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5장 5-10
믿음의 삶
이백민 목사 2017.12.10
브니엘교회 [호주] http://ghttp://gcpeniel.org/xe/
물리학에서 제일 유명한 과학적 이론 중의 하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입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나누어집니다. 아인슈타인 이전의 과학은 시간도 공간도 절대적이고 일정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특별 상대성 이론에서 빛은 일정한 속도(299792.458 km/s)를 가져야만 하는데 이론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예를 든다면, 초속 200km로 달리는 기차 속에서 빛을 쏜다면 이론 상으로 빛의 속도 + 200km가 되어 2.99992.458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차 바깥에서 이 빛의 속도를 감지를 한다면 눈으로 보는 빛의 속도는 원래 빛의 속도를 유지합니다(299792.458 km/s). 분명히 빛의 속도는 달라야 하는데 기차 안에서도 같은 빛의 속도를 유지하고, 기차 바깥에서도 같은 빛의 속도를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기차 안과 바깥의 빛의 속도를 같은 속도로 유지하려고 하면 시간이 바뀌어져야 가능합니다. 기차 바깥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차 안의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의 시간과 기차 바깥에 있는 사람의 시간은 각각 똑 같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만 상대적으로는 다른 시간에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진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주 미세하지만 각각 다른 시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자기파(우주선, Cosmic Ray)가 대기권에서 공기분자와 부딪히면서 뮤온이라는 입자가 생성되는데 이 입자 수명은 2.2마이크로초입니다. 지상에 도달하려면 최소 200마이크로초의 시간이 요구되어 뮤온을 지상에서 관찰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관찰이 됩니다. 이유는 거의 빛의 속도로 떨어지는 뮤온에 상대성이론이 적용되어 시간지연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제트기에 원자시계를 장착하여 시간이 지상과 다르게 흐르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에서 우주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면 나와 함께 생활하던 지구에 있던 사람들은 훨씬 나이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선에 있는 사람이나 지구에 있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이 똑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이론으로 아인슈타인은 노벨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훗날 들리는 이야기로는 노벨상을 심사하는 사람들 중에서 특수상대성이론을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길도 어떤 의미에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과 다른 공간에 있을 때 우리는 죄인의 공간에서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만이 전부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옳은 줄 알고 살아갑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다른 공간에서 하나님과 같은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삶 – Union with Jesus Christ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사람의 몸으로 계셨지만 하나님과 항상 함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죽이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아버지와 하나인 것을 또 다르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탕자가 아버지와 한 집에 있었을 때는 아버지와 하나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났을 때 아버지와 탕자는 다른 공간에 있었던 것입니다. 공간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생각과 아들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탕자가 죄를 뉘우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는 아버지와 다시 하나되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아담과 하와도 욕심과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공간에 있지 못하는 것이 인류의 불행이었습니다.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말씀으로 하나 됨 – Union by the Word of God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첫 째 왕이었던 사울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떠난 그에게는 하나님은 사무엘의 하나님이었지 사울의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하나님을 항상 “당신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삼상 15: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그러나, 다윗에게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다윗과 하나된 하나님이셨습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은 왕의 권위로 사무엘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았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왕의 권위도 내려 놓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범죄하여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책망하였을 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울며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믿음의 삶 – A Faithful Life
그러므로, 믿음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말씀에 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할 때 그 마음에 말씀이 없으므로 항상 자기 생각으로 모든 것들을 판단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한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자신들을 의롭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깨닫게 되어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하게 됩니다. 이제는 자신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바리새인과 같이 자기 자신이 삶의 기준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의 앉아있는 신성모독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사셨을 때 모든 삶의 기준이 성부하나님께 있었습니다.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 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도 바울은 변화 받기 전 자신과 자신이 속한 종교적 기준에서 자신이 의롭다고 착각하여 죄인같아 보이는 성도들을 박해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 받은 후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내가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까? 믿음의 삶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입니다.
<적 용>
* 요한복음 15:5-10
우리의 삶에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거나 상대성을 가지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습니까?
내가 믿음의 사람, 예수님과 하나 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요 15:5, 마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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