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40장 17-19
첫째 달 초하루에
안효관 목사 2018-02-11
전주남성교회 https://https://www.nsc.or.kr/
해럴드 래미스(Harold Ramis, 1944-2014) 감독이 만들어 1993년에 개봉한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영화’라는 평을 받았던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입니다.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우리로 말하면 경칩 절기 정도 되는 날입니다. 다람쥐 과에 속하는 그라운드호그라는 동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2월 2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남자 주인공인 필 코너스는 한 방송국의 일기예보 기자이고, 여자 주인공인 리타는 그 방송국의 신입 PD입니다. 그 둘은 매년 그라운드호그 데이에 겨울날씨를 예상해주는 머멋을 취재하러 그라운드호그 데이 축제가 열리는 시골마을로 내려갑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거만한 필에게는 모든 일에 귀찮고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늘 불평이 가득하고 매사가 퉁명스럽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취재를 하고 하루를 보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명 하루가 지났는데도 다음날 일어나보니 어제와 똑같은 날이 반복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오늘이 아니라 어제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런 날이 그날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잠을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2월 2일 그라운드호그 데이입니다. 아침 여섯 시가 되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멘트도 매일 동일하고, 샤워하기 위해서 물을 틀었는데 어제처럼 여전히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어차피 하루가 반복되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은 행복하게 지냈는데, 이것도 곧 실증이 나고 맙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해 보고 싶은 것을 다 해 봅니다. 마을 레스토랑에서 만난 여인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의 정보를 다 캐내기도 하고, 술을 잔뜩 마시고는 음주난폭운전을 해서 유치장에 갇혀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먹지 않는 것들도 마음껏 먹어보고, 현금수송차량을 훔쳐서 호화판으로 놀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권총자살을 하고, 전기에 감전되어 감전사하기도 하고, 약을 먹고 음독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납치해서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는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2월 2일이 반복되는 날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수없이 많은 날들 동안 그런 일이 반복됩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점점 착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노인을 돕기도 하고, 피아노를 배워 능숙하게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의 마지막 결말은 주인공 필이 마법에서 풀리게 되고, 평소 좋아했던 여자와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영화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매일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날의 반복은 일어나지 않지만 때로 우리는 똑같은 날이 아님에도 매일이 똑같은 날처럼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말씀드린 영화도 그 내용이 황당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어쩌면 같은 날을 반복해서 살아야 하는 그 영화 주인공과 같은 삶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직장에서의 삶, 매일 똑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삶, 시지푸스의 형벌과도 같이 매일 똑같은 고통이 연속되는 삶,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육아와 가정의 일 등등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오늘을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릅니다.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가지기도 하고, 여전히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 계속되기도 합니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는 오늘이라도 내가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분명 오늘은 반복되는 어제가 아닙니다.
어제 떠오른 태양이 오늘도 떠오릅니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어제와 똑같은 아침식사를 하고,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직장에 출근하여 어제 만났던 사람을 만나 어제의 일을 반복합니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을지라도 주부들은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남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며 어제와 똑같은 방법으로 또 하루도 살아갑니다. 매일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살아가지만 오늘은 결코 어제가 아닙니다. 어제를 반복해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반복되는 일상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날짜입니다. 어제가 2월 10일이었다면 오늘은 2월 11일입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반복한다 하더라도 2월 10일과 2월 11일은 분명 다릅니다. 날짜의 계산을 통해서 우리는 무의미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대로 보람있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우리는 이번 주에 설날을 맞게 됩니다. 설날은 우리 문화의 전통에서 새해를 의미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일 년에 세 번의 새해를 맞게 됩니다. 첫 번째 맞이한 새해는 대림절과 함께 시작된 교회력의 새해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의 삶과 생애를 1년 단위로 기념하며 지키도록 되어 있는데, 그 교회력의 시작이 대림절입니다. 그래서 교회력에서는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이 새해가 됩니다. 그리고 태양력의 1월 1일은 전 세계인들이 새해로 맞이하는 날이고, 설날은 우리민족을 비롯하여 음력을 지키고 있는 몇몇의 동양권 문화에서 지키는 새해입니다.
성경의 나라 이스라엘에서는 우리와 또 다른 새해를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새해를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라고 부릅니다. ‘로쉬 하샤나’라는 말은 ‘해의 머리’라는 뜻으로 새해를 의미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나팔절이 바로 그날입니다. 태양력으로는 9월에서 10월 사이에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날을 새해로 여기고 우리의 설날처럼 휴일로 지정해 보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또 다른 새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여기서 말하는 둘째 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번째 되는 해를 말합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바로 왕에게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 결국 항복하게 하셨는데, 그 열 번째 재앙이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재앙이 내리기 전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야 했습니다. 애굽 온 지역에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그 피를 보면 그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 집을 건너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여진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그 유월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아빕월 14일입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이 있는 아빕월을 새해 첫 달로 계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2:2절에서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다시 말하면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지키고 있는 로쉬 하샤나를 새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아빕월 첫날이 새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빕월은 오늘 우리가 지키는 태양력으로는 3-4월에 해당됩니다. 아비브라는 말은 ‘봄’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수도는 텔아비브입니다. 텔이라는 말은 언덕이라는 뜻이고 아비브라는 단어는 ‘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텔아비브는 ‘봄의 언덕’이라는 뜻이 됩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3-4월에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이스라엘에도 3-4월쯤에 봄이 찾아옵니다. 그 아빕월을 새해 첫 달로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해 첫째 달 초하루는 오늘 우리로 말하면 설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새해 첫날에 성막을 세우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에 도착한 것은 출애굽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맺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언약입니다. 언약을 맺으신(출애굽기 20-24장) 이후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성막을 지으라는 것이었습니다.(출애굽기 25장 이후)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의 기구들과 성막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출애굽한 지 두 번째 해의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웠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열 달 가까이 성막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막준비가 끝나자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달 초하루, 설날과도 같은 그 날에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달 초하루는 새로운 결단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첫 달 초하루에 있었던 일을 종종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 시대에 홍수로 온 지면이 심판을 받았을 때 노아가 방주의 뚜껑을 열었던 날이 첫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창세기 8:13) 홍수가 나기 시작한지 거의 일 년 가까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 일 년 가까이(10개월 13일) 노아와 방주에 있는 짐승들은 방주의 문을 굳게 걸어잠근 상태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가 멈췄고, 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노아가 601세가 되던 새해 첫 달 초하루에 방주의 뚜껑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며 땅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대하 29장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첫째 달 초하루에 성전을 성결케 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 왕 때까지는 거의 버려진 성전이었는데, 히스기야가 첫째 달 초하루에 성전을 성결케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회복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라 7장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와 함께 두 번째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출발한 날이 첫째 달 초하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1차 귀환 이후 나라가 안정되길 기대했지만 그들의 기대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엉망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성전이 건축된 지 50년이 훨씬 지났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율법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침으로 말씀 안에서 바른 신앙으로 회복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씀회복을 위해서 바벨론 땅을 떠나던 날이 바로 첫째 달 초하루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첫째 달 초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그 사건들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느끼셨습니까? 노아홍수 이후 닫혀 있던 방주의 뚜껑을 처음 연 날이 첫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방치된 성전을 성결케 하던 날도 첫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두 번째 성전이 건축되었지만 여전히 타락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씀을 통해 새롭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보내신 날도 첫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10개월 가까이 준비한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첫 번째 성막이 온전한 모습으로 세워지던 날도 첫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첫째 달 초하루에 있었던 이 모든 일들은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개혁과 회복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생활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뿐만 아니라 출애굽 이후 지난 1년 동안 살아온 모든 삶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400년 동안 노예생활하던 애굽에서 탈출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탈출한 이후 지난 1년 동안도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단 한 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애굽한지 딱 1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그 달을 새해 첫 달로 삼으라고 말씀하신 이후 처음 맞는 새해입니다. 그리고 그 새해 첫날 아침에 성막을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곳이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된 유일한 장소입니다. 그 성막이 세워짐으로 해서 이제 이스라엘의 삶은 이전과 달라질 것입니다. 성막을 세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달라진 두 가지 분명한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3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막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길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늘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 가운데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의 가시적인 표현입니다. 성막을 세운 후에 달라진 두 번째 현상은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기만 하면 그들 앞에는 두려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하실 때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때 멈춰서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첫째 달 초하루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모세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직접 경험하며 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달 초하루는 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또 하루의 날입니다. 물론 그날도 광야의 태양은 여전히 어제와 똑같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여전히 광야를 내리쬐이는 태양의 강렬함은 어제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장막을 치고 살아야 하는 고달픈 삶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그들은 광야길을 걸어야 하고, 장막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첫째 달 초하루부터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눈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의 품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앞길을 인도할 것입니다. 어제와 같은 하루이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하루가 첫째 달 초하루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제 곧 첫째 달 초하루인 설날을 맞게 됩니다. 그 날이 여러분에게는 어떤 날이기를 기대하십니까? 그동안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나는 날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며느리들은 시댁에 가서 또 음식을 장만하고 시중들어야 하는 고생의 날로만 기억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 날은 우리에게 첫째 달 초하루와 같은 새로운 의미가 더해지는 날이어야 합니다. 노아가 방주의 뚜껑을 열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볼 수 있었던 그 날처럼, 히스기야가 잊혀졌던 성전을 성결케 함으로서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기 시작한 날처럼, 타락하고 절망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보내시는 날처럼, 그리고 1년여 동안 준비한 성막을 세움으로 새로운 광야생활을 시작하게 된 날처럼 우리에게도 새로운 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변화가 있고, 우리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해지는 날이어야 합니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주인공 필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매일 반복되는 날이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내가 욕망하는 것 다 가져보는 그런 날이어서는 안 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 아무런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이 지나쳐버리는 날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서 수고하고 배려하기 시작하는 날이어야 그 날이 우리에게 유의미한 날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매일이 첫째 달 초하루와 같은 날이어야 합니다. 새로운 은혜가 주어지기에 새로운 날이어야 하고, 새로운 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숙해져가는 날이기에 새로운 날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받는 축복의 날이기에 새로운 날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날로 성결해지고, 날로 성숙해질 것입니다.
정용철 시인이 쓴 ‘이 세상에서 단 한번 뿐이라면.’이라는 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과 길을 걸으라면 누구와 함께 걷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하루만 살라고 하면 그날을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사랑하라면 누구를 사랑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단어만 가슴에 품으라면 어떤 단어를 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마디만 하라고 하면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하나의 물건을 가지라면 어떤 것을 갖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읽으라면 어떤 책을 읽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편의 글을 쓰라고 하면 어떤 내용의 글을 쓰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일만 하라고 하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송이의 꽃을 꽃병에 꽂으라면 어떤 꽃을 꽂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만 웃으라고 하면 언제 웃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만 울리고 하면 어느 때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계절만 살라고 하면 어느 계절에 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곳만 찾아가라고 하면 어디를 찾아가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장면의 자연을 보라고 하면 어떤 풍경을 바라보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소원을 기도하라면 어떤 기도를 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 한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들입니까?
여러분, 이 시 가운데 이런 구절로 우리에게 다시 질문해 보십시다. ‘이 세상에서 단 하루만 살라고 하면 그날을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이 구절을 이렇게 바꿔 질문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루만 살라고 하면 어떤 날로 살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살아야 할 날이 있다면 그것은 첫째 달 초하루와 같은 날이어야 합니다. 그날은 은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은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날이요, 그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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