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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1장 23-26절(결단하는 믿음) - 서명성

by Preacher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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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장 23-26

결단하는 믿음

서명성 목사 2016.2.28.

팔로마한인교회 http://palomarkc.org/

 

영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친구 목사님이 보낸 글을 소개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270만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1954년 수많은 인파가 구름처럼 서쪽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정반대인 동쪽으로 떠나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서독 출신의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 목사의 가족이었습니다. 목회자가 동독에서 계속 넘어오기 때문에 서독에는 목회자가 넘쳐나고 있지만 동독은 목회자가 없어서 수많은 영혼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카스너 목사는 서독에서 남부럽지 않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함부르크에서 낳은 6주가 된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를 데리고 정한 거처도, 교회도 없는 곳을 향해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고민하던 그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교회도 없는 공산치하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카스너 목사는 청지기 인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다고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낮은 곳, 더 낮은 곳을 향해 죽음까지 내려가시는 그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동쪽으로 갔던 목회자의 딸이 아버지로부터 엄격하고 철저하게 양육 받으며 자랐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대의 가치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살겠노라고 시대를 역행했던 그 목사님의 딸이 지금 독일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입니다. 소박한 시골 교회에서 자란 소녀가 독일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위기 극복과 전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개혁을 이끌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3500년 전에 애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400년간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이끈 위대한 민족지도자가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부모의 믿음의 결단과 모세의 믿음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선택에 따라 행복하게 되기도 하고 불행하게 되기도 하며,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선택이 우리의 삶의 질과 의미를 결정할 뿐 아니라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올바른 선택은 우리 인생여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선택을 행동으로 나타내려는 의지가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모세의 story는 다른 믿음의 사람들의 것보다 길게 언급됩니다. 모세의 경우 세상이 주는 낙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기 위해 고난도 개의치 않는 불굴의 믿음이 강조됩니다. 본문은 모세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어떤 결단이 그를 이끌었는지 보여줍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주목하신 4개의 결단을 함께 살펴봅니다.

 

1)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들을 숨긴 부모의 결단 (23절)

 

모세가 죽은 후에 성경은 어떻게 그를 평가하고 있습니까?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신 34:10-12).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대면하시던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친히 알아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나면서부터 저절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모세의 믿음은 그 부모의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모세가 태어날 때의 시대적 상황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일으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하여 양식을 찾아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던 애굽에 이민을 온 야곱의 가족들은 칠십 명에 불과하였지만 430년 만에 장정만 60만이 될 정도로 애굽 땅에서 번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하는 것을 마귀는 언제나 시기하고 방해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즉위하여 애굽을 다스립니다.

 

요셉이 애굽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니 히브리 민족을 함부로 취급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사람보다 많고 점점 강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고 그들에게 힘든 노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내친 김에 히브리 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산파들에게 해산을 도울 때에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아주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산파들이 바로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목숨을 걸고 남자 아이들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더욱 번성하고 강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남자 아이가 나거든 무조건 나일 강에 던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출생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히브리 민족의 구원자로 예정하시고 이스라엘에 대한 애굽이 핍박이 가장 심할 때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나일 강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난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마련하시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모세에게서 아름다운 것을 보았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아이의 용모가 뛰어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를 키워야 합니다. 부모의 뜻을 자녀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모세의 부모처럼 자녀에게서 아름다운 것, 가능성,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를 숨겨서 키우는 동안 부모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행여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샐까봐 마음 졸였을 것입니다. 쉬 조용해, 애굽 사람들이 듣는다. 수없이 속삭였을 것입니다. 석 달이 되어 아이가 제법 자라니 울음소리도 커져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혹시 애굽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아기를 숨긴 사실이 들통나게 될 것이고, 이 사실을 고발하면 아이는 물론이고 부모도 위험에 처해질 수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갈대 상자를 구하여 그 안에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 모세를 넣어 나일 강에 띄웠습니다.

 

그때 마침 바로의 딸이 강가에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갈대상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잘생긴 사내아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히브리인의 아들인 줄 알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니다. 멀리서 지켜보던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다가가서 말을 겁니다. “내가 가서 히브리 여자 중에 유모를 불러다가 공주님을 위해 그 아이를 양육하게 할까요?”라고 묻자 바로의 딸이 허락합니다. 공주는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에게 이 아이를 데리고 가서, 자기를 대신하여 젖을 먹여 주면 삯을 주겠다고 합니다. 공주의 아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모세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 아이를 키우면서 돈까지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행동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넘치는 보상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절묘한 때에 절묘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을 섭리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가리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바로의 딸은 그를 모세라고 명명했는데 애굽 말로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 하였으나 바로의 딸은 물에서 모세를 건져내었고 그를 안전하게 키웁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모세를 안고 젖을 먹일 때 무슨 말을 하였겠습니까? 아이구 내 팔자야. 너도 기구한 운명을 타고 났구나 어찌하여 이 모진 세상에 태어나 죽지 못하고 사느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면서 신세타령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크신 일을 하실 것을 믿었기에 모세의 믿음을 돕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을 것입니다. ‘모세야 너는 애굽의 왕자가 아니라 히브리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했을 것입니다.

 

2)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한 결단 (24절)

 

모세는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히브리 노예가 졸지에 애굽의 왕자가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모가 믿음으로 사니 하나님이 그의 자녀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모세에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깊게 심은 결과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왕궁에서 교육을 받은 모세는 사도행전 7장 22절에 기록된 대로,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모세를 연단하셨습니다. 모세가 나이 40이 되었을 때, 길을 가다가 애굽 사람에게 얻어맞는 히브리인을 발견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의 편을 들어 애굽 사람을 쳐 죽였습니다. 애굽의 왕자가 졸지에 현상 붙은 도망자가 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망명하게 된 사건을 믿음의 행위로 해석합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애굽에서의 안락을 포기하게 되었고 결국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겪으면서 출애굽과 광야 여정으로 연결되는 믿음의 장정이 되었습니다. 왕궁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한시도 자기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다가 광야에서 살게 된 모세가 당연히 고난과 고통이 겪었겠지만, 기꺼이 그것을 감수하며 하나님 앞에 훈련과 연단을 받았습니다. 시편 146편 3, 5절에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명예나 권세 대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실족시키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지 말고 자기 심령을 깨끗이 하여 거절할 것은 거절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의식과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3)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고난을 택한 결단 (25절)

 

모세는 애굽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위하여 고난 받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있었습니다. 공주의 아들로서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는 것이 결코 쉬운 결단은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왕궁에서 낙을 누리며 사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은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선택이었습니다.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이 사실은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던 것들이었습니다. 열 가지 재앙 사건은 여호와가 참신인가 아니면 애굽의 신들이 참신인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살면 우상을 섬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애굽에서 누리는 낙은 죄악의 낙입니다. 모세는 이것을 알았기에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히브리 민족을 선택하였습니다. 모세의 위대한 믿음의 결단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4)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상을 바라는 결단 (26절)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모세의 고난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로 비유한 것은 모세가 1400년 뒤의 그리스도를 미리 알고 어려움에 동참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초점이 맞추어지는 이스라엘 역사를 전체의 그림으로 마음에 품고 있는 히브리서 기자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모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의 선택이었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죄악의 땅에 살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이르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인도했고 예수님은 영적인 출애굽을 인도하셨습니다. 잠깐 누리는 죄의 즐거움을 거절한 것은 우리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신 그리스도와 잘 연결이 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모세는 하나님이 상 주실 것을 바라며 그리스도를 위해 당하는 치욕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것으로 여겼습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이야 말로 참으로 귀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헌신, 우리의 봉사, 우리의 예배는 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입니다. 그 상주시는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현세에서도 상을 주시고 하늘나라에서도 상을 주십니다.

 

본문에 나타난 모세의 믿음의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1)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믿음의 어머니를 통하여 자신이 히브리 사람인 것을 분명히 알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받아들였습니다. 모세는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화려함과 권세가 있는 애굽 궁정의 삶을 도리어 무시당하고 수치스런 삶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하여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갖고 저와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138:8절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다윗에게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가 전쟁을 많이 하거나 성전 지을 준비를 열심히 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살았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 자신의 본질에 충실한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별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믿으면서 걸림돌이 되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하던 것이 예수 믿으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럴 때 ‘남들 다하는데 왜 그게 문제냐’는 생각이 들면서 옛 사람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도를 말씀하실 때 제일 먼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삶을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라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거절해야 합니다. 단호하게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세상의 유행들과 기준들에 휩쓸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주님의 청지기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왕 되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거절할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2) 선택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삽니다. 무슨 옷을 입을까, 무슨 일을 할까, 점심은 무얼 먹을까, 누구를 만날까 등등. 어떤 때는 자기 보기에 올바른 선택을 한 것 같았는데 결과적으로 후회스런 결과를 얻습니다. 반면에 어떤 때는 마지못해 한 선택인데 뜻밖에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모세는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그의 부모와 그가 바른‘선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의 미래가 보장되고 온갖 쾌락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그것이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 하였기에 기꺼이 포기하였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들의 고난을 알면서도 그들과 더불어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와 영화보다 자기의 민족과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포기할 것은 기꺼이 포기하고, 선택할 것은 기꺼이 선택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명령, 세상의 법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법을 따를 것인가 하고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3) 믿음은 바라볼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세상의 명예와 권세, 부귀를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상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모세처럼 고난과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하늘의 영광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예수님은 우리의 최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것”의 비결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영원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께 인생을 드리면서 이 큰 그림을 계속 바라보며 나간다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괘락을 누린다 해도 그것은 유한합니다. 그에 비해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영원합니다. 이러한 가치의 차이를 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떠한 값을 치르더라도 영원한 하나님의 상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와 같습니다(마 13:44). 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밭을 얻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려 합니다. 장차 나타날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8:18). 어떤 어려운 환경과 어려운 사람들을 대할지라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람들을 사랑하며 당신에게 약속된 상을 이미 받은 것으로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도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다고 했고, 베드로도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소망했습니다. 성도들은 주를 위해 충성하여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거절해야 할 것, 택해야 할 것, 바라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삶의 최우선 순위를 바로 알고, 내가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할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고,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끈기 있는 자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삶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일생동안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거둔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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