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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사무엘상

삼상 20장 12-17절(다윗과 요나단) - 문기태

by Preacher 202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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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0장 12-17

다윗과 요나단

문기태 목사 2016.06.12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첨부파일 1개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언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아버지를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네게 알리지 않겠느냐

13 그러나 만일 내 아버지께서 너를 해치려 하는데도 내가 이 일을 네게 알려 주어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17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사무엘상 20장 12-17절)

 

함석헌 선생님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날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 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 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하며

빙그레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예" 보다도 "아니요"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어

진실로 충언해 주는

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런 사람이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인생을 살면서 단 한 사람하고라도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살다가 인생을 마감한다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따지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진실된 사랑의 관계를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사무엘상 20장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아름다운 사랑에 관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요나단과 다윗의 아름다운 우정을 맺을 수 있다면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사랑을 소유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센바흐는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 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극복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 진실된 관계로 발전시킴으로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바랍니다.

 

1. 참된 사랑은 친구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17)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좋아했습니다. 18장 1절에서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했습니다.(18:1)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난 후 인기가 상승하자 사울의 대적이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였습니다. 요나단에게 있어 다윗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적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왕좌에 도전하려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함에 있어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비극은 종종 사랑해야 하는 대상을 이용하고 사용하려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사랑해야 할 친구가 이용 대상으로 바뀌고 사용해야 할 물질이 사랑의 대상으로 바뀔 때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요나단은 삼상 20:23절에서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원토록 계시느니라.'라고 합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순수하게 깊어질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사이에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맺어진 우정이기에 진실함이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둘 사이에 하나님 대신 돈이나 사업이나 권력이나 인간의 욕심이 끼어 있었다면 쉽게 변질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를 사귀며 친구 사이에 반드시 하나님을 두시기 바랍니다.

 

한국전쟁의 포화로 얼룩진 1950년 12월 흥남 부두.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미군과 한국군의 철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흥남 철수 작전의 막바지. 포위망을 좁혀 오는 중공군을 피해 피란민들이 부두로 몰려들어 부두는 절체절명의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미군의 7600t급 화물선 '메레디스 빅토리' 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피란민들을) 많이, 되도록 많이 승선시켜라."

 

그렇게 시작된 구출 작전은 계속되는 적군의 폭격을 뚫고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태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기뢰를 뚫고 무사히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해 크리스마스인 25일 마침내 거제도에 닻을 내렸고, 오늘날 '메레디스 빅토리 호의 기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단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 선원이 라루선장에게 그런 결정을 내렸던 이유를 물었더니 선장은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참된 우정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친구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벗과 사귈 때는 벗이 그대를 위해 어떠한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그대가 벗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친구가 과연 나를 생명처럼 사랑할까' 의심하지 말고 나는 정말 친구를 내 생명처럼 사랑하고 있는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참된 사랑은 친구를 누구 앞에서든지 칭찬하는 것입니다.(32)

 

참된 사랑은 친구를 언제든지, 누구 앞에서든지 칭찬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친구를 변호하는 데서 우정이 자라갑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 앞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변호합니다. 32절에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라고 했다가 위험을 만났습니다. 19장 4,5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다윗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 앞입니다. 아무리 왕자라 할지라도 왕이 다윗을 미워하는 줄을 알면서 그 앞에서 다윗을 칭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요나단은 사울 앞에서 다윗의 성품을 칭찬했습니다. 다윗에 왕에게 한 일은 심히 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다윗의 희생을 칭찬합니다. 승리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동기로 전쟁터에 나갔다는 것입니다. 또 요나단은 다윗의 업적을 칭찬합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블레셋을 무찌른 업적을 칭찬합니다. 우리는 오늘 요나단에게서 칭찬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친구의 성품을 칭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하며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의 근본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중심을 믿어주어야 합니다. 누구나 사람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중심은 믿어주어야 합니다. 중심이 의심받게 되면 사람은 누구나 큰 상처를 받습니다. 또 우리는 친구의 희생적인 헌신을 칭찬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희생적으로 헌신하지 못하여도 그러나 인생의 어떤 시점에 아주 결정적인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그런 희생적인 헌신을 기억하고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희생을 칭찬하셨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는 친구의 믿음을 칭찬하여야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싸우는 것을 통하여 다윗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도 친구의 믿음을 눈여겨보고 칭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친구의 가능성을 보고 칭찬하여야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 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탁월한 리더십을 본 것입니다.

 

친구로 알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나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비난하는 사람을 보면 경계가 됩니다. 누군가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가지고 말할 때, 이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내 허물을 드러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누군가가 내 앞에서 남을 칭찬할 때 그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칭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며 호감을 갖습니다.

 

여러분, 사람들 앞에서 친구를 칭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친구를 미워하는 사람 앞에서 친구를 비난하는 사람 앞에서도 용기 있게 칭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친구가 어쩌다 실수했을 때에도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의심을 받고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친구를 진심으로 믿어주고 보호해주기 바랍니다. 인생을 살며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을 얻기 바랍니다.

 

3. 참된 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자기의 전부를 내어주는 희생이 따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우정을 표현하며 자신의 가장 값진 것을 다 내어 줍니다. 자기가 입고 잇는 겉옷을 벗어줍니다.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을 내어 줍니다. 자신이 생명을 잃어도 다윗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희생할 것을 약속합니다. 실제로 요나단은 사울왕 앞에서 다윗을 변호하다가 사울에게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이라는 큰 욕을 듣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을 보호하려는 태도를 바꾸지 않자 사울은 단창을 던져 요나단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나단은 자신에게 화를 내는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보다 친구 다윗을 욕되게 한 것으로 인해 슬퍼합니다.

 

요나단은 진심으로 다윗을 사랑했기에 자신이 왕이 되는 것보다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다윗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습니다. 친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왕의 자리도 내놓고 2인자의 자리로 내려 앉는 요나단에게서 우리는 참 사랑을 보게 됩니다. 요나단과 같은 친구를 둔 다윗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다윗과 같은 친구를 둔 요나단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친구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친구를 위해 기꺼이 여러분의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습니까

 

헝가리 금세공인 아들로 태어난 한스와 알브레트는 어린 시절 위대한 화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일찍부터 미술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에게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습니다. 가정 형편상 계속 미술을 공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스는 알브레트야 말로 화가로서의 훌륭한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 자신이 험한 일을 도맡기로 하고 알브레트에게 계속 미술 공부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알브레트 뒤러는 르네상스 시대 독일 최대의 화가가 되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연작, '그리스도의 수난' '최후의 만찬' 같은 세계적인 판화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도 친숙한 '기도하는 손'은 그가 그린 아주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 작품의 모델은 바로 한스였습니다. 화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한 알브레트는 이제 한스도 미술공부를 시작하도록 도우려고 한스에게 달려갑니다. 그때 한스는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그림을 그리기에는 손이 너무 굳어졌습니다. 알브레트가 나의 몫까지 화가로서 성공하도록 도와주세요." 힘줄이 드러나고 굳은 살이 박힌 한스의 모아진 두 손을 보며 알브레트는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재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희생한 손, 그리고 희생을 행복으로 여기며 오히려 감사하는 기도하는 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인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하는 손]이라는 세기의 명작이 탄생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진실한 마음을 나눌 참된 친구가 여러분에게 없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가장 좋은 친구 한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영원한 친구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그들과 참된 우정을 나누셨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사랑하는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습니다. 요한은 그때부터 예수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평생 동안 마리아를 친어머니처럼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행복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를 맡길 친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고난의 현장에도 친구가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우정의 소중함을 알고 무한한 사랑을 부어주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친구가 되고 싶어하십니다. 세상 친구들이 모두 우리를 버려도 예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생명처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욕해도 예수님은 우리를 변호해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 가운데 빠질 때도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변호해 주십니다. 사단의 신랄한 고발에도 주님 자신이 죄를 다 뒤집어 쓰시고 우리를 변호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독할 때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큰 수술을 받을 때 수술실에도 함께 가십니다. 위험하고 힘든 어떤 자리에도 함께 계십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함께 계십니다. 진실하신 친구이신 예수님께 마음을 활짝 열고 맞아들여 친밀한 우정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참된 친구를 사귀고 다윗과 요나단처럼 진실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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