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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히브리서

히 7장 23-28절(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같은가) - 이준원

by Preacher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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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7장 23-28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같은가

이준원 목사 2012.12.19.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 https://www.kpccoh.org

 

[들어가는 말]

 

지난 9일에 끝난 이번 <생명의 삶> 14기 시험 문제에 이런 OX 문제가 있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 아론의 후손이었고, 신약의 제사장은 목사이다.” 정답은 뭡니까? X입니다. 이 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14기 모든 분이 다 틀렸습니다. 이전에도 다수가 이 문제를 틀렸습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목사가 구약의 제사장직을 잇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보통 목사를 가리킬 때 ‘주님의 종’이라고 하고, 더 길게 말하면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주의 종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님’ 자를 ‘종’에다 갖다 붙인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암시하는 것은,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 계층에 해당되고 일반 성도는 평범한 백성과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같은 계층의 사람들입니까? 오늘날의 목회자와 구약의 제사장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1. 구약 시대의 제사장

 

“1 각 대제사장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서 하나님과 관계되는 일에 임명받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의 희생 제사를 드립니다. 4 누구든지 이 영예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 (히 5:1, 4)

 

방금 말한 것처럼,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일반 백성들과 두 가지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이 일반 백성과 달랐습니다. 첫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받은 아론은 하나님의 선택과 소명에 의해 제사장이 되었고, 그 후에는 세습에 의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구약 시대에 제사장이 되려면 레위 지파 사람이어야 했고, 레위 지파 가운데서도 아론의 후손으로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둘째, 제사장들은 직분을 수행하는 기능 면에서 일반 백성과 달랐습니다. 즉, 일반 백성으로서는 할 수 없는 독특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제사장 고유의 기능으로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1) 속죄 제사

 

“이렇게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들은 속죄를 받게 된다. 그것은 실수로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으니, 나 주에게 불살라 바치는 제물과 속죄제물을 주 앞에 가져 와야 한다.” (민 15:25)

 

제사장들이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써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축복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빌라고 하여라.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민 6:23-26)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공동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축복할 때, 축복의 대상은 실제적으로 복의 내용, 즉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3) 중보기도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을 포함하여 인간 중보자들만이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런 중보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도 자신은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삼상 7:9, 12:23).

 

4) 율법을 가르침

 

제사장에게는 백성에게 율법의 내용을 가르치는 기능이 있었기 때문에, 에스라 같은 사람은 제사장으로서 포로 귀환 후에 이처럼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5) 영적 리더십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삼상 7:3)

 

그런데 제사장들이 율법을 제대로 가르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이 먼저 율법을 범했습니다(겔 22:26). 포로 귀환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에 넘어지게 만들었습니다(말 2:7-8). 그리하여 하나님은 참된 중보자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셨고, 결국 인간 중보자의 완성이신 진정한 메시야, 왕이시고 선지자이시며 제사장이시기도 한 분을 보내시게 되었습니다.

 

2. 신약 시대의 제사장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제사 제도에는 급격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롬 12:1)

 

지금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으로서 이 구절을 읽기 때문에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쉽게 놓칩니다. 만일 구약 식의 제사 제도에 익숙한 유대인이 이 구절을 듣게 되었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경악할 이유가 적어도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이방인을 향해 제사를 드리라고 한 것, 즉 제사장이 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 교회 성도들은 대부분 이방인들인데, 그들을 향해 제사를 드리라고 했기 때문에 정통 유대인이라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론의 자손은커녕 레위 지파도, 심지어 유대인도 아닌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니,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둘째,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바로 자신의 몸이라는 것이 충격적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주로 소나 양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는 자신의 “몸”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니 경악할 일입니다.

 

셋째, 제물과 제사장이 한 개인 안에서 통합이 된다는 것이 엄청난 일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물과 제사장이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물은 제물이고 제사장은 제사장입니다. 제물은 짐승이고, 제사장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제물과 제사장이 같다니, 이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사 제도에 이처럼 놀라운 변화가 생긴 것입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참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런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 중의 메시야이자 구약 시대 인간 중보자들의 완성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의 참되고 진정한 제사장이시기도 합니다. 히브리서를 통해 보면, 구약의 제사 제도를 보완하고 완성하기 위해 주님이 오셨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두 가지 면에서 약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제사장은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자꾸 바뀌기 때문에 제사직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3절)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고 완전한 분이십니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27-28절)

 

이처럼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 했고 그때마다 제사장이 수시로 바뀌어서, 전체적으로 볼 때 제사 제도가 안정적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제물 또한 문제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죄를 범한 것은 인간인데 어떻게 짐승이 벌을 대신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은 장차 올 좋은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실체가 아니므로, 해마다 반복해서 드리는 똑같은 희생제사로써는 하나님께로 나오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완전하게 할 수 있었더라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한 번 깨끗하여진 뒤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제사 드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겠습니까?” (히 10:1-2)

 

비록 짐승 제사가 일시적으로 사죄의 역할을 했지만, 그것은 피상적 수준의 영향만 끼쳤을 뿐이지, 깊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사 제도의 두 요소인 제사장과 제물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제사 제도 자체가 뿌리부터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먼저 그분은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7절 = 시 110:4)

 

이처럼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분은 구약 제사에서 제사장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4-25절)

 

또한 그분은 온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형벌을 친히 담당하셨기 때문에 제물의 약점도 개선할 수 있으셨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히 10:10)

 

예수님이 이처럼 구약의 제사 제도를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또 그분이 오심으로 인하여 제사 제도가 끝났다는 증거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지성소로 통하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둘로 나뉜 사건에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구세주로 오셨을 때 제사 제도와 관련하여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유다 지파 출신으로 아론의 후손이 아니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셨습니다(14-15).

둘째, 예수님은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제물이 되심으로써, 제사장과 제물이 자신에게서 통합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항목은 바로 로마서 12:1에 나타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발견되는 사항들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셨기 때문에 우리도 제사장이 되었고, 그분이 제물이셨으므로 우리도 제물이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 개인에게서 제사장과 제물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우리 개인에게서도 제사장과 제물이 통합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결국 예수님의 구원 사역 때문에 이와 같은 제사장으로서의 특권을 허락받았습니다. 본래 우리는 제사장도 제물도 될 수 없었고, 게다가 제사장과 제물의 역할이 우리 안에서 통합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그분과 연합이 되었고, 이 신비로운 연합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 제물이 되신 것, 그리고 제사장과 제물이 자신 안에서 통합되신 것과 같은 일들이 우리에게서도 똑같이 일어나도록 해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복음의 유익입니다.

 

3.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오늘날의 목회자

 

다시 정리해보면,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신분과 기능 면에서 일반 백성과 달랐습니다. 제사장이 백성과 다른 기능에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예수님도 제사장으로 오셔서 이 다섯 가지 기능을 다 수행하셨습니다. 제사를 드리셨고, 사람들을 축복하셨고, 중보기도를 하셨고, 율법을 가르치셨고,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도 제사장이라고 성경은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을 신분과 기능 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신분에 있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5 살아 있는 돌과 같은 존재로서 여러분도 집 짓는 데 사용되어 신령한 집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벧전 2:5)

 

기능 면에서는 어떻습니까?

 

1) 제사

일단, 제사를 드리는 기능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합니다(롬 12:1).

 

2) 축복

축복의 기능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을 하고,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 (롬 12:14)

 

3) 중보기도

 

중보기도의 기능 역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낫게 될 것입니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약 5:16)

 

4) 말씀을 가르침

 

이와 같이 구약의 제사장의 기능 중에서 첫 세 가지, 즉 제사, 축복, 중보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뒤의 두 가지 기능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아닙니다.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엡 4:11-12)

 

5) 영적 지도력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도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능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지도자들의 말을 곧이듣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을 지키는 사람들이요, 이 일을 장차 하나님께 보고드릴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이 일을 하게 하고, 탄식하면서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탄식하면서 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히 13:17)

 

이처럼 제사장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기능, 즉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영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말씀을 배우고 지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구분이 있는 것은 결코 제사장의 신분이나 제사, 축복, 중보기도의 기능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영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기능 때문입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지도력을 행사하는 이들을 가리켜 ‘목회자’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가리켜 소위 ‘평신도’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고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둘 다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신분을 가지고 있고, 제사, 축복, 중보기도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차이점은 목회자에게는 말씀을 가르치는 기능과 영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기능이 있는 반면, 평신도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의 질문을 다시 던져보겠습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같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은 한편으로는 “예”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오”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와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 똑같이 말씀을 가르치고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면에서 볼 때에는 오늘날의 목회자가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연속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목회자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아주 다르기도 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이 일반 백성들과 신분이 달랐던 것과는 반대로, 오늘날의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이 다른 게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과 신분이 똑같습니다. 또 오늘날의 목회자는 다른 성도들과 같이 제사, 축복, 중보기도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구약 시대 제사장은 자신들만이 그런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목회자는 자신이 마치 구약 시대의 제사장과 같이 일반 성도들과 다른 신분을 가진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거들먹거려서는 곤란합니다. 또 자신만이 제사, 축복,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단지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면에서는 경험을 쌓고 지식과 기술을 훈련하여 성도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도 자신이 목회자와 신분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괜히 목회자보다 열등한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가르침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에 배격해야 합니다.

 

동시에 성도 여러분 스스로 제사(예배)를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축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조차 무조건 목회자에게 떠넘기고 하지 않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예배와 축복과 중보기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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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점검과 결단

 

- 나는 지금 제사장으로서 예배와 축복과 중보기도에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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