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10장 1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하는 성도
안효관 목사 2021-01-02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우리는 이제 2021년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롭게 맞이한 2021년 올 한 해, 우리 모든 교우님들과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해 코로나19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모든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는 엄청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이 ‘앞으로 세상은 코로나 이전(BC ; Before Corona)과 코로나 이후(AC ; 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다.’고 말한 것처럼, 코로나는 우리 시대에 역사적 대 전환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전엔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우리의 삶에 아주 깊숙이 비집고 들어와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비대면(Untact)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큰 위기로 다가왔고,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난 한 해 그렇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변화와 위기는 사회나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도 엄청난 도전을 주었습니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는 ‘모임’과 ‘만남’이 모든 사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예배도 예배당에 함께 모여 드려야 하고, 교제도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함께 모여 힘을 합쳐 봉사하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했고, 만남으로 신앙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이런 모임과 만남에 도전해 왔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 하에 모임을 자제해야 했고, 심지어 예배당에 모이는 것조차 불편해졌습니다. 이는 예배의 문제와 신앙교육의 문제 등 모든 교회 사역에 충격을 주었고, 교회 사역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문명사적 대전환의 시대, 신앙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큰 과제를 떠안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는 회복입니다.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뉴노멀, 비대면으로 겨우겨우 유지되고 있는 신앙생활에서도 어떻게 신앙을 회복할 것이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교회교육을 이어갈 것인가 하는 교회교육의 회복, 모임을 주저할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깊은 저항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여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 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회복의 첫 대상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일상을 잃어버림으로 낙심되고 위축되고 불안한 우리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대면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는 우리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회복이란 무엇입니까? 회복이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본래 있어야 할 우리의 자리를 떠난 것이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결코 아닙니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정해 주신 자리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탐욕으로 인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이후, 우리 인간은 인간됨의 자리에 서 있지 못했습니다. 그 탐욕은 오늘도 지속되어 지금도 우리는 호시탐탐 하나님의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자리에 서 있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에 끌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불평과 불만만 가득 안은 채 살아가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해버리기도 했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신앙적 모델을 닮아가려 하기보다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을 닮아가려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기도 했습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온통 삶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교회에 주신 사명, 신앙인에게 주신 사명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 빛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이 오늘날에는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너무 세상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 세상을 흠모하는 신앙인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자리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게 하신 바로 그 자리로 말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그 대답을 해 줍니다. 남유다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큰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거대한 제국 바벨론에 맞서 독립을 쟁취할 힘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고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버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바벨론 제국의 땅에서 봉기를 일으켜 독립을 쟁취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모든 일상이 무너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절망의 늪이 깊어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뜻하지 않게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페르시아를 통해서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초대 왕인 고레스는 취임일성으로 바벨론 제국 시절 포로로 잡혀왔던 포로민들에게 자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고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의 상황은 암담했습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앙적으로나 삶에서나 그들은 피폐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때 등장한 사람이 에스라입니다.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첫 번째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있은 지 80여년의 시간이 흐른 후 에스라가 1,700여 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두 번째 귀환이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는 피폐해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 이야기가 에스라 7-1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개혁의 시작은 바로 회개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했던 지난날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지도자답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회개운동은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에스라의 회개운동이 성전 앞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르쳐줍니다. 회개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직시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에스라가 성전 앞에서 회개한 것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엎드려 울며 기도했다.’는 말씀입니다. ‘엎드리다’는 말은 ‘떨어지다, 드러눕다’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쓰러져 있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내내 기진하여 쓰러진 사람처럼 땅에 완전히 엎드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할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결코 사람들에게 보일 목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을 낮출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낮아질 때 우리가 드리는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아직도 내 힘이 남아 있고, 아직도 내 안에 버리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내 공로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죄인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회복하는 방법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낮아지고 엎드려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회복됩니다. 2021년 우리의 삶이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복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가랴서 4: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하나님)의 영으로 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셔야만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과 실수와 범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회개할 때 역사합니다.
여러분, 2021년 올 한 해, 우리 모두 겸손하게 사십시다. 매일 회개하는 마음으로 사십시다. 우리의 자리에 바로 서는 회복이 일어나도록, 하나님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십시다. 헛된 것을 구하지 말고, 가치 있는 것을 구하며 사십시다. 껍데기를 붙잡지 말고 본질적인 것을 붙잡고 사십시다. 세상의 일시적인 것에 연연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사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 코로나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변화라는 위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두려워하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지난 해 가보지 않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말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본질을 붙잡고 가는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순응하며 교회와 신앙의 본질을 붙잡고 가면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지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위기의 순간을 맞았을 때 교회는 신앙을 지키며 복음을 붙잡고 그것을 이겨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회복하는 일에 가장 큰 힘을 쏟아야 합니다. 거기에 모든 회복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고,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고, 우리의 삶이 회복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었다면 그 회복된 신앙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적 책임입니다. 우리가 회복된다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회복의 은혜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라 한 사람이 회개하자 많은 백성들이 함께 회개에 동참하게 되고, 더 나아가 백성의 남녀와 어린아이까지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여 함께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비록 에스라 한 사람으로 시작된 회개운동이었지만 그 회개운동은 이스라엘 전체에 퍼져나갔고, 이스라엘 전체를 회복하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회복된 우리는 누군가를 회복시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표어를 ‘하나님을 미소 지으시게 하는 교회, 성령의 능력으로 회복하는 성도’라고 정했습니다. 나만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2021년 새해, 어떤 꿈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에는 나름대로 소원이 있고, 바라는 바가 있습니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꿈은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고, 꿈은 우리로 움직이게 합니다. 꿈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일을 만난다 하더라도 버티고 이겨낼 힘이 생겨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시피보 응체베(Siphiwo Ntshebe, 1974-2010. 사진)라는 테너 가수가 있었습니다. 맑고 힘 있는 목소리가 파바로티를 닮았다고 해서 ‘검은 파바로티’라고 불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난 2010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식에서 축가를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월드컵 개막식을 불과 3주 앞두고 급성뇌수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월드컵 개막식에서 부를 예정이었던 곡은 ‘Hope’(희망)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곡은 월드컵 개막식에서 공개되지 못하고, 그의 유작으로 남겨지고 말았습니다. 그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당신이 꿈을 가질 때 당신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요.’(You'll find hope When you have a dream) 그리고 그 곡 마지막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육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We can create hope’(우리는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둠이 짙은 절망적인 상황이라 하더라도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겐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입니다.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꿈입니다. 세상의 허황된 꿈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꾸는 꿈입니다. 우리는 그런 꿈을 꾸며 2021년을 맞이했습니다. 그 꿈은 바로 회복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회복되는 것, 우리의 삶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2021년 희망을 꿈꾸며 시작하십시다. 회복을 꿈꾸며 시작하십시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꿈을 이뤄주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여호수아 1:9)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2021년 희망을 꿈꾸며, 우리의 신앙과 영혼과 삶 모든 것이 회복되는 한 해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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