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5장 50-58
부활을 정말로 사모합니까?
권율 목사 2019. 2. 9.
부곡중앙교회 청년부 https://blog.naver.com/ryulkwon0616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성경의 모든 본문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오늘 본문은 더욱 실제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가 결국 어떻게 될지를 두고 사도가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어제 본문에 이어 “몸의 부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35절 윗부분에 소제목이 붙어 있는 표현 그대로입니다.
설교 초두부터 제가 여러분에게 정말 진지하게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몸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몸 상태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영광스러운 그 부활체를 참으로 소망하고 있습니까? 매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대로, “몸의 부활과 영생을” 정말로 믿고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마치 우리 몸이 죽어 없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이 땅에서 죽으면 육신은 이 땅에서 썩어 없어지고, 우리의 영혼만 저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금 제가 우리의 영혼이 어디에 있게 된다고 말했습니까? 저 ‘천국’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은 엄밀히 말해 잘못된 표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직전에 한편 강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
이 구절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회심한 사람이 죽으면 그 즉시 그 영혼이 천국이 아닌 “낙원”에 가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낙원을 “셋째 하늘”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고후12:2). 그래서 우리는 성도가 죽어 그 영혼이 들어가는 그곳을 “낙원” 또는 “셋째 하늘”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현재 낙원에 있는 영혼들은 몸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 땅에서보다는 훨씬 더 영광스러운 상태이지만, 아직 부활의 몸을 입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학 용어로 이것을 ‘중간 상태’(intermediate state)라고 부릅니다. 중간 상태에 있는 이 영혼들은 낙원에서 영원토록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다가 낙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하나 남아 있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사도신경이 말하는 대로, 우리에게는 “몸의 부활과 영생”이 최종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몸의 부활”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다시 말하지만, 낙원에서는 “몸의 부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까?
오늘 본문 처음(50절)에 나오듯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 몸의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그럼 또다시 질문해 보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한자어로 옮긴 말이 ‘천국’입니다. 이 천국, 즉 하나님 나라는 낙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과 제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지금 이 말이 혼란스럽다면 여러분의 천국 개념은 잘못되어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마6:10a)라고 우리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좀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주께서 가르쳐 주셨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것입니다. 어디에 오는 것입니까? 계속 반복하지만, 여러분과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 오는 것입니다!
저를 따라 한번 말해 보겠습니다. “낙원은 가는 것이고, 천국은 오는 것이다!” 방금 이 한 마디를 머릿속에 꼭 새길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장차 이 땅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본문 50절 말씀대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습니다. “혈과 육”이라는 말은 썩어질 육체를 가진 연약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 우리의 몸 상태로는 장차 이 땅에 완성될 천국을 이어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의 최종적인 부활이 이 땅에 완성될 천국(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날에 모두에게 순식간에 일어날 것입니다. 51절 말씀 그대로입니다. 다 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이 울리며 예수께서 재림하실 그날이 되면,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구약에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 한 “비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라는 진술을 덧붙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도 육신의 죽음을 맛보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부활은 2가지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먼저는 재림 전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대부분 사람들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이 땅에 묻혀 있는 그 육신이 죽은 상태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재림 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육신도 비록 죽음을 맛보지는 않겠지만, 그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울은 53절에서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보다시피 “썩을 것”과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대조시키고 있고, 또 “죽을 것”과 “죽지 아니함”을 서로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54절에서 그는 주의 재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후반부에 보면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5장 8절의 첫 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재림의 때가 되면 모든 인간을 집어삼켰던 사망이 오히려 “승리 속으로 집어삼킴을 당할 것”입니다(원문 번역: κατεπόθη ὁ θάνατος εἰς νῖκος). 사랑하는 여러분, 사망이 어떤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생의 결말입니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사망이 우리 몸이 부활하게 될 그날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계속해서 사도는 호세아 13장 14절 말씀을 인용하며 부활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55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다시 말해, 부활의 때가 되면 사망은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사망이 쏘는 것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쏘는 것”(τὸ κέντρον)이라는 말은 ‘독침’(sting)이라는 뜻입니다.
56절 말씀에서 보듯이, 사망은 죄라는 “독침”(쏘는 것)을 우리에게 놓습니다. 그래서 죄의 독침을 맞은 우리 인간은 사망의 독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는 또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다시 말해, 죄가 힘을 가지는 것은 율법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한 것이지만(롬7:12), 율법의 정죄하는 기능 때문에 죄가 우리를 대하여 무서운 힘을 행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와 사망 때문에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57절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 주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시어(롬10:4) 여러분과 저를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두에서 제가 드린 질문을 또다시 해 보겠습니다. 참으로 여러분은 “몸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 영혼이 낙원에 가 있다가 주의 재림 때 이 땅에 다시 와서(살전4:14) 우리의 부활체와 완벽하게 결합하게 될 그날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이 땅에 완성될 천국(하나님 나라)에서 순식간에 일어나게 될 영광스러운 부활 사건을 정말로 학수고대하고 있습니까?
정말 그러하다면 58절 말씀대로, 여러분은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서 감당하는 여러분의 모든 수고가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참고 인내하는 우리의 모든 수고가 장차 오게 될 하나님 나라(천국)에 기여하게 될 것이고, 이 모든 수고에 주께서 천국의 상급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붙잡을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주의 일에 힘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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