와 새 시대, 옛 예배와 새 예배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옛 것과 새 것을 설명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모두를 흔드시는 이유를 “진동치 않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을 흔드시고 계신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말하자면 영원한 것을 드러내게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부수는 일입니다.

 

솔로몬 성전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완벽한 하나님의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집이 계속해서 존속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는 구약의 외형적 아름다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면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진동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므로 옛 성전이 부숴지고 새 성전이 설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 영원치 않은 옛 성전이 부숴지고, 영원한 새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는 사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학개 시대 때 사람들이 건축하고 있는 이 성전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조차도 영원한 성전은 아닙니다. 진짜 참 성전은 이후에 오실 것입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시고 나아가서는 교회입니다. 히브리서가 어떻게 결론을 맺고 있는지를 봅시다. 2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다!” 진동하는 돌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서게 된 진동치 못할 나라는 교회입니다. 거기 히브리서 서신을 받고 있었던 신약교회의 사람들,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와, 또 그 성전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전이 되어가는 교회......이것이 ‘진동치 못할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동하고 없어질 것을 바라보는 대신, 진동치 않을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동치 못할 나라를 우리로 하여금 받게 하시기 위하여, 진동하는 세상의 것들을 흔드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말로는 돈도 의미 없다, 명예/권력도 의미 없다, 참된 복은 하늘에 있다......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땅의 것, 육의 것들이 진동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배설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에게서 진동치 못할 나라는 빛을 잃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참되신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시지 않고, 다른 진동할 것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새 시대의 사람들로 살아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받았고, 진동치 못할 나라인 교회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참으로 진동치 않는 여기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희락들보다 하나님 전에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 염려치 말라

 

그리고 여러분! 이렇게 진동치 않을 나라를 받은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들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학개서에서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진동시키시는 결과로 나타나 있는 것들을 잘 살펴보면 ‘재물’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만국을 진동하시는 일을 통하여 ‘열국이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8절 말씀을 보시면, 이 만국이 보배를 가지고 오는 것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8절에서 만국의 보배를 설명할 때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굳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건 아마도 학개 시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전이 초라하다고 여긴 것이 철저하게 땅의 시각에서만 보았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들이 성전을 솔로몬 시대만큼 크고 화려하게 짓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솔로몬 시대 만큼의 힘과 재물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은도 내 것이고, 금도 내 것이다!” 무슨 뜻인가요? 이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만 먹으시면, 온 세계로부터 부를 공수해 오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들이 솔로몬 성전과 같은 화려한 성전을 짓지 못하는 것은 전혀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을 이들은 ‘세상의 없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돈이 없고, 능이 없고, 권력이 없고, 세상적 배경이 없다한들, 우리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굳이 그것들을 몰아주시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뿐입니다. 오히려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은 이들은 은과 금을 바라보는 대신, 이 성전에 가득 들어찰 여호와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