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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사도행전

행 26장 24-32절(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복음)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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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6장 24-32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복음

이삼규 목사 20190915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http://nakyang.onmam.com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행 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행 26: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행 26: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행 26: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행 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행 26: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행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예수는 역사다”라는 영화를 우리교회에서 보여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실제 주인공은 <시카고 트리뷴> 법률문제 기자였던 ‘리 스트로벨(LEE STROBEL)’입니다. 리 스트로벨은 본래 기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단지 사람들의 소망과 고대 신화 그리고 원시적 미신 때문에 하나님이란 신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 또한 사람들이 상상으로 지어 낸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내 레슬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놀라운 고백과, 그 후 그녀의 변화된 삶은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600여 일 동안 법률 전문가로서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조사한 뒤, 그는 결국 “나사렛 예수를 신뢰하는 것보다 무신론을 주장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믿음이 필요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현재 ‘리 스트로벨(LEE STROBEL)’은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변증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무신론자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리 스트로벨은 예일대 법대 출신의 탁월한 언론인으로서, 14년 동안 <시카고 트리뷴>을 비롯해 저명한 신문사 기자로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심층 취재 기사와 공익 언론 부문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교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찬 무신론자였다가 아내를 따라 윌로우크릭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예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리 스트로벨은 예수의 증거를 찾아 2년 가까이 조사한 끝에, 1981년에 그리스도를 자신을 용서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영접했습니다. 1987년부터 일리노이 주 윌로우크릭교회에서 사역하다 후에 거기서 교육목사가 되었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캘리포니아 주 새들백교회에서 섬겼으며 현재 집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부활의 증거」, 「예수는 역사다」, 「특종! 믿음 사건」, 「창조설계의 비밀」, 「친구의 회심」 (이상 두란노) 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음을 먼저 받아들인 한 사람의 진정한 믿음의 고백과 변화된 삶을 통해 가장 가능성 없어 보이는 사람을 생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고백과 변화된 삶은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하게 가로막는 이성의 벽을 깨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주님을 언제 만나셨습니까?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고발로 가이사랴로 가서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문을 받았지만, 죄목을 찾지 못해 그에 대한 선고가 유예되었고, 그동안 총독은 베스로 바뀌게 됩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울을 재판하지만 그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겠느냐는 베스도의 질문을 받은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로마 황제에게 심문을 받겠다고 상소합니다. 유대인들과 그들의 종교 문제에 미숙해 바울 문제로 고심하던 베스도는 때마침 방문한 아그립바 왕(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바울 사건에 대하여 조언을 부탁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하게 됩니다. 바울은 유대 관습과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론하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바울은 자신이 과거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이방 선교를 위해 부름 받았고, 자신이 전하는 것이 유대교의 전통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변론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전파되어야 할 것을 강조함으로 자신을 위한 변론의 기회를 오히려 복음 선포의 기회로 삼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행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의 변론을 듣던 중 베스도는 큰 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외치며 변론을 중단시킵니다. 베스도 총독은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유대인들의 종교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었고, 로마인으로서 헬라적 인본주의 사고방식을 가졌던 베스도에게 죽은 자의 부활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베스도의 눈에는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며 그것에 심취한 나머지 동족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바울이 유대교를 지나치게 배우고 심취해 미쳐버린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미치게 한다.”(마이노마이) 또는 “미쳤도다.”(마니아)라고 했는데 동의어입니다. ‘마이노마이’에서 ‘마니아’가 나왔습니다. 영어에 ‘mania’가 여기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매니아는 우리들이 들을 때는 좋은 의미입니다.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베스도는 바울의 현재 상태가 ‘정신이상’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베스도가 바울을 이렇게 정신이상자로 몰아붙일 때 바울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행 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바울은 베스도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각하’(크라티스토스)라는 극존칭을 사용하며 공손한 태도로 응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고 있다고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참되고’(알레쎄이아스)라는 말은 바울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온전한’(소프로쉬네스)은 ‘안전하고 건전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24절의 ‘미친’것과는 정반대 개념입니다.

 

자신을 미쳤다고 소리 지르는 로마 총독 앞에서 바울은 움츠러들거나 동요하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자신의 말을 온전한 진리로 받아 줄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부활을 선포하는 바울을 향해 ‘미쳤도다’라고 말하는 베스도의 반응은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지는 일반적인 오해와 태도를 반영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육신의 눈으로만 판단하는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들의 열의를 ‘어리석은 짓’으로 여기며 거절하고 냉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사람들의 말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미친 자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오늘 날에도 복음을 전할 때 싸늘한 시선과 거절은 당연합니다. 복음을 전하다 냉소와 거절을 경험할 때 예수님도 이 땅에서 미친 자로 취급 당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막 3: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복음을 소유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새롭게 깨닫는 기회로 삼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것을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적은 말로 권하여

 

바울의 말을 들은 아그립바 왕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행 26: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은 비밀리에 일어난 은밀한 종교의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유대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아그립바 왕은 분명히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 죽음과 부활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행해진 기적들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행 26: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바로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시골 한쪽 구석에서 은밀하게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왕도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은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는 줄 아나이다.”라며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을 합니다. 그러면서 아그립바 왕에게 믿음의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그립바 왕은 당황합니다. 만일 베스도가 “미쳤다”고 판단하는 바울의 말에 왕이 동의한다면 이방인 지도자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는 것이요, 선지자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유대인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처세술에 밝은 아그립바는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 도다”라고 말하며 대답에 회피합니다. 여기에서 ‘적은 말로’(올리고스)은 ‘짧은 시간 안에’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왕은 바울에게 단시간의 연설로 자기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는 바울의 말에 흔들렸지만, 체면과 세속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절합니다.

 

나와 같이 되기를

 

바울이 그런 아그립바에게 뭐라고 대답합니까?

 

행 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여러분! 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마음이 흔들려도 믿음으로 결단하는 것을 주저할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조언을 해 주면 좋을까요? 복음을 들을 때 호기심도 생기고 마음도 흔들리지만 , 복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을 갖게 되면 얽매인다고 생각하고, 믿음 때문에 누릴 복보다 포기해야 하는 세상 즐거움과 유익이 훨씬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전에 유익하고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 주님을 만난 후에는 가치 없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겨졌다고 고백합니다.

 

빌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빌 3: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에 바뀐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입니다. 사실 바울은 육신적으로 자랑거리가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그런 것들을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가치관이 180도 달라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과 여러분의 자랑거리를 저울에 놓고 달아 본다면 그 저울이 어디로 기울어질까요? 예수님으로 기울어질까요? 아니면 아직도 세상으로 기울어질까요? 바울은 복음을 통해 누리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과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죄수의 몸으로 결박되어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 권세 자들 앞에 섰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자유로웠습니다. 재판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영적인 자유로 초대할 수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그리고 버니게가 뭐라고 말합니까?

 

행 26: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행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영상(크리스티앙 사자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복음 전도자를 어리석게 여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아그립바 왕이나 베스도 총독도 자신처럼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록 몸은 결박되어 있었지만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 자유를 충만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복음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고 거절을 당한다 할지라도 복음의 생명력은 결코 쇠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변화를 동반합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삶과 영혼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은 세상의 차가운 반응을 녹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효과적인 통로가 됩니다. 세상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복음을 통해서 변화된 삶을 보여주고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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