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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장 1-2절(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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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장 1-2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삼규 목사 20160221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동물 중에서 특히 조류들이 정확한 회귀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철새들은 수천 킬로나 떨어진 자기 둥지를 어김없이 찾아 매년 이동합니다. 본능적으로 타고난 시간, 방위 감각이 마치 체내시계처럼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그와 유사한 본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원형(圓形)순환본능이랄까요?

 

어떤 사람이 방위개념을 전혀 알 수 없는 첩첩산중 오지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로든 한 방향으로만 간다면 끝은 있을 것이기에, 열심히 직선으로 숲을 헤쳐 나갔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출발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구조되어서 헬기에서 내려다보니 원을 그리며 제자리만 맴돌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인다면, 아무리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도 늘 제자리만 맴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능은 우리 인생의 올바른 네비게이션이 될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네비게이션이 많이 발달 되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두 여자의 말만 잘 들으면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집에서는 아내의 이야기를 잘 듣고 차를 타면 길을 안내하는 네비게이션 아가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네비게이션이 잘 발달되었어도 때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길을 안내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 제가 아는 길은 네비게이션의 아가씨 말을 듣지 않고 움직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자기가 원하는 코스로 인도하려고 유턴하십시오. 좌회전하십시오. 우회전 하십시오. 생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빠른 길을 알 때는 그 아가씨의 안내를 무시하고 달립니다. 우리 인생에도 네비게이션이 필요합니다. 그 네비게이션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다녀도 방향을 잃지 않았던 아브라함처럼(창12:4) 여호와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계시(啓示)의 완성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을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최종적 계시로 삼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완성이십니다. 과거에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아들, 즉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고 게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다루신 모든 역사 가운데 그분의 음성이 전혀 없었던 시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히브리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분명한 증거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내세우는 온갖 종류의 철학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에 의지하는 인간의 머리에 호소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마음과 영혼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주간 부흥성회를 통하여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새들이 날아와 주워 먹어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말씀을 마음과 영혼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백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가 맺힙니다. 제가 광고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우리 성도님들이 이 번 성회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증거가 보이기 때문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번에 필리핀 선교를 위하여 우리 성도님들이 많이 헌신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두 분의 헌신으로 필리핀 현지 교회 하나를 세울 수 있도록 1800만원의 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쓰레기마을 식사 제공을 위하여 300여 만 원을 헌금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물론 다른 교회 성도님들도 헌신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 성도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셔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나중에 교회 완공하고 나면 헌당 예배드리러 필리핀 현지에 같이 가보려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책이요, 메시지요, 계시입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독보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아들, 곧 하나님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고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문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할 때는 큰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연구할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주시고 또 그분의 영광과 영원한 사역을 알게 해 주시길 성령님께 부탁드려야 합니다. 내가 볼 때 성경을 읽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학작품이나 어떤 교과서를 읽듯이 성경을 읽으려는 자세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여 숨습니다. 그들처럼 나무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나 철학, 심지어는 신학 뒤에 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인 지옥을 면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놀라운 미래, 곧 영원한 미래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죄가 만들어낸 것들은 우리 가까이에 널려 있는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들은 저 멀리에 있습니다.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외에 또 다른 계시를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나에게 구주가 필요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히브리서는 분명히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안에서 시작되고 끝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속량의 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들을 연구하다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물질과 운동, 삶과 법칙, 형식과 질서, 모든 목적과 계획, 모든 일의 진행이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되고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에게로 돌아갑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즉 영원히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을 높이며, 그분을 즐거워하고, 그분을 섬기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전에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여러 방법을 통해 말씀해 오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사실 아들이 오시기까지 약 4천년 동안에도 하나님은 인류에게 말씀해오셨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에덴동산에 숨은 이후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하고 줄곧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기독교의 첫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도 하나님을 단지 내려오는 전통으로만 이해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神)을 좋아했고, 어떤 이들은 경배의 개념을 가지고 제단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창조주를 거부하고 스스로 인간의 유한성과 죽음을 취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끝까지, 즉 인간과 자연이 모두 멸망할 때까지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과 지혜 가운데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분의 영원한 아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사람들은 구약의 계시가 부분적이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구약은 문과 창문이 없는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수들이 와서 문과 창문을 만들어 놓아야 비로소 집다운 가치를 지닌 만족스러운 집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을 통한 그분의 계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셨던 성령님께서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셔야 비로소 우리는 성경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기독교 초기에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된 서신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해 쓰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반복하여 강조하는 주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제사장보다 뛰어난 분이시기에 그분이 더 좋은 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최종적 말씀’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이 비유의 뜻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이 가져오신 새 포도주를 과거의 종교적 형식과 관습에 담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활력이 넘치는 역동적 기독교와 낡은 형식의 유대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세의 율법을 강조하는 구약의 유대교가 기독교의 모체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점점 성장하여 독립하듯이 기독교와 기독교의 복음은 유대교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유대교가 사라진다 해도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의 종교로서 자신의 견고한 반석 위에 설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 기독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 믿습니까?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구약을 읽고 신약을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성경 전체의 놀라운 통일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으로 발전합니다. 창세기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여자의 후손과 뱀이 싸울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특별히 승리자가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장차 여자들이 해산의 고통을 겪고 남편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하와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또 땅이 저주를 받을 것이며, 인간의 범죄로 인해 결국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벨과 가인에게 희생 제사 제도에 대해 계시하셨고, 그것을 통하여 죄 사함과 용납의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과 통치의 질서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는 ‘장차 오실 후손’, 즉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의 희생 제사를 드릴 구속자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고, 또 모세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뛰어나신 분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이 과거 하나님이 말씀해주신 계시들입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메시지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핵심을 찔러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변화산에서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에 나타납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하시는 메시지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믿음, 양심, 행위, 순종 그리고 충성 같은 것들을 일깨워줍니다.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경을 거부하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들에게 영적 감동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기분의 메시지의 각 부분들을 하나의 책에 담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책을 싫어하고 피하려고 발버둥칩니다. 하나님이 그 책을 모든 도덕의 최종적 척도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그분은 만물의 상속자이십니다. 아들 됨과 상속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영광을 누리신 분이십니다. 상속자로서의 예수님의 지위는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초월적인 지위 때문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그분과 함께 상속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를 창조시의 말씀과 동일시합니다(요1:3, 히 11:3, 골 1;16). 그래서 아들을 통한 계시는 모세, 여호수아, 아론을 통한 계시들보다 훨씬 월등한 것입니다.

 

요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 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히브리서가 주는 확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전체에 비추어 히브리서를 읽으면 하나님이 위엄의 보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갖게 될 때 우리는 거친 세상과 이기적인 사회에서 정신이상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그분을 이 세상에서 쫓아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면 하나님의 세상을 그분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하늘의 보좌에서 주권적으로 통치하시고 계신다는 사상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입니다. 품위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적절히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품위의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적절하고 건전한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계시를 통해서 분명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그분에게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코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자요 주님으로 자신의 삶 속에 영접한 사람들은 정말로 복된 자들입니다.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소위 ‘또 다른 견해’을 들으려고 애씁니다. 과거 저희 장인 목사님이 인천 길병원에서 전립선 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항암치료를 한 번하고 시골로 내려오셨습니다. 멀쩡한 사람도 항암치료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피폐해집니다. 예수병원으로 가니까 과장님이 모든 사진과 기록을 보고 고개를 기우뚱하였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암이 아닌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치료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셨습니다. ‘병원은 한 군데만 갈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문제는 다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말고 나가서 다른 사람의 또 다른 견해를 들어보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잘못된 조언을 들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다른 말씀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도움과 죄 사함과 복을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비해두셨습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으로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들은 세세토록 사라지지 않는 바깥 어두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우리의 죄에 대해 하신 말씀들이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주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아들이시며, 아버지와 동등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며, 아버지처럼 영원한 분이시요, 아버지와 본질이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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