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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장 1-3절(영광을 받으시고 높이 들리신 그분)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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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장 1-3

영광을 받으시고 높이 들리신 그분

이삼규 목사 20160214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무신론자 두 사람이 나사렛 예수에 대해 한참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옆 사람에게 “당신 실력 정도면 예수님에 대한 글을 충분히 쓸 수 있어요. 처음엔 근본주의자들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제시하고 나서 다음에는 그 견해를 완전히 까부숴버리고 예수님이 그저 인간이란 사실을 단번에 증명해버려야 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제안한 사람은 미국에서 유명했던 무신론자 잉거솔 대령이었고 그 글을 쓴 사람은 바로 루 왈레스 장군이었습니다. 그 글은 결국 ‘벤허’라는 소설로 나타났습니다. 왈레스는 예수님의 생애와 인격에 대한 자료를 연구하면 할수록 예수님이 특유한 인물이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서있던 로마군 중대장처럼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로다.”라고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무신론자에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의 교훈은 분명합니다.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서 하나님의 자녀들, 즉 이 땅에 있는 그분의 교회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제사장 사역을 의지하라고 격려하는 중요한 성경구절 중 하나가 히브리서 4장에서 발견됩니다.

 

히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증거 하는 진리는 하늘에 진정한 성막, 진정한 성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성소에는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제단이 있습니다. ‘속죄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우리의 중보자요 대언자이신 그분이 그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은 그 사실을 믿습니까?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영광스럽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 대해 계시하신 모든 것이 영광스럽다고 자주 고백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백은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도 그분이 이전에 행하신 일들은 영광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시 때문입니다. 인자(人子)로서 이 땅에서 행하신 그분의 사역은 아름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사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은 그곳에서 이 세대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고려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거룩한 구주요 주님이신 그분의 영원한 영광을 증거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에는 많은 교회들이 산재하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다수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영광을 기쁨으로 선포하는 일에 열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을 위해 열심히 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옛날부터 들어온 십자가 이야기를 다시 선포하는 것보다 현대인들과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 사도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모든 기독교의 선포는 하나님께서 사망 고통에서 풀어내어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전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행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베드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는 데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님이 오실 수 있다고 증거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준 사명이 있다

 

‘현대인들과 대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지적인 설교자라면 뉴스를 듣고 잡지를 읽는 데 열심을 내야 한다. 그래서 주일 설교 때 세상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혀주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물론 설교자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기에 시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자는 본문 한 절 읽어 놓고 세상 이야기만 하다가 메시지를 끝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시사 이야기는 방송이나 신문이나 인터넷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 나와서 듣고자 하는 것은 그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듣기를 원합니다.

 

그분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하늘의 보좌가 있다. 그리고 그 보좌 우편에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라는 진리를 교회는 선포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진리에 열광했습니다. 1세기 초대교회는 부활하여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높이 들리시어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또 감격하였습니다. 어떤 인간도 경배하지 않았던 초대교회는 ‘영광을 받으시고 높이 들리신 그분’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이시기 때문입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하나님이 주 예수님께 맡기신 제사장직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셨을 뿐 아니라 영광을 받으신 인간이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그분의 제사장직을 소홀히 다룹니까? 어찌하여 그것을 종교적 전통과 형식의 부록처럼 다루고 있습니까?

 

구약에 나타난 제사장직

 

구약에서 발견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제사장직’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아버지들, 즉 가족을 염려하고 가족에 대해 책임을 진 가장(家長)들의 삶에서 어렴풋이 예시된 것입니다. 욥은 가족 제사장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욥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그는 자녀들이 혹시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할까 염려하여 늘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깨끗케 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약의 제사장 개념은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깨끗케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레위인들의 제사장 직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 직의 온전한 완성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제사장 직이 왜 필요했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그분을 떠나 타락함으로 제사장 직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본질입니다. 마치 수소(H)가 물(H2O)의 본질적 요소이듯이 말입니다. 수소를 뺀 물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분과의 관계를 버림으로 본래의 지위를 잃어버렸다는 교리를 성경에서 빼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의 교훈은 매우 분명합니다. 인간은 도덕적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법정에 선 범죄자입니다. 그러기에 공의가 충족되고 하나님과의 단절이 회복된 후에야 비로소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교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회복하기 위해 복잡한 사상과 교묘한 합리화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곧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속죄의 근거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거부한다면, 속량의 영원한 근거는 사라지고 하나님과의 화목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일이 영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은 교회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이요 책임인 것입니다. 그분의 속죄 사역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그분의 고난과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문제의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인간입니다. 이제 인간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섬처럼 그분에게서 멀어져버렸습니다. 그런 섬은 육지의 세력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처럼 인간은 그분의 교제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서 소망 없이,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직에 대한 개념에서 중요한 요소는 제사장이 갖는 중보자로서의 의미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화목의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인간을 돕기 위해 주 어진 제사장직은 하나님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지 않은 제사장은 가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을 도울 수 있었던 구약의 제사장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사장의 일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도록 희생제사, 곧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죄인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들은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의로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변호하기 위해 임명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 제도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아들이요 구주이자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실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장직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레위지파의 모든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지성소에서 하나님 앞에 서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도덕적 실패와 부족함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작 왓츠 목사님이 지은 찬송이 있습니다(143장).

 

웬 말인가 날위하여

주 돌아가 가셨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구약의 제사장들은 희생 제사가 죄를 완전히 속할 수 없고 인간의 죄 된 본성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장 제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즉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완전히 도말하실 때까지 죄를 덮어두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실 자격을 완전히 갖춘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세우고 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영원한 아들에 대해서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화목을 이루셨습니다. 그분만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향해 참된 자비의 마음을 품으셨으며 오직 그분만이 제사장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신 영원한 구원의 주님이시요 근원이시요 수여자(授與者)가 되셨습니다.

 

그분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부활하여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믿음 안에서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주님을 만나러 간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우선 그들은 하나님의 천상의 영역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눈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계속 사는 것보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했습니다.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죽는 것은 오직 육체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의 불멸의 영은 육체가 죽은 후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영적 거처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와 속량 받은 자녀들을 위한 그분의 은혜로운 계획에 있어서 언제나 성실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재림과 부활의 소망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만물이 현재 상태로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자는 자들, 즉 육체의 죽음을 통해 주님 앞으로 간 자들의 상태에 대해서 모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메시지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가 됩니다.

 

살전 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 4: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창조주요 구속자이신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비밀이 우리에게 전부 계시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기쁜 날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것입니다.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영의 계시를 받은 유다도 다음과 같이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유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유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 하늘나라에서 영광의 몸으로 계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여 중보하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성경의 귀한 약속들이 주는 복을 누릴 권리는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장치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고, 우리 모두는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최종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한 보좌 앞으로 인도하실 것이고, 우리는 그분과 같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영원히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다 함께 누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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