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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7장 11-17절(멜기세덱 같은 제사장)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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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7장 11-17

멜기세덱 같은 제사장

이삼규 목사 20160410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히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히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히 7: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 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히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히 7: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히 7: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입니다.

 

마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소의 휘장은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는 역할이었습니다. 일반제사장들은 성소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휘장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휘장 안에는 누구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휘장 안에는 일 년 한 차례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속죄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히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 누구든지 원하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성전 되신 예수님의 몸이 찢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을 때 레위 제사장들은 성전의 휘장을 다시 수리하여 사용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옛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을 섬겼던 레위인들의 제사장직은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신 후로는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더 좋은 길을 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죄 없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아 영광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의 제사장직분은 아론과 레위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직입니다.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더 좋은 언약, 더 좋은 제사장, 더 좋은 소망이 히브리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히 6: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히 7: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신비로운 인물 멜기세덱

 

히브리서 저자는 왕인 동시에 제사장인 멜기세덱이라는 특별한 인물을 소개합니다. 그가 왕이면서 제사장이기도 하는 사실은 왕직과 제사장직을 엄격하게 분리했던 구약 이스라엘의 율법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모세와 아론과 레위지파 자손들의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 창세기에 등장합니다.

 

멜기세덱은 우리의 주목을 끄는 신비로운 인물입니다. 그는 살렘 왕이었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은 조카 롯을 구출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에게 복을 빌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가 획득한 노략물 중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창14:17-20절 참조).

 

창세기에 보면 멜기세덱의 등장에 대해 짧게 기록할 뿐이고, 구약에는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인물 정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시편 110편에 잠간 나타날 뿐입니다.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멜기세덱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사람은 히브리서 기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에 대서 뭐라고 소개합니까?

 

히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멜기세덱의 이름은 무슨 의미입니까? 히브리어에 ‘멜렉(melech)’은 ‘왕’을 의미하고 ‘쩨덱(zedek)’은 ‘의로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의의 왕’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는 ‘살렘 왕’이었습니다. 살렘은 ‘평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는 ‘평강의 왕’인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그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그가 아브라함보다 존귀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멜기세덱보다 한없이 존귀한 하나님이십니다. 존귀한 주님의 십자가 희생이 한없이 값지기에 우리 죄가 완전히 속량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족보를 매우 꼼꼼히 따지는 사람들입니다. 족보를 따져서 아브라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족보를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그것을 내구성이 강한 명판(名板)에 새겨서 보존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메시아가 오셔도 그분은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다윗 왕을 거쳐 부모에 이른 자신의 혈통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신약의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1장 초두에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서 시작하여 다윗과 솔로몬을 거쳐 또 다른 야곱에 이르러 결국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더 좋은 소망

 

유대인들이 족보를 그토록 중요시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소중하게 보관되었던 족보들이 주후 70년에 자행된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 때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구속자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메시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할지라도 그는 메시아임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증거, 즉 자신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하여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최종적 소망이셨고, 또 지금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생각해본 히브리서 구절들(히 6:20,7:12,18-19,8:7)이 준 교훈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열매를 거둘 것이고, 우리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구절들을 통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당시 고난 받고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 가지를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1)모세의 율법과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하고 완전한 제도가 아니다.

 

2)죄가 없으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영원한 그분의 제사장직에 대해 성도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오셨다. 그분의 제사장직이 보다 뛰어나고 영원하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광 가운데 계신 사실에 의해서 확인 됩니다. 일반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봉사할 때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서서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성전에는 의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사역을 끝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3)죄인들을 위한 구원 계획은 레위인 제사장들이 드린 이 땅의 제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기 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희생제사와 그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사역에 의존한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통해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레위인의 제사장직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이 폐지될 때 모세의 율법도 끝난 것입니다.

 

히 7: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히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구약의 모든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결국에는 제사장을 그만두고 죽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은 죽음을 맛보셨고 또 그것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다시 죽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영원히 제사장으로 계실 것이며, 결코 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삶과 믿음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감사하게도 이는 우리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유대인의 제사장직과 중보사역의 불완전한 것들 아래에 서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권세 아래 있습니다. 그분은 구약의 모든 제사장들보다 뛰어난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드리신 희생제사는 세상의 죄를 도말하시기 위해 자신을 드릴 능력과 의지가 있었던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 제사였습니다. 그분은 이 제사에 근거한 새 언약을 통해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주요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 친 새 언약은 우리에게 놀라운 영적 자유를 줍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뻐해야 합니다. 누구도 옛 율법의 짐을 우리에게 얹어놓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서 이 문제를 다룹니다. 그는 믿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의에 대해 효과적으로 말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을 유대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따랐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이들을 책망합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런데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는 휘장은 단순한 커튼이 아니었습니다. 그 휘장을 옆으로 젖히려면 성인 남자 몇 명이 함께 잡아 당겨야 할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그 휘장, 즉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거처를 제공해주던 무거운 휘장을 찢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분과 인류 사이의 새로운 언약과 관계의 시작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분은 옛 체제가 지나가고 새 체제의 권세와 효력과 중보가 도래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의 종교에는 살아 고통 치는 생명이 없습니다. 제단이 없습니다. 쉐키나의 영광이 없습니다. 죄를 제거할 수 있는 희생 제사도 없습니다. 그들을 위해 중보 사역을 감당할 제사장도 없고, 그들을 위해 제사장이 들어갈 지성소도 없습니다.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모두 다 무익하고 능력이 없고 더 이 상의 권세가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제거되었습니다.

 

그런 것들 대신 하나님은 새로운 희생, 곧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영원하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효력 있는 새 제단을 확증하셨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제단입니다.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계시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십니다. 하나님의 새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세우시고 받아들이시고 자신의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신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복잡하게 들릴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요, 우리의 주님과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 계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시간과 시대를 초월하시듯이 예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살아 계시어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십니다! 믿습니까? 또한 그분은 영원히 우리의 보증이 되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손에 우리의 이름이 있는 것을 믿음과 기쁨으로 찬송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리의 동생인 찰스 웨슬리가 지은 찬송가가 여러 편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작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280장)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전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그리스도의 실패 없는 중보사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도의 안전을 믿을 수 있습니다. 존 칼빈 같은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정교한 이론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중보 사역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장이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 주님의 구원의 초대에는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로부터(from where)왔는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을 결심하고 그분을 향해 가기로 결정할 때, 그분은 기뻐하시고 천사들도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할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는데, 신약에서 우리의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도 제자들과 이 땅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실 때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나누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눅 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잔을 나누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았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축복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회심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은 정말로 크신 은혜입니다. 그런 은혜로 인하여 우리는 새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과거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 삶에서 증거 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십일조를 하는 사람입니다. 십일조가 늘어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증가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축복이 증거하는 것, 그와 동시에 십일조가 증거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그렇게 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은 우리가 남은 생애 동안 그분을 찬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분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아름답고 영원한 삶에 대한 복된 소식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시고 계신 영원한 거처에 대해 증언하기를 원하십니다.

 

멜기세덱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존귀하며 영광스러운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 주님이 영원히 우리를 위해 계심으로 인해 힘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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