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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무엘상

삼상 18장 1-5절(언약의 신비와 세례) - 신만교

by Preacher 202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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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8장 1-5

언약의 신비와 세례

신만교 목사

화평성결교회 [의정부시] http://whttp://www.hpehc.org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 하니라

(삼상 18: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삼상 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삼상 18: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 하였더라

(삼상 18: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우리는 개인 간에 약속을 하거나 계약을 합니다. 국가 간에는 조약을 맺습니다. 계약이든 조약이든 일단 맺게 되면 당사자 간에 뗄 수 없는 관계가 성립됩니다. 책임지는 관계가 됩니다. 군사동맹을 맺은 나라 간에는 전쟁이 나면 자동 개입합니다. 하나님은 언약(言約)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약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구약(舊約)은 옛 언약이고 신약(新約)은 새 언약입니다. 언약 역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사건입니다. 그것이 언약의 신비입니다. 첫 언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입니다.

 

(창 17: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 된 것입니다. 언약을 맺기 전에는 아브람이었는데 언약 후에 ‘열국의 아비’란 뜻의 아브라함이 됐습니다(창17:5).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천하만민이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창 17: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는 언약의 표시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만이 언약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할례를 행하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신약 시대에 새로운 언약의 표시가 주어졌는데 무엇입니까? 세례(洗禮)입니다. 구약시대의 언약의 표시가 ‘할례’라면 신약시대에는 ‘세례’가 새 언약의 표시입니다.

 

1. 세례는 하나님과의 새 언약의 표시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새 언약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미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 그리고 오늘 세례 받을 분들 복 정말 복 받은 분들입니다. (옆사람에게) ‘새 언약의 백성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 것을 지상명령으로 분부하셨습니다.

 

(마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초대교회의 역사적 전환점이었던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 세례가 강조됐습니다.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담대하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어찌 할꼬?’ 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내린 행동 지침은 다른 것이 아니라 ‘회개와 세례’였습니다.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리고 다음절, 39절에는 이것을 ‘약속’, 즉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그래서 ‘세례’가 신약시대에 새 언약의 표시가 된 것입니다. 세례는 믿음과 함께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사건이며, 하나님과 자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얻으려면 언약의 피의 복음을 들어야합니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복음을 듣고 어떻게 해야 거듭나서 천국 백성이 됩니까?

 

(요 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물이 구원의 표, 세례를 가리킵니다

 

.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세례를 받은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권세가 있습니다. 언약의 신비인 세례를 받은 분들, 그리고 오늘 세례 받을 분들 축하하고 축복합니다. 또한 세례에는 언약의 신비가 있습니다.

 

2. 세례에는 신분이 교환되는 언약의 신비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세례를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사건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세례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세례가 예수님의 신분과 우리의 신분을 교환하는 언약의 신비임을 가리킵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천한 신분은 예수님께서 가져가시고 예수님의 존귀한 신분은 우리가 가져옵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고 우리의 더러운 옷은 예수님이 입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가 갖는 언약의 신비입니다.

 

지난번에 쌍둥이 두 형제 중 동생이 살인을 저지르고 형을 찾아왔을 때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로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우리가 옷을 바꿔 입음으로 신분이 교환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세례를 통하지 않고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례에 신분이 교환되는 언약의 신비가 있음에 대하여 구약에 마치 모델하우스와 같은 사건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18장에 요나단과 다윗과의 옷을 바꿔 입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요나단과 다윗 관계를 아시지요? 요나단과 다윗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 혹은 군신 관계입니다. 더구나 요나단의 가문과 다윗 가문과는 이스라엘 왕조사에서 왕권을 바꾼 원수지간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는데 그 뒤를 이은 사람은 왕자인 요나단이 아니라 다윗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이 다윗을 끈질기게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윗 편에 서서 그의 생명을 구해 줍니다(삼상19:2). 심지어 요나단은 다윗의 대적들을 저주하며, 다윗의 집과 언약을 맺습니다.

 

(삼상 20: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여러분, 다윗의 대적이 누구겠습니까? 자기의 아버지인 사울 아닙니까? 요나단은 다윗 편을 들어 아버지를 하나님이 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요나단과 다윗과는 단순히 친구관계가 아니라 생명을 담보로 하는 언약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삼상 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우리를 친구 삼아주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런 친구 되시는 예수님이 오시는 대강절에 새벽을 깨우며 기다리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요나단과 다윗은 서로 상대방의 생명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는 언약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삼상 20: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삼상 20: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리라

 

이 요나단과 다윗이 맺었던 언약식이 바로 오늘 본문 4절에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겉옷을 벗어 주었습니다.

 

(삼상 18: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오늘날은 겉옷을 자기 마음대로 입기 때문에 겉옷을 바꿔 입는다고 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왕정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때의 사극을 보면 사람들이 입고 있는 겉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다윗에게 벗어 주었던 겉옷은 단순한 옷이 아니고 왕자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옷을 바꿔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신분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요나단은 왕자의 신분에서 신하의 신분으로 비하되었습니다. 다윗은 신하의 신분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상승됐습니다. 요나단은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다윗이 왕위를 계승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세례를 받고 옷을 바꿔 입음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피 묻은 옷은 예수님이 입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신분으로,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옷을 바꿔 입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이와 같은 메시아의 사역을 예언하였습니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로 옷 입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왕자의 신분으로 상승 시켜 주셨음을 확신 하십시오.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또 한 가지

 

3. 세례에는 삶의 목적이 바뀌는 언약의 신비가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을 맺을 때 신분 교환을 위해서 겉옷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또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삼상 18: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 하였더라

 

여기 군복, 칼, 활, 띠는 요나단의 생명을 지켜 주던 무기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무기를 선물로 주는 것은 용사들 간에 전우애와 혈맹 관계를 다지는 풍습으로 행해졌습니다. 프로 축구 선수들 게임 끝나고 추리닝 바꾸어 입으므로 우정을 나누지요. 무기의 일차적인 목적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었다면 상대의 생명을 지켜주겠다는 언약입니다. 지금까지 자기 생명을 지켜 주던 무기가 이제는 상대방의 생명을 지켜 주는 무기가 된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생명을 지켜 주고 다윗은 요나단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다윗의 생명을 지켜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을 맺은 사람들끼리의 책임입니다. 상대방의 생명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며, 지켜 줍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위해 살던 사람이 상대를 위해 사는 사람이 됩니다. 세례의 신비가 여기 있습니다. 세례가 단순히 옷만 바꾸고 신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도 바뀌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옷을 바꾸어 입은 두 형제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형은 동생의 피 묻은 옷을 입고 사형장으로 갔습니다. 동생은 형의 의로운 옷을 입고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당연히 삶의 목적이 바뀌어졌겠지요. 형의 삶을 대신하는 새로운 삶을 살지 않았겠습니까? 어떻게 이전처럼 그렇게 막 살았겠습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은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이전처럼 자신의 정욕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은 자답게,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답게 삽니다.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해군 장교였던 한 형제가 “자기가 장교복장을 하고 다닐 때에는 사복을 입고 다닐 때보다 행동이나 말 등이 훨씬 더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연하지요. 하물며 그리스도로 옷 입은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수녀 복을 입고 술에 취해 다닐 수 있나요? 이제 우리는 바울의 고백처럼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예수 믿고도 아무렇게나 사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였습니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새 언약의 표시인 세례를 받게 된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셨습니다.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주셨습니다. 잃어버렸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을 찾았습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작은 빛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여러분에게 대한 주님의 기대입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제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성경을 알아야 하고 또 얼마나 교회에 다녀야 합니까?” 허드슨 테일러는 잠시 침묵하다가 청년을 어두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등잔에 불을 붙였습니다. 갑자기 방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때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형제여, 잘 보셨는가? 이 심지가 어느 정도 타 들어갔을 때에 빛이 환하게 발하기 시작하였는가?”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론 심지에 불이 붙는 순간에 환하게 빛났지요.”

 

허드슨 테일러는 젊은이의 손을 꼭 잡으면서 “바로 그걸세. 정확히 보았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라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 교회에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네.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심으로 나를 죄 가운데서 건져주셨다는 그 놀라운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작은 등불이 되어 우리 주변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것일세.”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찬미예수 311장 ‘작은 불꽃 하나가’ 찬송합시다. 우리 세상의 작은 불꽃 되어 이 대강절에 사랑하는 주님을 기다립시다.

 

#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곧 주의 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새싹이 돋아나면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 화창한 봄날이라네

주님의 사랑 놀라와 한번 경험하면 봄과 같은 새 희망을 전하고 싶으리

친구여 당신께 이 기쁨 전하고 싶소 내 주는 당신의 의지할 구세주라오

산 위에 올라가서 세상에 외치리 내게 임한 주의 사랑 전하기 원하네

산위에 올라가서 세상에 외치리 내게 임한 주의 사랑 전하기 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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