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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12장 1-13절(예수를 바라보자!) - 이삼규

by Preacher 202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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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2장 1-13

예수를 바라보자!

이삼규 목사 20140525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히 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 12: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히 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히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데이브 드레베카라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유능한 투수로서 이름을 날렸을 뿐 아니라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볼을 던지는 왼쪽 팔에 암 진단을 받고 종양 제거 수술을 하며 팔의 근육 50% 정도를 떼어 내야 했습니다. 다들 그가 투수로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으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기도하며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았습니다. 그는 기적적으로 다음 해에 경기에 출전하였고 상대팀을 4대 3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 다음 경기에 출전해 더 빠른 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팔뼈가 탈골되는 일이 일어났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팔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 comeback 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멋진 인생이 보장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눈을 어려운 환경에서 돌려 주님께로 옮기는 것입니다.” 비록 데이브 드레베카의 이야기에는 팔이 기적적으로 낫거나 팔을 절단하지 않아도 되는 반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결과나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 중심에는 세상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돈이 필요하거나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기도요 구원의 길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삶을 경주로 비유합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낙오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연약하고 수많은 실패를 경험한 보통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믿음의 위대한 선진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여기에서 “이러므로”라는 말은 선행하는 요소를 강조하고 확증하는 표현입니다. 이 구절은 11:39-40절과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히 11: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이 구름 같이 우리를 둘러 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관중이 아니라 이미 경주를 마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경주’는 ‘아곤’이라고 하는데 ‘경쟁, 경주, 고투, 투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주를 하는 자들입니다. ‘하며’라는 말은 ‘트레코’라고 하는 ‘달리다’, ‘앞으로 돌진하다’라는 뜻입니다.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자기 몫의 경주를 마쳤고, 이제 우리가 마지막 주자로서 경주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우리를 둘러싸고서 우리의 경주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동계올림픽 종목에 많은 선수들이 출전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선수들은 일찍 경기를 마치고 메달을 목에 걸고 다른 나머지 동료들이 출전한 경기에 관람자로서 응원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자신도 어렵게 난관을 통과하고 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에 남은 동료 선수들도 좋은 경기를 펼쳐서 메달을 목에 걸기를 응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 성도들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1)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율법적인 생각과 죄의 유혹을 떨쳐 버리고 은혜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우리는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경기자가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경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육상 선수나 마라톤 선수 같은 사람들은 간편하고 가벼운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이나 신발은 너무나도 가볍고 편한 제품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마라톤 선수가 신는 운동화는 1억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편하게 잘 달릴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의 백미는 마라톤이었습니다. 선수들이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맨발로 달렸기 때문에 경기장에는 남자들만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맨몸으로 달린 이유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염려와 걱정과 근심 비교의시 등 모든 무거운 것들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십니다. 무엇하기 위하여 초청하십니까?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2)인내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100m 단거리 선수들은 스퍼트에서부터 최대의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거리 레이스를 펼쳐야 합니다. 그래서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어느 구간까지는 어떤 속도로 다른 선수들과 비슷하게 나가다가 막판에 가서 스퍼트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앞서 나가다가 지쳐서 중도에 포기해 버리면 아무런 상도 받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달려야 하고 마지막에 다른 선수들을 앞질러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입니다. 오래 참지 않ㅇ면 가기 힘든 길입니다. 마라톤 선수들을 보면 결국에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월계관을 받아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3)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에서 목표는 예수님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분 한분을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그는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의의 면류관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11장에 나오는 증인들보다 더 확실한 믿음의 모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기쁨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참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죄를 이기셨고 고난 중에 인내하셨으며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셔서 성도의 본이 되신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많은 믿음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연약한 사람들이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죄를 이기고 고난 중에 인내하며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였습니다. 그보다 더 우리 성도들이 따라야 할 최고의 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 영광을 얻기 위하여 가장 큰 시험과 고난 즉 십자가를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최고의 본이 되십니다. 여러분이 지치고 낙심이 되십니까?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셨습니까? 첫 장면은 이렇습니다. 로마 제국이 온 세계를 점령해 나가다 게르마니아의 마지막 지역을 점령하고자 전쟁을 시작합니다. 로마 군대가 칼과 창과 활을 들고 서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게르마니아 군이 전열을 갖추고 서 있습니다. 전투 전에 침묵이 흐릅니다. 조용한 가운데 막시무스 장군이 말을 타고 나와 로마 군대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서 행하는 모든 일은 영원토록 메아리칠 것이다.” 그 순간 로마 군대가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갑니다. 죽기위하여........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의의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전쟁터로 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끝까지 싸워 이겨내는 사람에게는 의의 면류관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순간 우리는 “와~”하고 달려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끝까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욕을 채우기에 바쁘고 , 허탄한 삶을 분변하지 못하고 쫓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는 할 수 없어’라고 하면서 복음을 주십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방법은 “동행”입니다. 주님은 이 한 가지를 원하십니다. “네가 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느냐? 나를 얻기 위하여 희생하기를 원하느냐?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나와 동행하자!”

 

2.징계를 기뻐해야 합니다.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히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우리는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을 징계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고난을 통한 훈련이 없다면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분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징계를 받을 때는 슬퍼 보이지만 연단 받은 사람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지금 겪는 고난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때 그것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먼저 고난을 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나 순교 당했던 허다한 증인들처럼 피 흘리는 싸움이 아니기에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징계입니다. 징계는 우리의 영적 성장과 유익을 위해 주시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기쁘게 감내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열매를 얻게 됩니다. 성도는 자신에게 닥친 고난 때문에 낙심하거나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1)성도는 고난 앞에서 바른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의 고난을 과장하지도, 가볍게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어느 성도도 예외없이 고난을 만나게 될 것인데 이때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해야 합니다.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성도는 선하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롬팔이팔을 믿기 때문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고난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징계는 자녀들을 더 온전하게 만드는 훈련의 과정입니다. 징계가 때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 과정을 마쳤을 때 오는 열매는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징계(훈련)를 받을 때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외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나 쓴 뿌리를 품고 반발하고 불순종하면 훈련을 통한 유익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징계(훈련)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입니다. 그러나 징계(훈련)를 잘 받으면 그것이 내 삶속에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징계(훈련)를 통해서 세상 중심적인 사람에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당시 로마의 가장은 아내, 자식, 노예에 대해서 초법적이고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과오를 범하면 징벌할 수 있었고, 아내가 간통을 저지르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식을 남에게 양자로 넘길 수도 있었고 심지어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자녀를 결혼시킬 수도 있었고 이혼 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권한과 함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책임을 졌습니다. 로마에서는 공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집안의 사교육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유년기에는 어머니 밑에서 양육을 받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아버지가 그의 교육을 책임졌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주로 실천적인 경험을 쌓도록 도와 주었고 제례의 의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녀 교육의 목적은 영광스러운 가문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로마시대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책임을 졌듯이 하나님은 우리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견디기 힘든 훈련도 시키십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어려움이 찾아왔습니까?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주님이 어떤 일을 하실까 라는 기대를 가지십시오.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는 도구입니다. 연단을 잘 받은 자는 의와 평강이라는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난을 이겨 낼 때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회개할 것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영적 성장을 기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징계는 힘껏 경주하는 자가 인내로 감당해야 할 훈련과정입니다.

 

3.믿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히 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히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성도는 누구나 한 사람의 믿음의 모델이 됩니다.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교회에서는 믿음이 어린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성도는 고난이 찾아올 때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기 위해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징계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해 다시 일어나 경주를 계속해야 합니다. 특별히 앞서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뒤 따르는 연약한 자들이 자기 신앙을 바로 잡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먼저 믿은 자들이 본을 잘 보일 때 따라오는 자들이 넘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고침을 받아 더욱 굳건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힘들고 피곤할지라도 다시 일어나 믿음의 경주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성도는 누군가에게 믿음의 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고난 중에 믿음이 흔들리는 자들을 위해 믿음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다시 믿음을 굳세게 할 수 있도록 위로와 도전을 주어야 합니다.

 

2)가장 위대한 믿음의 모델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론 주변에 믿음의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곤해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 눈 앞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다 해도 믿음의 주가 계시고, 곳곳에 예비해 놓으신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처음 가는 길을 무섭고 힘들고 고달픕니다. 반면, 누군가 앞서 간 길을 따라 가는 것은 보다 쉽고 가볍습니다. 믿음의 경주도 이와 같습니다. 누군가 앞서서 고난 중에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경주하고 있다면, 그것을 보고 따라가는 사람은 한결 쉽게 갈 수 있습니다. 때론 믿음의 경주를 그만두고 싶고 주저앉고 싶지만, 그럴 때에도 앞서 가는 사람의 격려와 도움을 힘입어 완주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시험에서 승리하신 주님이 가장 앞서 가시고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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