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17장 8- 16
사르밧 과부의 구원
허창수 목사 4.10.05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백성들을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아야 구원받습니다. 아무리 착하고 선해도 불택자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살인강도라 할지라도 택한자라면 구원받습니다. 택한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하나님은 그를 반드시 찾아 구원하십니다. 그런데 구원에 조건이 있습니다. 택한자가 말씀을 듣고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바울은 ‘듣지 못한 이가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라고 말했습니다 (롬10:14,15). 그래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택한자를 구원 할 수 있습니다.
택한자가 말씀을 듣지 못하면 믿음도 생길 수 없기 때문에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씀을 쉽게 들을 수 없는 곳에 사는 택한자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불교권이나 아랍권에 속한 나라에 택한자가 살고 있을 때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십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이요 대대로 바알을 섬기는 자였습니다. 자신이 택함 받은 자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7장에서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 사람입니다. ‘시돈 사람’은 이방인입니다(16:31). 이스라엘 왕 아합은 ‘바알과 함께 한 자’란 뜻인 시돈 사람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도 시돈 사람으로서 이세벨과 다를 바 없는 바알을 섬기는 악한 자였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을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이시지 시돈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12).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창세전에 택하신 자이기 때문에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엄청난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합은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왕이지만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아합은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한 왕’이였습니다(16:30).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아합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리라”고 말하므로 그날부터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여 비가 오지 않은 기간은 눅4:25에 예수님께서 ‘삼년육개월간’이라고 하셨으며 약5:17절에도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삼년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왕상18:1에 삼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삼년은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있었던 기간이며, 육개월은 그릿 시냇가에 숨었던 기간입니다. 그릿 시냇물도 말랐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9). 그래서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3년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머물라고 하신 사르밧 과부는 숨어서라도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도 아니였습니다. 넉넉한 집이 아니였습니다. 한 번 구워 먹고 죽어야 할 정도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무른 대책도 없는 과부에게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시돈으로 갔습니다. 마치 나무를 줍는 한 과부에게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10). 그 말을 들은 과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물을 가지러 가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다시 그를 불러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과부는 물을 달라고 했을 때는 가지러 가려고 했지만 떡을 달라고 했을 때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12).
그래도 엘리야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을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말을 하였습니다(13,14). 엘리야의 이 말은 과부에게는 어려운 시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과부는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순종 할 정도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방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엄청난 시험을 너무나도 쉽게 이겼습니다. 과부가 가서 떡을 구워 엘리야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9).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과부에게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엘리야가 오는 길목에서 나무를 줍도록 하셨고, 엘리야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곧 바로 물과 떡을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9절 말씀 속에는 우리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엄청난 뜻이 숨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들을 수가 없는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모압 여인 룻은 대대로 모압 신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룻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자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룻을 구원하기 위해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족을 모압으로 보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족을 모압에 보내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먹고 살 수 없을 정도로 큰 흉년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의 가족은 모압으로 내려가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엘리멜렉은 죽고 아내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 룻과 오르바와 결혼 시켰습니다. 10년이 지나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 올 때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가고 룻만 데리고 왔습니다. 룻은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고백을 하므로 구원받는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룻1:16). 룻 한 여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건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사건을 통해 사르밧 과부 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 지경에 삼년육개월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온 지경에는 풀도 나무도 다 말라 죽었습니다. 동물이고 짐승들이 물이 없어 죽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 믿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긴 죄로 인한 징벌이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비를 언제 내렸습니까? 아합왕과 이세벨이 자신들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했기 때문에 비를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섬긴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비를 내린 것도 아닙니다. 18:1에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삼년전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9). 그래서 엘리야는 삼년을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삼년이 지나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엘리야는 삼년간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면서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어 잘 알 수 없습니다. 엘리야는 가루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으로 만든 떡만 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르밧 과부에 보내신 것은 말씀을 전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삼년을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을 것이며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전해 주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17:24에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하다’고 한 ‘진실’은 ‘아멘’이란 뜻입니다. 의심할 것 없는 진리임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이제야 ...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믿노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비로소 믿고 진심으로 고백하기까지는 삼년이나 걸렸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이 고백을 듣고 하나님은 비를 내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이 회개해서 비를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합이나 이세벨은 전보다 더 악해졌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내려 제물을 태우는 것을 보았지만 아합이나 이세벨은 더욱 악하여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긴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해서 비를 내리신 것도 아닙니다. 물이 없어 죽어 가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온 지경에 내린 삼년육개월간의 재앙을 사르밧 과부의 믿음의 고백을 듣고 그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재앙을 내리시고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모압 여인 룻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베들레헴에 흉년과 여러 사람들이 죽어야 했습니다. 이사야 43:4장에 하나님은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하신 사르밧 과부를 사랑하셨으므로 많은 사람들을 내어 주고 백성들의 생명을 대신하여 바꾸셨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대접하므로 큰 축복을 받았다고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을 보고 놀라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 벗과 이웃이 함께 즐기며 기뻐하는 것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한 마리의 잃은 양이였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17장에 기록한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은 삼년육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오직 한 사람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신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 하셨던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떻게 일 하셨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복을 들을 수 있도록 전도자를 보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생명을 주어 바꾸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나의 구원’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을 당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사르밧 과부를 구원하셨던 말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누굽니까? 여러분이 누굽니까? 창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신 자입니다. 그동안 나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 섬기고 귀신 섬겼던 사르밧 과부와 같이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바꾸고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찬송으로 영광을 돌립시다. 하물며 아합 왕궁 맡은 오바다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오바다는 선지자들을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여 살렸습니다(18:4). 이렇게 아합과 이세벨 몰래 선지자들을 숨겨 먹이고 살리는 일을 하던 오바다가 엘리야를 만나 뭐라고 했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하며 엘리야 당신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원망을 하였습니다(18:9).
지극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오바다까지도 엘리야를 원망하였습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일하셨습니다. 그 일 역시 엄청난 사건을 통해 일하신 것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팔려가서 종이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 고발로 억울한 옥에 갇혀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므로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입니다.
허목사가 동성교회에 오기까지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알면 놀랄 것입니다. 허목사가 오기 전 10년 동안 동성교회는 영적 가뭄으로 성도 여러분은 기갈을 당했습니다. 박태생 목사님의 암으로 죽고, 이상함 목사님의 절도사건은 동성교회에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정수열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과의 갈등과 말없이 미국으로 가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입니다. 허목사 역시 동성교회에 오기까지의 10년은 험난했습니다. 부산서 개척하여 13년 동안 그런대로 안정된 목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팔송교회가 교회당 건축하면서 진 빚으로 경매에 넘어갈 정도가 되었을 때 교인들이 저에게 와서 교회를 살려달라고 사정해서 옮겼습니다. 팔송교회에서 빚을 정리하는 일로 엄청난 어려움을 당했지만 교회를 살렸습니다. 그리고 합산교회 당회장이였
지금까지 제가 사르밧 과부에 대한 오해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기와 아들이 한번 구워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어려운 형편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위해 음식을 주어 먹게 하였다는 것을 보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비가 내리기까지 가루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의 오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서 머물라고 하셨을까요? 오늘은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과부’는 남편이 죽고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구제 받을 대상자였습니다. 초대 교회가 구제할 대상자가 고아와 과부였습니다. 바울은 “참 과주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하였습니다(딤전5:3). ‘참 과부’는 ‘외로운 자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라야 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로서 나이가 육십이 넘어야 하며 다시 시집을 가려고 하는 젊은 과부는 참 과부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남편이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장성한 아들이라면 어머니를 부양할 수 있겠지만 나무를 줍는 것도 아들이 하지 않고 어머니가 하는 것을 보아 아들은 나이가 어린 것으로 생각 할 때 육십이 아직 덜된 젊은 과부라고 할 때 ‘참 과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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