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4장 22-25
이것은 내 몸이니라
허창수 목사 18.03.25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이번 주간은 예수님께서 잡혀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은혜를 기억하며 지키는 고난주간입니다. 오늘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성찬의 떡과 잔을 마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4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에 있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대대로 지키는 삼 대 명절(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중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해 주신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마지막 날 밤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서 먹으며 지켰던 것이 첫 번째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애굽에는 ‘장자 죽음의 재앙’으로 말미암아 바로 왕의 장자로부터 종들의 장자와 하물며 모든 짐승의 첫 새끼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집에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을 불러 ‘너희 백성은 떠나 너희 말대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했습니다(출12:31).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백 삼십 년을 종살이 하며 고난당했던 애굽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이 출애굽 했던 것을 기억하며 첫째 날은 유월절로 다음날부터 칠일 간을 무교절로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유월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킵니다. 멀리 타국까지 흩어졌던 사람들도 모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여든 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의 강포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군중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들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지키는 유월절은 예수님이 친히 유월절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 명절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예수를 정치적 메시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예수님을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방도를 구했지만 민중의 반란이 두려워서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2).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생각은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의 처형이 급격히 이루어지므로 예수님은 유월절에 잡혀 죽으심으로 유월절 어린양으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유월절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머리에 부어 드렸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제자들 중에 한 사람(요12:4에는 가룟 유다)은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하며 화를 냈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여인이 부어드리는 향유로 자신의 죽음과 장례를 준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차에 마침 가룟 유다가 찾아와 예수를 넘겨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1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유월절의 민요를 걱정했지만 가룟 유다의 도움으로 신속히 예수를 체포할 수가 있게 되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조용하게 최후의 만찬을 잡수실 수 있는 집을 찾았습니다. 그 집은 누구의 집이라고 밝히지 않았지만 요한 마가의 집이라는 데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모여 있었던 곳이며(요20:19),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강림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행1:13). 베드로가 천사에 의해 감옥에서 풀려 나와서 찾아간 곳이기도 하며(행12:12), 사도들의 다락방 교회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독교회의 시발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방을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14)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미리 예비된 장소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락방’은 다른 방들을 거쳐 다니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성만찬으로서 아주 적절한 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제 날이 저물어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도 제자들은 타툼이 있었고(눅22:24),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요13:1-20). 그리고 다락방에는 제자 열둘과 함께 조용하게 만찬을 먹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의 시간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18)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청청병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 중에 배반자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만찬이 갖는 축제적인 분위기를 급속히 냉각시켰을 것입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 한다는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를 가장하고 함께 음식을 먹은 후에 배반하는 것은 가장 악한 비인륜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식사를 같이 하는 제자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하는 시간에 예수님의 비통하고도 엄숙한 배반의 예고를 들은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했습니다(19).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자신에 의해서 예수님의 죽게 되신다는 것이 더 큰 관심사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20)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유다가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했을 때 ‘네가 말하였도다’(마26:25)라고 기록함으로 가룟 유다가 배반자임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이미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11).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예수님을 잡아 넘겨주기로 약속까지 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과 함께 만찬에 참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은 자니라”(20)는 말씀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과 그릇을 함께 사용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의 풍습은 두 세 사람에게 하나씩 국물 그릇을 배치해서 손으로 떡을 찍어서 먹었습니다. 평소에도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그릇을 사용할 수 있었을 정도로 아주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인자는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저주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으로 저질러서는 안되는 스승을 파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 그 사람에게 동정을 나타낸 말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에게 마지막 회개를 촉구하는 권면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곧 바로 자신이 계획한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 예수님을 떠나 영원한 배반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남은 열한 제자들과 함께 성찬 예식을 거행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만찬은 함께 할 수가 있었지만 성찬은 함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찬은 저녁 식사이고 성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례입니다. 가룟 유다는 성례에는 함께 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회헌법에 ‘수찬정지’라는 형벌이 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성찬을 먹을 수 없는 것은 아주 큰 벌이 수찬정지 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할 것은 제자들이 유월절 음식으로 무엇을 준비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무엇보다도 양을 잡습니다. 12절에도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에 내릴 장자 죽음의 재앙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 양이나 염소를 잡아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12:5-8). 그 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양을 잡았다거나, 양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제물로 바치는 양을 팔고 사서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양을 잡으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양을 잡은 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준비한 유월절 음식은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 주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베푸신 성찬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므로 더 이상 양을 잡아 제물로 바쳐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양을 잡아서 제물로 바쳤던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더 이상 양을 잡아야 할 필요가 없어지고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며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나의 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잔을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나의 몸’,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라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그 피가 오늘 나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그 피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보혈입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악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며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시며 ‘이것은 나의 몸이니라’, ‘나의 피니라’고 하셨다고 해서 성찬식에 나누어 먹는 떡이 예수님의 살로 변하고,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주장하기도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다시는 것 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성찬에 사용 된 떡과 포도주에는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가 있어서 구속의 효과가 주어진다는 영적 임재설을 믿습니다. 떡을 먹으면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잔을 마시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흘리신 보혈임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뜨겁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만찬을 베풀면서 ‘이것을 기념하라’(고전11: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성찬예식은 언제까지 하느냐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떡과 포도주가 아닌 다른 ‘새 것’으로 마시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먹과 마시는 떡과 포도주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기념하며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찢으셨던 살을 기념하며 떡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면서 잔을 나누고자 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며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4-5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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