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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출애굽기

출 32장 30-33절(모세의 사랑) - 이백민

by Preacher 2023.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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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2장 30-33

모세의 사랑

이백민 목사 2016.07.31

브니엘교회 [호주] http://ghttp://gcpeniel.org/xe/

 

요즘 세계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나 최근에 일어난 터키 쿠데타 실패 사건 등을 접하면서 사람들이 너무나 이기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민족이기주의, 종교이기주의, 국가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를 그 사건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터키 쿠데타는 성공해도 문제고, 실패를 해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에르도안 정부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약 3만 5천 명의 공무원들과 군인, 경찰, 판사와 검사, 교사 및 대학 총장들을 구금하거나 해고 또는 직무정지시켰습니다. 학교 1400여곳이 폐쇄되었고 병원과 단체 1200여곳도 문을 닫았습니다. 구데타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독재정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구데타가 자작극이 아니었나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세대에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깨어 있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종교적인 이스라엘 백성 – The Religious People of Israel

 

IS를 추종하며 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나 터키 독재자의 공통점은 이슬람에 대하여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것이 반드시 선하고 경건한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얼마나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까? 모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 금송아지가 자기들을 인도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소란스러운 종교축제를 벌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종교적이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죄로 규정하시고 그들을 모두 멸하시기로 계획하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테러를 일으키다 죽은 사람들을 그들 사이에서는 거룩한 순교자로 인식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순교한 사람들은 모두 파라다이스로 가서 호화스럽게 산다고 선전합니다. 테러 하다가 죽기 전에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고 외치는 것은 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신을 위해 이렇게 외치고 죽어야 그들이 원하는 파라다이스로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금송아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다른 신을 섬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들이 불렀던 신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동일하였습니다.

 

(출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 32: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얼마나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었던 세례요한은 이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망하였습니다.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폄하하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 그런 이적을 행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도 세례요한과 같은 책망을 하셨습니다.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책망 받는 사람이 아니라 칭찬 받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영적 분별력 – Spiritual Discernment

 

종교적인 형식 보다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적 지식, 전통이 우리를 항상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백성들을 옳은 길로 인도할만한 영적 안목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 15:14)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출애굽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멋진 종교적 형식을 갖추고 예배와 축제를 벌였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를 알고 있었습니다.

 

(출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모세가 깨달을 수 있었던 죄를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몰랐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자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IS 추종자들과 같은 맹목적 종교인들은 종교적이지만 죄를 분별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반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딤후 3: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모세의 사랑 – The Love of Moses

 

우리는 “경건의 모양” 보다 “경건의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어떤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종교축제를 벌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여워하시고 그들을 모두 멸하고 모세를 통하여 새로운 민족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출 32: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에게는 얼마나 솔깃한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환경을 만날 때 마다 모세를 불평하고 반역하였습니다. 모세도 그런 백성들을 이끄는 것이 편치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백성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지도자의 자리에서 쫓아내려고 하였을 때도 있었고 죽이려고 하였을 때도 있었지만 모세는 그들과 정반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였던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한 후에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출 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모세는 이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IS추종자들이나 종교적인 사람들에게서 훌륭한“경건의 모양”은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들 나름의 믿음도 있고, 소망도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을 확신 있게 믿는 모습, 그들이 소망하는 이상적 종교적 국가와 사후의 파라다이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랑’입니다. 그들만의 종교적인 믿음과 소망으로 사람들을 잔인하게 해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에게도 겉으로 드러내는 믿음과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었지만 사랑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제일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사도 바울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모세가 가졌던 경건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 중에 가장 큰 것도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도 모세처럼,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적 용>

 

* 출애굽기 32:30-33

 

우리가 알고 있거나 경험한 가장 큰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긴 것은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습니까?

 

모세와 영적 분별력이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다른 점들은 무엇이었습니까?

 

모세는 어떤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나는 어떤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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