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8장 24-30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요
허창수 목사 18.04.08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28절에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는 여호와를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자라는 말입니다. 여호와가 거룩하시므로 여호와께 예배드리는 자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바쳐져서 거룩하여진 것들을 다루기에 합당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본문이 말하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는 누구입니까?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입니다(24). 에스라는 성전 안에 둔 금과 은과 기명 등의 선물을 취급하는 책임자로 제사장과 이를 운반하는 책임자로 레위인을 따로 세웠습니다. 이로써 성전의 예물들은 더 이상 세속적인 사람의 손에 두지 않고 특별히 구별된 사람의 손에 넘겨주며 그들에게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것을 출애굽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귀환하는 것을 ‘포로귀환’이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과 포로귀환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의 나라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역사적인 사건들입니다.
출애굽은 육십만 명이 한꺼번에 애굽을 벗어났지만, 포로귀환은 3차에 걸쳐 바벨론을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많은 고통 가운데서 애굽을 떠났지만, 출바벨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평안하게 살다가 예루살렘으로 자원하여 귀환하였습니다.
출애굽 때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남은 자가 없이 모두 애굽을 떠났지만, 출바벨론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떠나지 않고 남아 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자원하는 자들만이 바벨론은 떠났습니다. 출애굽은 애굽의 왕 바로가 반대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을 할 수 있었지만, 출바벨론은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허락과 지원을 받고 바벨론은 떠났습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 대 손이었습니다(7:5).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은 자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을 정도로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았습니다(7:6).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청하여 몇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500km 이상 되는 상당히 먼 길이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7:9).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목적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 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벨론의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7:13). 지난 날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치고 성전 안에 모든 귀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아닥사스다 왕은 느부갓네살이 가져온 은금과 귀물들을 에스라에게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이방 사람이지만 에스라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위하여 궁중 창고에서 예물을 내다가 드리라고 하였습니다(7:20).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까지도 받지 말도록 하였습니다(7:2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도 했습니다(7:25).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스라가 왕으로부터 이러한 배려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이방사람 바사 왕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감동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김으로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예루살렘을 넘기시므로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치고 성전 안에 모든 금은보화와 예물들을 모조리 빼앗아 바벨론으로 가져왔고, 성전도 불살라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포로로 끌고 왔습니다.
그러나 바사 왕 아닥사스다는 포로인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금은보화를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방 나라의 왕 아닥사스다가 그렇게 한 것은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로 잡혀갔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포로가 되어서도 하나님을 잘 섬겼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모르드개와 에스더로 인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셨던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선지자들도 포로이지만 하나님을 변함없이 섬겼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었다’고 말 했습니다(7:28).
에스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나라를 잃고 이방나라로 잡혀 끌려가 포로가 되어서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에스라를 비롯한 느헤미야나 미가와 이사야 그리고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움에 빠졌을 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만큼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절망적인 위기를 당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만큼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에 빠져도 하나님 말씀을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손이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 나라의 왕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도와주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을 통해서라도 도움을 받고 일어 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에스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1,773명이였습니다. 제 1차 귀환 숫자에 비교하면 불과 1/5 정도 밖에 안되는 매우 적은 숫자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귀환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열망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의 학대로 고통을 당했던 것과는 달리 바벨론에서는 안정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었던 자들을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게 되었고 구원이 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은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안락함을 누렸지만 영원한 지옥 형벌은 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민의식을 지닌 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자원하였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자원한 자들은 바벨론에서의 안정된 삶과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을 사모하는 신앙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을 사랑하는 신앙심에서 바벨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대적들이 매복하는 위험과 고난의 길이었습니다(31).
바벨론에 남아 있어도 얼마든지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 더 고생이고 죽음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고난의 길을 택한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들은 대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21). 그들 모두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길에서 대적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지 않았습니다. 금식하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곧 ‘여호와께 거룩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낙하셨습니다(23).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자들에게는 엄청난 은금을 가졌습니다. 그 양이 얼마만큼이나 되는가를 26, 2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많은 은금은 하나님께 바칠 예물이었습니다. 이 모든 예물도 거룩한 하나님께 바칠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예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금보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자들입니다.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28)를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손에 넘기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들을 보고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했습니다. 대적이 길에 매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두렵게 여기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성전을 사모하며 성전에 올라오는 성도들에게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십니다. 성전에서 예배하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십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나와 여러분에게 ‘너희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룩한 자이기 때문에 대적하는 자가 많습니다. 매복 한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거룩한 자들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에스라가 아하와 강가에서 기도하였던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의 손으로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들의 손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 거룩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손이 도우시고 대적과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이 지켜주심으로 어떤 해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손으로 도우심을 받아 대적들과 매복한 자들에게 어떤 어려움도 당하거나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 때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셔서 대적과 길에서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31).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서 듣고 도와 주셨습니다. 지금도 여호와께 거룩한 자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진 손으로 대적이나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져주십니다. 아무리 악한 무리가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이 손이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을 사모합시다. 성전을 향하여 올라갑시다. 그래서 ‘여호와께 거룩한 자’가 됩시다. 여러분을 해치고자 하는 대적과 여러분을 넘어지게 하려는 악한 자들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읍시다. 오늘도 성전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영광 돌림으로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나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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