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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장 1-3절(능력의 말씀) - 이삼규

by Preacher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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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장 1-3

능력의 말씀

이삼규 목사 20160306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약 2천 년 전 극심한 고난 중에 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영감(靈感)된 메시지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라!”는 감동적인 호소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전한 메시지는 사실상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사람들이 순종해야 한다.”라는 강력한 뜻이 내포 되어 있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이런 메시지가 히브리서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우리가 속한 우주와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관계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피조세계 전체에 퍼져 그것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변화시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면 큰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쇄된 종이들을 엮어 만든 성경책만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마음의 영원한 표현이며, 세상을 가득 채우는 그분의 숨결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렘 22:29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의 말씀은 온 우주에 퍼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발걸음을 멈추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말씀과 그분의 임재를 부정하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 앞에 서서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심판의 날이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놀라서 혼비백산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신적 진리의 계시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메시지와 호소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또한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죄의 자각으로서 다가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의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오늘날 ‘핵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도 넘어설 수 없는 강력한 힘을 생각할 때 자연스레 핵무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더욱이 북한이 계속 이어서 핵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긴장합니다. 핵이 상용되기는 일본이 패망할 때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체르노빌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으로 인한 피해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의 위력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일본은 살 수 없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반핵주의자들은 원전을 세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핵의 위협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성자를 원자의 핵에 그토록 완벽하게 끌어들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숨(호흡)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형상이요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데(히1:3), 만물이 그분 안에 함께 서 있기 때문이다(골1:17)”

 

하나님의 음성이 그분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살아 계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유를 붙들고 계십니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여기에서 ‘능력’이라는 말은 ‘뒤나미스’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8절에 나오는 권능이라는 말도 ‘뒤나미스’입니다. 이 ‘뒤나미스’에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이 파생된 것입니다. 능력도 강력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능력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붙들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즉,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양심에 말씀하십니다. 즉, 죄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는 양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은 죄가 얼마나 가증하고 비열한 것인지를 폭로하십니다.

 

죄를 폭로하시되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지목해서 “너는 이런 죄를 지은 죄인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했다고 선언하십니다(롬 3:23). 이런 말씀을 통해서 죄를 지은 사람뿐만 아니라 그 외의 죄를 지은 다른 사람들까지도 모두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죄의 문제가 인간의 삶과 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고 강력하고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긴급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장 긴급한 문제는 질병이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누가 아프니까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습니다. 물론 낫기를 위해서 기도해 드리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기를 더 먼저 기도합니다. 가장 긴급한 문제는 질병도 더 나아가 전쟁도, 가난도 아닙니다. 죄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죄는 우리의 영혼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단지 이 땅에서의 짧은 세월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미래와 영원한 내세까지도 좌우합니다.

 

죄는 질병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영(靈)의 기형이요,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많이 닮은 인간의 본성에 생긴 비정상적인 부분입니다. 우리 몸에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기는 것을 흔히 암이라고 합니다. 정상세포가 아니라 비상적인 세포가 생겨서 갑자기 자라나는 것이 암입니다. 죄는 사형을 당해 마땅한 범죄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또 우주를 교란시키는 범죄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덕적 본성과 그분의 나라에 저항할 때마다 그들은 우주 전체에서 일어나는 그분의 도덕적 통치에 저항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차대조표

 

죄인들은 스스로에게 “내 공로가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양심의 소리에 정직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네가 아닌 외부의 특정한 공로만이 네 도덕적 의무를 만족시킬 수 있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무한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이 자기의 공로로 삼을 만한 한두 가지 선행을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빚 진 것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대차대조표로 놓고 보면 한쪽은 완전 마이너스 상태입니다.

 

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반역자’라는 말입니다. 이북에서 반역자는 어떻게 됩니까? 즉결처형을 당합니다. 죄인은 반역자입니다. 그것은 자신과 동일한 존재에게 반역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대해 반역을 저지른 것입니다.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분과 교제하려면 반역이 종식되어야 하고, 죄 사함이 있어야 하며, 깨끗이 씻고 의의 옷을 입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혈을 흘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께서 그 모든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분은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는 분이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갔다는 것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증거 합니다.

 

“(영원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메시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에 충실한 기독교가 세상에 선포하는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때가 되어 이 땅에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 사이에,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달리셨던 날에 대해 충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 스스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양은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이 땅의 그 누구도 그분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악한 자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지극히 고통스런 시간이 그분께 찾아왔을 때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블라인드를 내리셨고, 세상은 어둠에 지배를 당했습니다. 영원한 아들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버리기 위해 죽어가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홀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죽음을 통해 그분은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는 희생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영원한 희생제사(犧牲祭祀)

 

그리스도의 죽음은 영원한 효력을 발휘하는 완성된 희생제사로, 이는 결코 반복될 수 없습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분은 단번에 영원히 유효한 희생 제사를 드리셨으므로 다시는 이것이 반복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이 복된 소식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번에 드려진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얻어 깨끗하게 된 것은 복된 소식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분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사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사신 그분은 하늘에 오르셔서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 소식, 지극히 큰 통치자께서 영광 가운데에 거하신다는 소식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기름부음을 받은 분에게 공공연히 반역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지극히 크신 분’께서 여전히 하늘 보좌를 충만히 채우십니다. 그리스도는 이전에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계셨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주님 앞에 천사들, 천사장, 스랍들 그리고 그룹천사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계4:8)라며 끊임없이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분은 어떤 형태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는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지만, 지금은 단지 영으로 존재하신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후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도마에게 그분의 몸에 생긴 상처자국을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여기에 복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신약의 증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행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것은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큰 승리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모습으로 높아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리스도인들

 

예수님을 가리켜 ‘승리하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승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권적 하나님에게 패배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이신 그리스도’라고 믿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견해를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승리하신 인간’이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분 안에 있다면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우리가 거듭남의 기적을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이 성육신의 신비를 통하여 하나님의 본성과 연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예수님은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들도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에게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에게 자격이 있기 때문이며, 또 그분이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표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범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교제 안에서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혼자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눈길이 주변에만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또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승리자로서 통치하는 그분, 즉 인자(人子)로서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능력의 말씀이십니다. 지금도 만물은 그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십니다. 그 말씀이 죄를 깨끗케 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존귀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계십니다. 여러분은 그 사실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과 연합된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영광의 자리에 이르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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