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1장 1- 9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라
허창수 목사 4.06.29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는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어 영과 육을 가지고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만물 중에 최고의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므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과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만남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거룩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범죄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9:42,43에 ‘너희가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번제를 드리면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과의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은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가축 중에서 소나 양의 숫컷으로 예물을 드리도록 하셨습니다(2). 흠 없는 수컷을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드리면 기쁘게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3).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물로 바치는 송아지나 양의 머리에 안수를 하고 잡아 번제로 드리면 속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 이 말씀에 기독교의 깊은 진리가 있습니다. 속죄의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속죄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속죄가 될 것이라’는 말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나 허물이 가려져 죄가 없는 것처럼 인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는 여전히 있지만 죄가 없는 것처럼 인정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여러분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번제물로 사용할 송아지나 양은 흠 없는 숫컷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흠 없는 송아지나 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입니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번제물인 송아지나 양의 머리에 안수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안수’란 ‘올려놓다’란 뜻으로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죄를 송아지나 양에게 올려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송아지나 양이 그 사람의 죄를 대신 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안수 한 송아지나 양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5). 자신이 죽어야 할 것을 대신 송아지가 죽는 것을 보면서 속죄의 은총을 대신하여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서 제단위에 올려놓고 태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화제라고 하셨습니다. ‘화제’란 불에 태워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타는 냄새를 여호와께서 향기로운 냄새라고 하셨습니다(9).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씀을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불고기를 즐기신다’는 말로 비하하는 것을 들은 즉이 있습니다. 그러나 ‘향기로운 냄새’란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번제물을 기쁘게 받으심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4).
번제의 핵심은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께 드리는 데 있었습니다. 이렇게 번제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번제’란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불에 태워 지내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까지 이와 같은 번제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시대가 지남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 이방 나라에까지 흩어져 살았습니다. 먼 이방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명절을 지키기 위해 집에서 키운 송아지나 양을 예루살렘 성전까지 끌고 올 수 없기 때문에 예루살렘까지 와서 송아지나 양을 사서 제물로 받쳤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양문이 있었습니다. 양문은 제물로 바칠 양을 끌고 들어가는 문입니다. 양문 곁에는 송아지나 양이나 비둘기를 파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양문 곁에 시장에서 송아지나 양을 사서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까지는 예수님도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성전 안에서 송아지나 양을 사고 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시고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매매하는 자들을 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는 성전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시며 쫓아내신 것입니다(마21: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가축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키운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습니다.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사람들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예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14). 마리아와 요셉은 정결예식의 날에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때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을 가지고 제물로 바쳤습니다(눅2:24). 요셉과 마리아가 산비둘기를 제물로 바친 것을 보면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바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제사의 제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대적인 변화와 삶이 변하였다고 해서 제사의 본질적인 의미를 달리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대로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께서 기쁘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의 제사는 더 이상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바치지 않아도 되어졌습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를 잡고 양을 잡아 제물로 바쳤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이후로는 더 이상 송아지나 양을 잡아 불에 태우는 번제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쳐 준 제사의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번제로 드렸던 제사를 이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송아지나 양을 대신 속죄함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물은 구약 시대에 송아지나 양, 아니면 비둘기를 대신 하여 헌금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늘 바라보면서 헌신의 삶을 다지고 속죄의 은총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피를 뿌렸던 의식은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써, 죄사함 받고 또한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새 생명을 얻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나 양을 바쳤던 그때의 그 의미를 알고 그때의 그 마음으로 예물을 받쳐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마다 예물을 바칩니다. 그 예물은 송아지나 양을 대신하여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송아지나 양을 제물로 바칠 수 없기 때문에 헌금을 합니다. 헌금으로 예물을 바친다고 해서 구약의 송아지나 양을 예물로 바쳤던 그 의미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바치는 예물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향기로운 예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아지나 양의 머리에 안수하였던 것처럼 헌금도 우리의 속죄함을 받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성도들 대부분이 대속제물이라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송아지나 양의 머리에 안수하였던 것처럼 헌금에 안수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예물로 바치는 헌금이 자신의 죄를 속해 주신 예수님의 피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속죄함을 받은 감사가 없는 헌금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물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사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칠 때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무수한 송아지나 양을 잡아 예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예물을 헛된 제물이라고 하시며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1:13). 오늘 우리가 헌금을 바치면서 악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다음 주일에는 맥추감사절로 지킵니다. 그런데 맥추 감사절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 합당하지 않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해마다 맥추감사절을 지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일찍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유월절과 칠칠절과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출34:23).
오늘의 성도들은 이러한 절기를 지킬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하신 그 의미를 모르고 교회가 지키라고 하니까 지키는 것입니다. 절기를 지켜야 할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예물이 되지 못하므로 오히려 악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예물을 바치는 절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쉽게 범하는 것은 절기 헌금을 가족의 대표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대표로 하니까 부인은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헌금하니까 자녀들은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 교회의 오랜 습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불교에서 전례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가족을 대표해서 불공을 드리고 공양을 할 때 봉투안에는 얼마나 들었는지는 몰라도 남편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까지 전 가족의 이름을 다 적어 바칩니다. 그들에게는 합당한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절기 헌금을 전 가족을 대표해서 드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레위기 23:37,38에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절기 헌금은 자신의 속죄함을 받은 은혜를 감사해서 각각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 외에’란 주일 헌금 외에, ‘헌물 외에’란 주일 예배시간에 드리는 감사헌금 외에, ‘서원 제물 외에’란 특별히 작정한 헌금 외에 예물을 드림으로 절기를 지키도록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가족을 대표로 헌금을 하는 것처럼 보여 질 때가 있습니다. 온 가족을 죄를 대속하는 예물이라 할 수있을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기뻐 받으실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이러한 오류를 오랫동안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고쳐야 합니다. 절기는 특별히 속죄함을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속죄함을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 아이의 손으로 바쳐지는 예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될 것입니다. 각각 자신의 죄를 대속하는 예물을 드릴 때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예물이 될 것입니다.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예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 예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때 속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3). 이와 같은 번제의 예물을 드릴 때 ‘내가 거기서 만나리니 내 영광으로 말미암아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는 말씀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스러운 축복이 될 것입니다(출29:43).
헌금 액수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송아지나 양을 예물로 바칠 수 없다면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예물로 바치도록 하셨고 그것 마져도 어려우면 고운 가루 한 움큼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레23:13). 이렇게 하라고 하신 것은 죄 사함은 각각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명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아지나 양의 머리에 안수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속죄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향기로운 냄새나는 예물을 바치므로 하나님께서 기쁘 받으시고 하나님을 만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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