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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룻기

룻 2장 1-13절(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 권율

by Preacher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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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2장 1-13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권율 목사 2019. 5. 2.

부곡중앙교회 청년부 https://blog.naver.com/ryulkwon0616

 

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 9 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

 

오늘 본문은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제 살펴봤듯이,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이방 여인입니다. 비록 이방 여인이지만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16)라고 고백한 신앙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한 여호와 신앙을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구약에서부터 이미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는 자들은 혈통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여하튼 오늘 본문은 보아스를 소개하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1절에서 보듯이,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입니다. 또 그를 가리켜 “유력한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보아스가 ‘큰 재산을 소유한 부자’(a man of great wealth, NKJV)라는 뜻입니다. ​ 흥미롭게도 “유력한 자”라는 표현은 ‘보아스’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와 일치합니다. ‘보아스’라는 이름은 “그에게 힘이 있다”는 뜻인데, 당시 사회적 맥락으로 “힘이 있다”는 말은 재물이 많은 부자를 지칭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과 룻기 전체에서도 보아스는 엄청난 부자로서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

 

어느 날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2절). 그러자 시어머니 나오미는 “내 딸아, 갈지어다”라고 아주 친근하게 대답합니다. ​ 룻이 밭으로 가서 이삭을 줍겠다는 말은 모세 오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명령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다 거두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레19:9; 23:22; 신24:19). 물론 룻이 그런 율법을 정확히 알고 나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가난을 극복해야 하는 여인으로서는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습니다. ​

 

3절에 보면,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연히” 누구의 밭에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 여기에서 말하는 “우연히”라는 표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우리 입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는 “우연히”라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섭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는 우리 눈에 “우연히”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

 

공교롭게도 4절에 보면,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자기 밭에 도착했습니다. 그것도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그 순간에 말입니다. 이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아스가 “마침” 자기 밭에 도착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보아스나 룻이나 자신들은 정말 “우연히” 그곳에 도착한 것이 맞습니다. ​ 보아스에게 룻의 모습이 눈에 띄었던지 자기 사환에게 “이는 누구의 소녀냐?”라고 묻습니다(5절). 그러자 사환이 룻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6-7절). ​

 

사환의 설명을 들은 보아스는 룻에게 “내 딸아, 들으라”고 아주 친근하게 말합니다(8절).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자신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말합니다. 또 소년들에게 룻을 건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이삭을 줍다가 목이 마르면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시라는 호의까지 베풀어 줍니다. ​ 그 순간 룻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10절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지금 룻은 보아스가 베푸는 호의에 극도로 감격하면서 그에게 감사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인으로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룻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또 그녀의 감격스러운 표정을 한번 그려 보기 바랍니다. 그동안 시어머니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큰 은혜를 입게 되어 기뻐하는 룻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지 않습니까? ​

 

저는 10절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만난 우리 죄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능자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나는 추악한 죄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또는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돌보아주십니까?”라고 반응해야 정상입니다. ​ 보아스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 룻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보아스는 오늘 본문에서 “유력한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방 여인에게 큰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룻은 보아스의 은혜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보아스는 룻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은 보아스의 전적이고 일방적인 관심입니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전능자로서 여러분과 저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푸시는 위치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입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날 그분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 우리 눈에는 어느 날 “우연히” 하나님을 만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전부터 모든 상황을 섭리하셔서 우리를 당신 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비참하게 살던 저와 여러분에게, 어느 날부터 당신의 무조건적이고 전적인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

 

그분의 임재 앞에 우리의 얼굴을 땅에 대고 그분을 경배해야 정상입니다! “나는 비참한 죄인이거늘 어찌하여 주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라고 절규하는 것이 우리의 지당한 반응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일상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하에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연히” 진행되는 순간들을 유심히 바라보기 바랍니다. 우리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섭리하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내가 죄악에 빠져 허덕이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의도하신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관하시지만, 때로는 내 욕심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실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상황입니다. ​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려고 기도하며 애쓰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내 일상의 모든 순간들을 섭리하셔서 내 인생을 향한 당신의 기쁘신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더라도 본문의 룻처럼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신앙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그렇게 할 때 우리 주님은 12절에 나오는 보아스의 말처럼 우리가 행한 일에 넉넉히 보답해 주시고, 당신의 보호를 받으러 나오는 우리 모두에게 온전한 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이러한 주님을 굳게 신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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