딛3장 12-14
부족함에 대하여
조영식 목사 2014.3.30.일
김포한신교회 http://kimpohansin.onmam.co.kr/
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13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그들로 부족함이 없게 하고/
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0. 들어가는 글
사순절 넷째주일입니다. 개나리 꽃들이 활짝 피어서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이라고 합니다. 개나리 꽃들을 보면서 희망찬 봄날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은 마지막 부분에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디도서의 마지막 부분을 보더라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울이 소개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지난주 읽은 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느냐 보다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사람들에게 어떤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시는가?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자신에게 오라고 부르는 디도는 누가의 동생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아주 적극적인 성격으로 어려운 일을 맡겨도 시원스럽게 처리를 잘하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디모데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섬세하게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다보니 목회하면서 속으로 싹이다가 위장병에 걸리기도 합니다(딤전5:23). 하나님은 우리의 성격대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바울은 어려움이 있는 교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디도를 보냅니다. 그러나 교회의 체계를 섬세하게 갖추기 위해서는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디모데처럼 섬세하고 차분하게 세워가는 사람도 필요하고, 디도처럼 적극적이며 과감하게 처리하는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우리의 성격대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서로 성격이 다르다고 판다하기보다는 다른 성격대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디도가 목회했던 그레데 섬은 뱃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거친 지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딛1;5). 바울은 그레데 지역 교회의 남은 일을 정리하고 교회의 일꾼들을 세우기 위해서는 디모데의 성격보다는 디도의 성격이 더 적합해서 파송했던 것입니다. 디도가 그레데 섬의 교회에 파송 받아서 남은 일을 정리하자 바울은 그레데 섬의 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마게도냐의 서북부에 있는 니고볼리로 급히 오라고 합니다(12절). 그리고 겨울을 함께 지내고자 합니다. 바울이 디도를 찾아서 함께 지내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는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이 찾으시는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디도가 그레데 교회 파송 교회를 부흥시켰는데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바울에게 와서 뒷바라지를 하면서 조수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겸손히 순종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우리가 죽는 것을 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옛사람이 죽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의 순종이 죽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죽어야 합니까?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야 겸손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옛사람이 살아서 순종을 죽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디도는 옛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부흥시킨 교회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바울에게 시중드는 일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옛사람이 죽어서 주님의 필요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2. 함께 지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바울이 함께 지내고 싶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부족함을 없게 하는 사람입니다(13절). 우리는 디모데처럼 “소극적이고 섬세한 성격이냐?” 아니면 디도처럼 “적극적이며 과감한 성격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함을 보았을 때 “지적만을 하느냐?” 아니면 “없애려고 힘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디도는 부족함을 지적만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려고 힘을 썼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바울은 율법교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먼저 보내니 부족함을 없애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라는 것입니다(13절). 율법교사인 출신인 세나와 지식적인 아볼로는 부족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성향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디도에게 보낸 것은 이미 부족함을 없애는 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파송으로 디도가 그레데 섬 교회에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는(딛1:5) 개혁 한글 성경에서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로 나와 있습니다. 그는 그레데 교회에서 부족함을 바로잡는 일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레데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부족함이 많은 교회입니다. 부족함을 지적한다면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 부족함이 저를 향한다면 다른 목회자들보다 부족함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주 중국에서 개척을 시작하는 가정교회 목회자들과 은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부족하여 실수한 이야기들을 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족하여 실수를 계속하는데 하나님이 개척한 교회를 세워주신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중국에서 개척한 가정교회 목회자들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그에게 돕는 배필로 하와를 창조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여기서 ‘돕는 배필’은 부족한 점을 채워준다는 의미입니다. 부족한 점은 지적할 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채워줄 때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와 목회자가 타락하지 않는다면 부족한 점을 디도처럼 혹은 디모데처럼 자신의 성격에 따라서 채워주라고 성도님들을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것보다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서 함께 지내고 싶은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3. 어떻게 부족함을 채워야 하는가?
부족한 점을 없애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4절). 모든 모임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으면 열매가 풍성해집니다. 교회도 누군가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헌신이 있어야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부족한 것을 없애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고 지적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 공동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중국 가정교회는 부족함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족함을 지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서로가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점을 채우고자 힘썼습니다. 그러다보니 중국 가정교회는 주안에서 형제 자매처럼 사랑이 넘쳤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필요한 것을 준비할 때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워야 합니다(14절). 좋은 일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라는 결과에만 집착하면 좋은 일에 힘을 써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과정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열매는 좋았지만 좋은 일에 힘을 써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는 것으로 모세와 다투었습니다(민20:3). 하나님은 물이 부족한 것을 해결해주시고자 모세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고 합니다(민20:8). 그러나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고 합니다(민20:11). 하나님은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지만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물이 나와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셨습니다.
여기서 결과가 좋다고 과정이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도 목회자들이 잘못된 삶을 살고도 성도들이 은혜를 받으며 결과는 좋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타락하여도 교인 숫자가 많이 모이는 결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인 숫자를 내세우며 자신의 타락을 무마시킵니다. 그렇다고 결과 때문에 목회자의 타락한 삶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잘못된 방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족함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방법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보고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과정을 보고 심판하셨습니다. 우리들도 교회에 와서 하는 일들의 결과가 괜찮다고 잘못된 방법의 삶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결과가 좋은데 무엇이 문제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열매는 그 과정도 좋은 일에 힘을 Tm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좋은 일에 힘을 써서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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