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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열왕기상

왕상 17장 1-7절(하늘을 닫고 여는 사람) - 문기태

by Preacher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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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7장 1-7

하늘을 닫고 여는 사람

문기태 목사 2017.06.18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왕상 17:1-7)

 

한 영화감독이 사막 한 가운데서 영화를 찍게 되었습니다. 한참 촬영 중에 늙은 인디언 한 명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내일 비" 그리고는 다음 날 정말 비가 내렸습니다. 일주일 뒤 인디언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내일 태풍" 다음날 정말 태풍이 와서 촬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감독은 조감독에게 말했습니다. 그 인디언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계속 날씨를 알려달라고 해." 인디언은 돈을 받고 몇 번 날씨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디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조감독에게 "그 인디언 요즘 왜 안 오지 내일 중요한 촬영이 있으니 찾아가 날씨를 물어보고 와." 조감독이 찾아가 날씨를 묻자 인디언이 말했습니다. "몰라. 라디오 고장 났어."

 

날씨를 정확하게 알아 맞추는 능력이 있다면 대단한 능력이지만 하늘을 닫고 여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서 비가 오지 않게도 할 수 있고 오랜 가뭄 속에 있을 때 비가 쏟아지게도 할 수 있다면 굉장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엘리야를 하늘을 닫고 연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약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하늘을 마음대로 열고 닫아 비가 오지 않게도 했다가 다시 비가 내리게 하여 열매도 맺게 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다른 점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증거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을 열고 닫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기도로써 쉽게 이루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자신의 힘으로 다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혜면 못 이룰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실력과 경험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려고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예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엘리야가 등장할 무렵의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아합은 자신만만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합은 왕이 되고서 많은 건축물을 완성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사마리아에 지은 바알의 신전이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동경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서 마음이 멀어질까 봐,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유다백성과 가까워지고 자신을 배신하게 될까 염려하여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의 신전을 아주 화려하고 큼직하게 지었습니다. 당시에 바알이 사계절을 통제하며 비를 내려 곡식과 포도를 풍성하게 수확하게 하는 기상 신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합은 백성들에게 바알을 잘 섬기면 풍년이 되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예루살렘 성전예배로부터 이탈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아합은 종교를 이용하여 국론을 통일하고 손쉽게 나라를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바알 종교를 통하여 자신의 왕권을 크게 신장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은 큰 도시를 건설했습니다. 16장 34절에 보면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고 했습니다. 여리고는 큰 성읍입니다. 개인이 건설할 작은 성이 아닙니다. 그 시대는 건축을 좋아하던 때였습니다. 크고 화려하게 성읍을 지어 놓고서 자부심을 느끼며 자기가 나라를, 도시를 부흥시켰다고 자랑을 일삼던 때였습니다. 아합은 히엘을 통하여 여리고를 재건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무너뜨린 성읍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가 극에 달해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보내 무너뜨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그런 죄악의 도시를 본받지 말고 구별된 삶을 살라는 교훈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진 채로 방치하고 재건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수 백 년 동안 무너진 채 방치되었는데 그 시대에 아합 왕은 히엘을 보내 여리고 성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의 기초를 놓을 때 히엘은 장남을 잃고 성문을 달 때에 막내아들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경고하셨던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수 6:26) 26)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라도 큰 성을 건설하여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랑하고 싶어하던 시대적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하나님이 저주하신 일에 도전하여 성취하였습니다. 도시는 훌륭하게 건축하였으나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고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이나 하나님께로부터 가장 사악한 사람이라는 판정을 받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굉장한 업적을 달성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더구나 무너뜨려야 하는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저주하신 대로 반드시 갚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 무너뜨리라는 죄의 성을 자꾸만 일으켜 세우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단의 영향력아래 부패한 옛 성품을 예수님께서 무너뜨리셨는데 다시 세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이는 아합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점점 멀리합니다. 다시 우상숭배로 돌아가고 귀신에게 물으려 하며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혼란과 위기와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그 머리 위에 머물러 있을 따름입니다. 성공한 것 같지만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저주를 받습니다. 굉장한 업적을 이룬 것 같지만 하나님께 버림 받아 큰 위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합 왕의 시대에 겉으로 보기에 전쟁에 승리하고 강력한 왕권을 회복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기나긴 흉년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농사가 엉망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사람이나 가축이 마실 물이 없어 지쳐 쓰러질 정도가 됩니다. 나중에는 왕이 자기가 타고 다닐 말을 살리기 위해 물을 찾아 돌아 다닐 지경에 이릅니다.

 

오늘 우리 시대를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 나라에 대형빌딩들이 우후 죽순처럼 올라가고 있으며 도시들은 크게 발전되고 있고 올림픽, 월드컵 등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고 겉으로는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는 듯 합니다. 가뭄과 수해, 그리고 대형 사고가 꼬리를 잇고 남북관계는 긴장이 최고조로 고조되고 평화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웃나라들과 외교는 꼬이고 경제는 어려워지고 앞으로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물론 정치를 잘못하고 사회전반에 걸쳐 감춰진 여러 문제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것은 영적인 것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온 나라에 우상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호화롭게 절을 지어주고 있고 공공기관에서도 돼지 대가리를 가져다 놓고 버젓이 고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섬겨야 하는데 마음을 다른데 빼앗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믿음을 전수하지 못하고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물려주려고 안달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흉내 내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사랑하며 무감각해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키고 잇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런 혼란의 시대에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17장 1절에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의 배반과 불신앙을 보고도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멸망의 나락에서 구출하려고 한 사람의 선지자를 준비하시고 훈련시키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길르앗에 머물러 있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영적 훈련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심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맞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바알을 들여와 섬기며 바알이 풍성한 비를 내려 수확을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을 닫아 주십시오.' 엘리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아합에게 보냄을 받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대단한 권세를 쥐고 흔드는 아합 왕이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쓴 소리를 주저 없이 합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 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엘리야가 아합 왕 앞에 나가 전한 첫 번째 메시지는 축복의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민족의 번영을 약속하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수 년 동안 비가 오지 않고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무서운 저주의 메시지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반역의 메시지요, 아합의 무서운 칼을 부르는 위험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에게는 자기의 안일보다도 민족의 번영보다도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엘리야는 가뭄을 통해서라도 불신앙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하나님만이 살아계시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심을 가르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이스라엘 민족이 살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아합 왕에게 찾아가 메시지를 선포한 것입니다.

 

바알은 어떤 신입니까 사계절을 잘 다스리고 기후를 주장하여 곡식과 포도를 많이 수확하게 하는 기상신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기후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곡식과 포도의 수확도 하나님이 풍성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풍요롭게 될 수 있다면 하나님도 배반하고 바알과 아세라를 적극적으로 섬기려는 아합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노하셨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하나님의 곁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 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엘리야가 재치 있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하늘을 닫아 주세요. 비를 내리지 말아주세요. 그래서 왕과 백성들이 비를 주시고 이슬을 내리게 하시는 분이 바알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돌아오게 해 주세요. 아무리 바알을 열심히 숭배해도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정신차리도록 제발 하늘을 닫아 주세요. 가물게 해 주세요." 하고 진지하게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아합왕을 만나 담대하게 책망합니다. "이제부터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없고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오." 어디 바알에게 부지런히 기도해 보라는 말입니다. 비의 신, 풍요의 신 바알에게 아무리 제사를 드리고 잘 보여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소용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바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바알을 버리고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하늘을 닫는 기도를 함으로써 바알 신의 무력함을 만인들에게 드러냄으로써 왕은 물론 백성들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와 이슬을 내리지 못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을 닫는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아합 왕에게 나아가 담대하게 가뭄을 선포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뭄을 위한 기도와 메시지는 아주 무정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조국이나 동족의 번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번영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부요함 보다 더 앞세우며 살아야 할 것은 영적인 성숙과 부요함 입니다. 내 욕심대로 성취되는 것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여의치 못할 때 엘리야는 과감하게 하늘을 닫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조국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하늘 문을 닫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내 가족이 불신앙과 불순종의 길로 나아갈 때 과감하게 하늘을 닫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성공과 번영과 평안만을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성공과 번영 그리고 평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멀리하며 얻게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오히려 큰 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습관을 고착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니라고 판단될 때는 하늘을 닫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여러분 큰 능력을 간구하십니까 질병의 치유와 건강을 구하십니까 풍성한 축복을 간구하십니까 굉장한 지혜를 구하십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왜 그것들을 구하십니까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시려고 구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데 사용하시기 위해서입니까 여러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는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기도하고 기대하신 것과 다른 것을 주시고 다른 은혜를 주셨다고 실망하고 화를 내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합니까 자기 중심적으로 간구하는 기도에 머물고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키고 하늘을 열고 닫도록 믿음을 주십니다. 위기의 시대에 하나님은 자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죄악이 난무하는 시대에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번영의 시대에 세상의 달콤한 풍요 속에서 취하지 못하게 하시고 절제를 가르쳐주시며 인생의 참된 목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에 속아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을 돌이키게 하려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악의 세상에 보내십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도록 보내십니다. 하늘을 닫았다 열었다 할 권세를 주시고 보내십니다. 충분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그 뜻에 맞는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엘리야처럼 믿음으로 충만하여 담대하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큰 일을 간구하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엘리야처럼 담대하게 사람들에게 나아가 죄를 깨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일에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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