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6장 1-6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김창진 목사 2018.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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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로보암 2세의 시대
구약성경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은 호세아 선지자가 기록한 말씀입니다. 호세아서1:1을 보면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했던 때의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호세아 선지자는 남쪽 유다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북쪽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성경에는 여로보암이라는 왕이 2명인데,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나누어질 때 북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 왕이 있고, 또 한 명은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여로보암입니다. 우리가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 시대의 왕을 여로보암 2세라고 부릅니다.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때의 북이스라엘은 솔로몬 시대만큼이나 화려하고, 북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을 다스렸으며,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가장 부강할 때입니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던 시대에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며 말씀을 선포합니다. 선포하는 말씀의 주된 내용이 본문 6절에 요약처럼 잘 나타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선지자가 이렇게 선포하는 것은 여로보암 2세 시대에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크게 불편함 없이 살아가고는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는 가난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며, 사랑이 없었음을 반증(反證)합니다. 그러한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고멜이라는 여인과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인가를 알게 하십니다.
고멜이라는 여인은 음란한 여인입니다(호1:2-3). 선지자 호세아는 그런 고멜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 두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 ‘로암미’입니다. 이스르엘의 뜻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의미이고, 로루하마는 ‘긍휼함을 받지 못하다.’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 만큼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세 자녀를 낳은 고멜은 음욕을 참지 못하고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갑니다. 그런 고멜을 하나님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호3:2)을 주고 다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 이런 호세아의 삶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상징하며, 음란한 여인 고멜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호세아에게 끊임없이 고멜을 사랑하도록 요구하신 사랑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을 모르고 고멜이 호세아를 버리고 욕망을 참지 못하고 다른 남자에게 도망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어리석음을 보여줍니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라고 하시고,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들이 알아야하는 하나님에 대해 본문을 통해 보려고 합니다.
● 심판하시는 하나님
먼저 우리들이 알아야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찢으셨다고 합니다. ‘찢다(타라프)’라는 단어는 육식동물이 먹이를 잡아 찢어 먹을 때의 모습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셨다고 합니다. ‘치다(나카)’라는 단어는, ‘치다. 때리다. 죽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찢으셨다.’, ‘우리를 치셨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 말씀합니다.
문법적으로 우리를 찢으셨다는 것은 완료형이고, 우리를 치셨다는 것은 미완료형으로,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이미 결정하셨으며, 그 심판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 심판의 내용이 앗수르 제국에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죄를 지은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잠잠하십니다. 또 같은 죄를 지었는데 여전히 하나님은 잠잠하십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자신이 좋은 대로 행하고, 자신이 좋은 대로 행하다보니 점점 더 하나님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앗수르 제국을 통하여 심판하십니다.
▶ 우리가 범죄(犯罪)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짓는 죄들을 보면 새로운 죄를 짓기 보다는 습관적인 죄를 반복하여 짓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즉각적인 심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고 ‘보고 계시지 않을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아니, 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에 즉각적인 심판을 하시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시선에 대해 무감각해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든, 어디든 계시면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시편139:7-8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에 즉각적인 심판을 보류하실 뿐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하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사랑의 하나님
두 번째로 우리들이 알아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움의 존재로만 인식하고 산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사랑이시니라.”(요일4:16)고 정의합니다. 하나님의 대표적 성품이 ‘사랑’입니다. 죄인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전쟁의 위협도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줄 모르고 시대적인 풍성함에만 젖어서 살아갑니다. 자기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니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결국 이방인에게 멸망당하는 치욕의 역사를 겪어야만 하는 것이 구약의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자기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지 못하는 미련한 이스라엘에게 매를 들어 때리십니다. 잠언 26: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리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맞은 자리를 치료해 주시고, 싸매어 주시고, 다시금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오늘 본문 1-2절이 말씀합니다.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 자기 자녀에게 자기 백성답게, 자기 자녀답게 살게 하시기 위해 아픔과 힘듬과 눈물을 주시기도 하지만, 다시금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본문 3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비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늦은 비”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 ‘비’입니다. 그것도 ‘늦은 비’입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흔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통해서 농작물들을 키우고, 가꾸고 열매를 얻습니다. 이른 비라는 것은 12-2월에 내리는 비로 파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이고,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는 비로 곡식을 자라게 하는 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늦은 비라는 것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비입니다. 늦은 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단비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비록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숭배하고, 물질만능에 젖어 사는 이스라엘을 돌이키시고 바로 잡으시기기 위해 찢으시고, 치셨지만 그것으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의 모습으로 살도록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호세아 선지자는 늦은 비에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십니다.
● 해야 할 일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금 하나님 앞에서 살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절에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어떻게 여호와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3절에서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본문 6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이러한 말씀은 사무엘 선지자 시대에 이미 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무엘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힘을 쓰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얼마나 애를 씁니까? 우리도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적인 것에만 너무 몰두해 있지는 않는지요? 세상의 물질적인 부분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바로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을 통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3:14-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의 첫걸음은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믿음의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105은 말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믿음의 길을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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