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9장 11-22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지성래 목사 20190317
예수사랑교회 http://jsmc.kr/
히브리서 9장은 28절 분량이다. 1-10절은 ‘첫 언약’인 모세 때에 허락하신 회막에서의 제사만으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9절에서 말씀한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라는 표현이 그런 뜻이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를 잡아 번제로 드리는 그 정도의 제사법으로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절에서는 “이런 것은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改革) 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하는 ‘개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둘째 언약으로 인한 새 언약의 완성을 말씀하신 것이다.
히브리서 9장 1-10절이 모세 때에 주어진 ‘첫 언약’의 한계에 대한 설명이라면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9장 11-22절은 ‘둘째 언약’의 주인공이시며 ‘새 언약(言約)의 중보자(仲保者)’(히9:15)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교훈하고 있다. 7장 22절은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라고 하였다. 8장 6절은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라고 하였다. 중보라는 원어는 ‘메시테스’(μεσιτηs)인데 ‘가운데’라는 뜻의 ‘메소스’에서 나온 말이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의 죄 사이에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 사함 받기 위해서 중보자역할을 하였다. 하나님이 그런 직임으로 택하신 것이 제사장직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하는 중보자로 택하셨다는 의미이다.
오늘 말씀의 시작인 히브리서 9장 11절은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장래 좋은 일’이란 계속하여 수 없이 많은 양과 염소와 황소와 암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뿌려 제사하는 번제(燔祭)로도 온전히 해결할 수 없던 죄 사함의 문제를 예수께서는 단번(單番)에 해결하셨다는 점을 언급한 내용이다.
그렇다. 예수는 이 ‘장래의 좋은 일’을 위해서 보냄을 받으신 대제사장이시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란 때가 되어 이룩하신 ‘장래의 좋은 일’인 것이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나의 죄를 씻기는’이란 제목의 찬송이 있다. 252장 찬송이다. 그 찬송의 가사에 보면 5절로 된 가사의 내용 중에 ‘예수의 피 밖에 없네’(nothing but the blood of Jesus)라는 내용이 10번이나 나온다. 맞다. 예수의 피 밖에 없다. 에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란 없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나 비둘기의 피로 해결 할 수 없는 죄 사함의 문제를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이룩해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본문 말씀의 22절에 보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without the shedding of blood there is no forgiveness) 고 하였다. 자, 그러면 본문이 말씀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란 무엇인가. 좀 더 자세하게 묵상하도록 하자.
영원(永遠)한 속죄(贖罪)를 이루심.
인간이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죄의 문제이다. 죄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있었나. 그러면 언제부터 인간에게 죄가 들어 왔나. 죄의 시작이 무엇인가. 불순종이 아닌가. 하와가 뱀의 유혹 앞에 무너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와와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 죄가 들어 왔다. 그 죄의 시작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하게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와는 뱀과 이야기 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뱀에게 넘어 가고 말았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행위이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말씀을 알고 있나.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성경 말씀들을 듣고 또 듣나.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위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진지함이 없는 것이다. 사탄은 계속해서 믿음의 사람에게 속삭인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간교하게 접근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여자가 뱀에게 말하였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그 때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이와 같은 대화로부터 뱀의 유혹 앞에서 하와가 먼저 무너지고, 남편 아담도 따라서 무너졌다.
과거에는 방바닥의 구들 밑으로 연탄의 열기가 통하게 하는 난방법을 사용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잠자던 중에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인 2018년 12월에 있었던 강릉 패션 유독가스 유출 중독 사고로 은평구 대성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다. 7명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죄란 것이 그런 것이다. 죄를 사소하게 여기면 안 된다. 죄를 별 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면 안 된다. 죄란 어마 어마한 죄만 죄가 아니다. 작은 죄도 죄이다. 예수는 죄의 결과 보다 원인을 더 심각하게 다루셨다. 살인(殺人)만 심각한 죄가 아니라 형제를 대할 때에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고 경고하셨다. 간음(姦淫)이 심각한 죄이지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라고 경고하셨다.
요즘 신문과 라디오와 TV와 인터넷에 도배가 되는 사고사건 뉴스와 온갖 스캔들 소식들을 보라. 살인, 음란, 도박, 마약, 거짓말, 탈세 등등 별의 별 사건 소식들이 넘쳐 나고 있다. “유명한 가수 누구누구가 어쨌다더라, 경찰 간부 누구누구가 저쨌다더라, 사법 고시 출신의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 차관까지 지낸 누가 어쨌다더라.”이런 모든 낯 뜨거운 소식 들 속에 하나님을 떠나 불순종하던 아담과 하와의 피가 섞여 흐르고 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세 때에 제정해 주신 첫 언약의 피의 제사를 계속해 왔으나 그것만으로 해결 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죄의 문제였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룩하신 것은 ‘영원(永遠)한 속죄(贖罪)’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속죄’란 말씀이 무엇인가. 예수 만나야 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야 한다. 예수 안에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께서 살아계셔야 한다. 저들이 가수이든, 경찰이든, 장관이든 차관이든 예수 안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예수 안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예수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겠나. 그들이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예수 영접하고 살아가던 인생들이라면 그렇게 인생이 비참해 질 수 있었겠나. 맞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피부색, 언어, 인종, 남녀노소 누구나 다 개인적으로 예수를 만나야 한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새사람이 되게 하는 힘은 예수에게서 나온다.
왜 히브리서 기자가 ‘영원한 속죄’의 주제를 이처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 의인은 없다. 단 한 사람도 없다. 생각이 죄이고, 의도가 죄이고, 보는 것이 죄이고, 듣는 것이 죄이고, 말하는 것이 죄이다. 인간은 다윗의 고백처럼 죄 가운데서 잉태되고 죄 가운데서 태어나고 죄를 먹고 산다. 인간은 죄 덩어리다. 인간의 피 안에 아담과 하와에게서 시작된 죄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 죄가 행동으로 이어져서 어떤 악한 죄를 지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 거역,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 탐심” 이런 정도의 십계명의 문제 앞에서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교양, 도덕, 윤리, 체면, 문화, 경제 수준의 옷으로 자신 속에 악취가 나는 한센 병과 같은 심각한 상태의 추하고 악하고 부끄러운 타락된 실상을 숨기고 가리고 아닌 척 하면서 위선의 탈을 쓰고 살아간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하나님은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추하고 더럽고 죄 되고 타락한 존재인지를 속속들이 아신다. 이건 모세도 마찬가지였고 그의 형 아론도 마찬가지였다. 아론의 제사장의 대를 이어야 하는 아론의 아들들의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하여 정교하고 화려한 제사장의 옷을 지어 입게 하였다. 베로 만든 속바지는 넓적다리까지 가리도록 해서 하체를 모두 가리게 하였다. 그 위에 속옷을 입게 하고 그 위에 겉옷을 입게 하였다. 그 위에 ‘에봇’ 즉 ‘거룩한 옷’을 지어 입게 하였다. 그 위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였다.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가지 보석을 가슴에 새겨 달았다. 판결 흉패 안에는 ‘우림’과 ‘둠밈’을 넣게 하였다. ‘우림은 빛, 둠밈은 온전함’이란 의미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었다.
이처럼 정교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그 모든 목적은 ‘거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답하여 보라. 그런다고 거룩해 지나. 인간이 아무리 황금실로 옷을 지어 속옷과 겉옷을 겹겹이 화려하고 아름답게 하여 인간의 외모를 가린다고 해서 죄인인 인간이 거룩해 지나. 성결해 지나. 아니다.
최근에 계속하여 대하는 히브리서의 내용이 그것이다. 양과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인간이 온전하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 아론에게서 시작된 그 어느 제사장 자신도 죄에 대하여 무흠하고 깨끗한 존재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 속죄일을 맞아서 민족 앞에서 죄의 문제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던 그 어떤 대제사장 자신이라도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
그러므로 맞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영원한 속죄’를 이룩하셨다. 뿐만 아니라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룩하셨다. 또한 ‘단번’(單番)에 ‘성소’(聖所)에 들어가심으로 첫 언약으로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영원한 속죄’를 완성하신 것이다.
12절 후반부에서 말씀하는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는 그 성소는 이 땅에 정해 놓으신 성소가 아니다. 모세 때에 광야에 제정하신 성막의 그 성소가 아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단번에 들어가신 성소란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 보좌 우편의 보좌에 앉으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리라.” 이런 말씀을 묵상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깨달음을 가진 성도들이라면 이젠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
이즈음에서는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이 구구절절이 은혜로 충만하게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결심과 결정과 판단과 느낌과 범사를 사로잡아 이끌어 가시는 그런 삶을 매 순간마다 살아가기 위하여 주 안에서 씨름하여야 맞다. 신앙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에베소서 2장 1-10절을 함께 읽자.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속죄를 은혜로 체험한 나라고 하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 대답을 스스로 찾아 가는 신앙생활이 되길 축원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심.
염소와 황소의 피 그리고 암송아지의 재로 인간의 부정함과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육체를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려 하였다. 그것이 구약 시대에 계속하여 행해져온 첫 언약에 의한 성막의 제사이다. 그러나 영원한 성령으로 말미암으셨고 흠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셨다. 이것은 단번에 이룩해 주신 속죄의 은총이며 대속의 권세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덧입고 죄 사함을 받은 성도라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그 섬김이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믿음과 확신에 차서 간증이 넘치는 섬김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에 바울 교회 황희수 목사의 간증의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국제기드온협회에서 발간하는 <기드온뉴스레터> 2019년 3월호에 실린 간증이다. 지난해 전국 기드온협회 제 52차 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그 때 간증한 내용이다.
“저는 부산 영도에서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불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위로 세명의 누이와 두 명의 형들이 있었습니다. 세명의 누이들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에 아버지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모두 가출해 버렸습니다. 큰 형은 중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바로 위 형 만이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집을 떠나 살았습니다. 저는 늘 집에 혼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여섯 살 쯤 되던 때에 잠 자고 있는 나의 빰을 때리시면서 깨우셨습니다. 술을 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집 밖에서 잠을 자는 날이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신문배달을 했습니다. 13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도둑질을 시작했습니다. 중 3때 부터는 불량 서클에 들어가서 친구들 돈도 빼앗고 도둑질을 날마다 하며 지냈습니다. 퇴학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우여 곡절 끝에 부산 혜광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기독교 학교였습니다. 학교 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학교 정문에서 기드온 성경을 나누어 주고는 하였습니다. 조회 시간에 어느 선교사님이 오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성경을 읽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기드온의 파란 비닐 커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선배의 전도를 받고 부산송도제일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시편 57편의 말씀이 마음에 받아 들여졌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로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날부터 날마다 아버지가 술을 끊고 예수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40일 간 작정 기도를 계속하였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이전 보다 술을 더 많이 마셨습니다. 40일 중에 10일 정도 졸면서 기도한 것이 회개가 되어 다시 10일을 더 작정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10일째 되는 날 아버지는 병원에 실려 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이제는 술을 끊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 잘 믿으시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정문에서 나누어 준 성경책을 받아 든 나의 친구 세 명 중에서 한 명은 목사가 되고, 한명은 태국 선교사가 되고, 한 명은 ‘도박중독치유선터’에서 근무하는 안수 집사로 서로가 자기 자리에서 주님을 잘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 권의 성경책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고 확신합니다. 나와 나의 두 친구들을 통해서 수 많은 영혼들을 나라 안팎에서 구원하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한 권의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목사로 삼아 주셨고 제 친구들을 선교사와 주를 충성되게 섬기는 집사가 되게 변화 시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한다.
영원(永遠)한 기업(基業)의 약속(約束)을 얻게 하심.
예수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그를 믿는 성도들을 죄에서 속량(贖良)하시고 부르셔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해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이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다.
여기서 말씀하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란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뿐만 아니라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실 약속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히브리서 12장 22-23절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요한 계시록 19장이 말씀하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와 같은 상태이다. 요한 계시록 20장이 말씀하시는 ‘천년 왕국’을 말씀한다. 요한 계시록 21장이 말씀하시는 “새하늘과 새 땅이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 강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 계시록 22장 2절에 보면,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다.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셔서 택한 백성들을 부르시고 속량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우리 각 사람에게 충만하길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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