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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갈라디아서

갈 4장 1-11절(유업을 이어갈 하나님의 자녀) - 이삼규

by Preacher 2023.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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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4장 1-11

유업을 이어갈 하나님의 자녀

이삼규 목사 20200112

낙양교회 http://nakyang.onmam.com

 

갈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 4: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1833년, 진화론을 전개하면서 원숭이가 진화해 사람이 되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최초의 단세포생물이 점차 진화해 고등동물이 되었고,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론을 설정한 다윈에게는 원숭이와 사람 사이의 중간 고리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는 중간 고리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미개한 원주민이 사는 섬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남양군도의 어느 섬에 도착했을 때, 분명 사람으로 생겼으나 원숭이처럼 생활하는 집단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었고 닥치는 대로 먹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 일부러 그 섬에 다시 찾아간 다윈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마을에는 예배당이 세워져 있었고, 깨끗하게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찬송하는 주민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30년 전 발견했던 미개인이 아닌 문명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존 패이턴이라는 선교사의 노력으로 새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 돌아간 다윈은 런던 선교 협회에 거금을 헌납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좇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익혀 온 유대교 사상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뿌리 깊은 유대교 사상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진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3장에 이어 4장에서 바울은 유대교 잔재를 버리지 못했기에, 유대교도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에 흔들리는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율법은 초등교사로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더 이상 초등교사 아래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이 증언합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구원받은 성도라면 더 이상 율법에 매여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상속자라 할지라도 후견인이 필요했던 어리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성장해 하나님 아버지의 유산을 온전히 상속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유업을 이를 자의 유년기(幼年期)

 

갈 4: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갈 4: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바울 사도는 유업을 이을 상속자의 유년기를 묘사하며 본문을 시작합니다. 어린 상속자는 상속을 받을 때까지 종과 다름이 없는 상황입니다. 보통은 어린아이는 ‘파이디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네피오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네피오스’라는 단어는 아무 것도 배울 수조차 없는 아기를 가리킵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아기같이 유약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법적으로 유업을 이을 상속자이지만 아기와 같다면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그에게는 후견인과 청지기가 필요합니다. ‘후견인’(에피트로포스)은 ‘청지기’(오이코노모스)와 비슷한 말로 주인을 대신해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직무를 맡은 자를 말합니다. 흔히 집사(執事)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헬레니즘 시대에 ‘에피트로포스’(후견인)나 ‘오이코노모스’(청지기)는 작지 않은 공적 직함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율법을 초등교사(파이다고고스)라고 부릅니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교사’(파이다고고스)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헬라와 로마 시대에 유력한 가문의 아이를 돌보고 인도하는 종을 뜻합니다. 그때 가정교사는 종들이 맡아서 했습니다. 성도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율법이 그의 행동을 지도하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로 제한됩니다. 아이가 성장하면 더 이상 초등 교사의 지도가 필요 없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변화 되었기에, 율법 아래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죄를 깨닫는 일이 필요하기에 율법의 가르침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믿음이 생긴 이후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참 선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때가 차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갈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유업을 이을 자’를 어린 시절 동안 후견인 아래 있도록 하셨는데 (갈 4:1-3), 이제 유업을 이을 자가 ‘종’(slave)처럼 속박을 하던 모든 후견인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유하게 된 시기가 왔음을 말합니다. 이 ‘때’(크로노스)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말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이 자유의 시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을 자들을 “세상의 초등학문”(4:3)이나 학문의 기초를 깨닫게 해주는“몽학 선생”(3:24) 같은 역할을 했던 율법의 단계에서, 바야흐로 성숙한 "믿음의 단계"로 나아가도록 새 시대의 문을 활짝 열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3:19절에서는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시점을 “이 모든 날의 마지막”(1:2) 때라고 동일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때가 찼다는 말은 유년시절에서 장년시절로 바뀌었다는 것(업그레이드)을 말하는 동시에, 역사의 마지막을 성취한다는 의미로서 때가 찼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역사관이 독특하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종말”의 “도래자”(bringer)로 믿을 뿐 아니라, 종말의 “성취자”(accomplisher)로서 인식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의 모든 역사와 계시 활동은 예수 안에서 완성된다는 역사관을 갖는 점입니다. 예수의 이름 아래 세상 모든 역사가 통일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때가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 아래서 태어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율법 아래 태어나셔야만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옛 언약의 성취였지만, 특히 사도 바울은 지금 율법을 지켜야 할 모든 인간들의 책임과 더불어,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 율법의 형벌, 즉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책임을 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명기 21:23절을 인용하면서 나무에 달린 자의 저주가 예수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음을 말하는 갈라디아 3:13절과 상통합니다. 물론 죄는 없으시지만 죄 있는 인간의 육체를 입고 죄 있는 인간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오셔서 죄 아래 있는 인간들을 대속 하셨음을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 아래 오신 것입니다. 아들의 명분을 얻는 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양자됨'이라는 뜻으로서 신약성경에서는 바울만이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됨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TDNT).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제도와 율법을 순종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으로 태어나신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으시고(눅 2:21), 유월절 절기를 지키셨으며(눅 2:41; 요 2:13), 그 밖의 모세 율법을 지키면서 자라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속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을 아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주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빌 2:8).

 

하나님께서 언제 이 일을 하셨습니까? 때가 차매 하신 것입니다. 때가 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유업을 물려줍니다. 하나님도 때가 차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재산 상속의 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훨씬 차원 높은 것입니다. 종이 아닌 아들이라는 명분을 얻게 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주신 방식이 독특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은 여자(귀네)에게서 나셨습니다.

 

여자에게서 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원죄가 가져온 죄책 없이 무죄하게 태어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여자들은 인구수에 들지 못할 정도로 천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로마시대에서 가정주부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습니다. 여자들은 집에만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스토아 철학은 여자들에게 평등한 교육을 시킬 것을 주장했습니다. 로마사에서는 타락한 여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고귀한 여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 혼인 잔치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여”라는 부르는 호칭은 결코 낮춰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경칭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율법 아래서 나셨습니다.

 

율법 아래 아심은 그가 여자의 후손으로 무죄하나, 역시 율법의 종으로 태어나 율법의 요구 아래 있었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셨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까?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고 마침내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 ‘아들의 명분’(양자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정죄 받는 삶을 사셨다면, 그분은 우리를 율법의 종살이에서 속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속량’을 위해 예수님께서 지불해야 하셨던 대가는 , 무죄하며 율법을 완전하게 준수하신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에게서, 또한 율법 아래서 나게 하신 것입니다.

 

아들의 권리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신약 성도는 구약에 기록된 언약들이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아브라함 당대의 사람들은 볼 수도, 누릴 수도 없었던 온갖 축복들을 실제로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실제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특별한 은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의 마음 안에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성도 안에 있는 보혜사 성령은 언제 어디서든 그를 도우십니다. 성령은 성도가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언하십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십니다. 아람어에서 아버지를 뜻하는 '압바(abba)'라는 말은 신약성경에는 세 곳에만 나타납니다.

 

➀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➁바울이 주기도문을 생각하고 말한 두 구절에 나타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4; 롬 8:15).

 

➂"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아람어 원문에는 '압바'로 나타난다(눅 11:2).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획득한 신약 시대 성도들은 예전의 율법이나 세상의 지배 세력들에 노예가 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로서 자신의 특별한 지위와 신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세상적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노릇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미국 테네시주의 주지사였던 벤 후퍼는 1870.10.13. Newport, Cocke County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르무엘 후퍼 박사였고, 생모는 Sarah Wade였습니다. 하지만 후퍼는 혼외 결혼으로 태어난 벤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엄마는 세 도시를 전전하며 아기를 데리고 이사를 다니다 마지막 세 번째 도시 녹빌에서 엄마는 아들 벤을 감독교회가 운영하는 성 요한 고아원에 맡기게 됩니다. 그 후 9살이 되자, 벤은 자기 친부 후퍼 박사에게 합법적으로 양자로 입적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벤은 후퍼 라는 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부터 친부에게서 양육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법대에 진학해서 변호사가 되었고, 나중에는 테네시주 주지사가 되어서 2번 더 재선에 성공했으며, 상원의원으로도 2번이나 임기를 마쳤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 불우한 어린 시절을 잘 견뎌냈을까? 그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벤 후퍼 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날 때부터 아주 작은 체구였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이 그런 벤 후퍼와 어울려 노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이들도 그를 놀리며 멸시했습니다. 항상 동네에서 따돌림과 비웃음, 멸시를 받으며 어렵게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벤 후퍼가 12살이 되었을 때, 마을의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했습니다. 소문에 그 목사님은 어느 누구든지 사람을 그대로 받아주며 비난하지 않으며, 그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다는 소문을 어린 후퍼가 들었습니다. 그는 그 목사님이 어떤 분일까 호기심에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긴 했지만 일부러 늦게 가서 살며시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를 할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에 벤 후퍼는 너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넋을 잃고 있다가 보니 축도까지 끝나버린 것입니다. 나오려고 하니 벌써 사람들이 통로에 죽 늘어서 있었고,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벤 후퍼를 보고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며 아는 체를 하였습니다. 순간 주변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이때 목사님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지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나는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다. 네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지!” 목사님의 그 말에 주변의 사람들은 더욱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순간 목사님은 후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거든!" 목사님의 말을 뒤로 한 채 후퍼는 당황해서 그 자리를 급하게 빠져 나가는데, 목사님은 다시 그의 등을 향해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지났습니다. 벤 후퍼는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직무를 너무나 잘 수행했으므로 재선까지 되었습니다. 주지사 벤 후퍼는 훗날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날, 젊은 목사님을 만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바로 그 날이 테네시주의 주지사가 다시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입니다. 믿습니까? 아들은 이렇게 놀라운 권리가 있습니다. 그때와 이제 (동영상-이베트 카스틸로)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할 당시, 성도들은 복음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을 떠난 후 슬며시 들어온 유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복음의 진리에 혼란이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더 이상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받은 상당수의 성도들이 유대교 사상, 율법의 지배권 아래서 다시 종노릇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그들이 과거 율법을 좇던 시절을 ‘종노릇 하던 때’라고 규정하며, 그 당시에 세상의 초등학문, 율법의 지배를 받던 일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느냐 라고 책망합니다. 율법의 종노릇하는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오늘날에도 날과 달과 절기와 해에 목숨을 거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의 유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율법이 정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계속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율법으로 다시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하고, 헌금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동기로 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지 않는 날은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것 같고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불편함을 피하고자 감사의 마음도 없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옵니다. 우리가 이런 동기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다시 율법에 종노릇하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전통과 규범이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그것 또한 우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녀의 신분에 맞는 마음과 행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말씀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전에는 종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합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새로운 지체들을 위해 봉사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헌금도 내고 싶어집니다. 이 영혼의 자유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이 자유로움과 기쁨을 누구도 빼앗지 못하도록 복음의 은혜 아래 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의 길로 행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악한 이 세대 가운데서 사람들을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미국의 댈러스 신학교 하워드 핸드릭스 교수는 월트라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해 늘 강조합니다. 월트는 염색공으로 일하다가 오래전에 은퇴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는 작은 교회에서 주일학교 성경 공부반을 인도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의 반에는 13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들 중 11명이 월트의 인격과 가르침에 감명을 받아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는 월트를 통해 받은 영향력을 이렇게 전합니다.

 

“솔직히 나는 월트가 해 준 말은 거의 기억할 수 없지만, 그에 관한 모든 것은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부모보다 나를 사랑했으니까요. 그는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가르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사역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길에 한 헌신된 교사를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 아래 있던 우리를 속량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을 보내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은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 갈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자녀 된 신분을 망각하고 종노릇하던 옛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율법주의가 아닌 진리의 복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 다른 사람들을 바른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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