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3장 14-20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손재호 목사 2016.09.18
창원한결교회 http://hangyulcmi.org/
습3:14-20
성경본문내용
(14)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19)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구원이 베풀어지는 감격적인 장면을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선함에 있지 않습니다. 곧 우리의 선한 행동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온 땅이 불로 심판 받아 소멸되어야 하는 가운데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에 오직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찬양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즐거워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스바냐서 마지막 말씀으로써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구원의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14-17절을 보면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구원의 즐거움을 노래하라고 합니다. 기쁘게 부르고 즐거워하며 노래하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결코 인간의 일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행한 것이라고는 죄밖에 지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이 일어났다는 것은 인간이 행한 일이 아니라 오직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구원받은 자는 이 하나님의 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마땅함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 형벌을 제하신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시온의 딸아 노래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 형벌을 제하여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15a). 여기서 형벌의 제거란 일차적으로 유다 예루살렘이 범죄 함으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돌이켜서 해방시켜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옮기실 것을 보여주는 계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벌의 제거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담당하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옮겨진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둘째, 원수를 쫒아 내었습니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15b). 여기서도 원수란 일차적으로 바벨론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몽둥이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수탈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으로 보면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원수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원수를 내쫓으셨다는 것은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것을 1차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원수는 죄와 사단 마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내 쫓으셨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 백성 가운데 여호와께서 왕으로 거하시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두 구절에 보면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가 너의 백성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일하심으로 구원하여 낸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16절에 보면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너희들은 두려워말고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17).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가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거하심이란 역시 궁극적으로는 십자가로 구원하여 내신 자기 백성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주로 거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백성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원을 인하여 누가 궁극적으로 기뻐하시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7절을 다시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십니까? 누가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이란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원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인하여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구원받은 백성들이 무언가 선한 것이 있었습니까? 구원받을 만한 행위가 있었습니까? 이미 살펴본 대로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그 백성을 보시면서 그렇게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선물보따리를 들고 가서 기뻐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한 짓이라고는 자기가 주인이 되어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면서 산 것 뿐입니다. 곧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만족과 자기 행복과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산 것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행하고 그저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는데 어느 날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시고 때가 되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심으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과 은혜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의 능력이며, 실력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이루어 놓으신 일을 인하여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지어서 이루어 놓으면 뿌듯한 보람과 기쁨을 누리지 않습니까? 저는 한편의 설교 준비가 마음에 들게 끝났을 때 뿌듯한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신구약 한권한권 공부가 끝날 때마다 기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조차도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홀로 받으셔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이기에 그의 영광을 찬송하기 위해 존재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란 끊임없이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한 역사인 것입니다. 자기 이름 내기의 절정판이 무엇입니까? 바벨탑 사건입니다. 세상의 역사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 해야 할 교회마저도 교회에 공헌도가 있다는 사람들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보다 앞서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세상도 역시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결국 자신의 이름만을 높이시는 일에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루어 내셔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기뻐하심과 즐거워하심에 참여된 구원받은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오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18-20절을 보면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찌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쫓겨난 자, 저는 자, 사로잡힌 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결코 자기들의 공로를 주장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오직 주의 긍휼을 받아서 돌아오는 자들이기에 오직 구원의 즐거움이란 여호와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돌아오는 모습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7-9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고백이요, 구원받은 자들이 부를 노래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예레미야 31장은 새 언약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것은 돌아오는 자들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돌아오기에 그들은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하고 해산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남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돌아 온 자들이 한결 같이 부를 노래는 시편에서도 노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시편 126편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즐거움을 노래할 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자신의 죄를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로 인해 사망의 포로가 되었으며 진멸당해야 마땅한 자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남을 판단하고 요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 자기의 수치를 모르는 자입니다. 자기 의에 빠져 있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아직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는 자입니다. 진정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주의 은혜를 찬송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51편에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내용을 보게 됩니다. 시편 51편을 보면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양하는 시입니다.
자신의 범죄를 모르고 있을 때에는 구원의 즐거움도 모르는 것입니다. 살인하고 간음하고 있으면서도 죄를 알지 못하였던 다윗이 자신의 죄를 알고 나서 고백하는 내용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인간적으로 보면 뻔뻔스러운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죄를 인하여, 꺾어진 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거룩한 여호와의 전쟁에 용사로 나선 우리아가 희생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희생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는 그 구원의 즐거움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시편 51편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의 죄됨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를 알고, 그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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