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1장 1~15
무엇이 우선인가
진창설 목사 2016년 1월 17
신광교회 [창원시] http://www.sk.or.kr/
1. 우선순위란?
중국인 청년 하나와 미국 청년이 서로 대화를 하던 중 중국인이 물었습니다. “너희 미국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니?” “우리는 수염을 깎은 뒤 세수를 하지.” 그러자 중국인은 “그래? 우리 중국인들은 제일 먼저 옷을 입는데”라고 하면서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십니까?
이렇게 하루의 삶에도 ‘무엇을 먼저 하는가’ 하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우선순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날의 승패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우선순위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요. 어느 큰 저택에 불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 집의 여주인이 겁에 질린 채로 뛰어나오더니 갑자기 다시 불타는 집으로 뒤돌아 뛰어갔습니다. 그러고는 귀중품이 들어 있는 상자를 안고 나온 뒤 “귀고리, 목걸이, 팔지, 응, 모든 보석이 다 있구나! 정말 다행이다”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불이 난 것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이 “어, 저기 창가에 아이들이 있어요”라고 외쳤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녀는 “아, 아이들! 내 아이들!”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火魔가 얼마나 강한지 어느 누구도 집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고, 그녀가 아무리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쳐봐야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아이들을 잃고 말았던 것이죠. 이렇게 ‘우선순위’라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優先順位에 두고 사시는지요?
2. 우선순위가 뒤바뀐 사람들
1) 폐허로 방치된 성전
오늘 본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주전 586년 바벨론 군대에 의해 남 유다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나라도 없어졌고, 성전도 무너졌으며,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그러고는 한 많은 70년이 흐른 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정책으로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약 5만 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동행했습니다. 그렇게 돌아온 그들은 가장 먼저 성전 재건축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가 앞장섰습니다. 두 사람의 지휘 아래 주전 536년경, 성전재건이 시작되었는데요. 그런데 성전공사는 시작한지 약 1년 만에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역적으로 이웃이자 혈통적으로 반쪽짜리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리아인들과 그 집권자들의 방해 때문이었습니다. 즉 총독 스룹바벨이 페르시아 왕의 허락을 얻어 성전을 재건하고 있었으나, 주변 지역 주민들과 집권자들이 방해함으로서 성전 공사가 벽에 부딪혀 중단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약 15년여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리오 왕 제 2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1). 다리오 왕은 주전 521년부터 486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한 ‘히스타스페스(Hystaspes)’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다리오 왕 제 이 년”은 주전 520년을 가리킵니다. 이 연대는 고레스 왕이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임명하여 유대인들을 귀환시킨 주전 538년으로부터 무려 18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를 통하여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 및 모든 귀환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2)”였습니다. 즉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위시하여 귀환한 유대인들은 지난 18년 동안, 그리고 공사가 중단된 후 약 15년 여 세월동안 성전을 완공하지 못한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학개를 통하여 성전이 공사 도중 중단된 채로 버려져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건물이든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채로 버려두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아마 처음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이용되기도 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도 찾지 않고, 들짐승들이나 드나드는 흉가처럼 변하지 않았을까요? 성전은 그렇게 15년 여 세월 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2) 건축은 무슨?
그런데 이렇게 성전이 공사 도중 중단되어 버려진 채로 있는 것에 대해 귀환자들에게는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2절,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귀환자들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인 이유였습니다.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주변 나라들의 반대 때문에 성전공사를 섣불리 시작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변 종족들은 이스라엘의 재건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에 대해 계속 위협하고 또 모함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고레스 왕이 죽은 후 그를 계승한 왕이 이스라엘 성전 재건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다 주변 나라들의 모함을 진실로 받아들여 이스라엘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페르시아에 대한 반역으로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내부적인 이유였습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빈곤’이었습니다.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에 귀환한 자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필요한 비용을 대는 일은 상당히 힘겨웠습니다. 이것이 성전 건축을 중단한 가장 큰 내적인 이유였습니다.
세 번째, 나름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포로기간, 즉 바벨론 포로 70년 기간이 아직 차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들 중 상당수는 ‘주님의 종들에 의해 예언된 포로 기간 70년이 아직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한 주전 586년부터를 포로 기간으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학개가 예언할 당시는 66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처음 포로로 끌려간 주전 605년부터를 포로 기간으로 봅니다. 그렇게 보면 학개 당시는 이미 70년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귀환자들은 포로 기간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여 성전 건축을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2)” 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이 정말 잊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바벨론으로부터 귀환시키시고 성전을 건축하도록 하신 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자신들을 돌아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다면, 그 일을 완성할 때까지 필요한 것도 공급해 주실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성전 공사를 중단한 것도 불신이요, 15년 여 세월 동안 성전을 폐허처럼 버려둔 것도 결국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불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죠.
3) 잘못된 우선순위의 결과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성전 재건을 미루는 것에 대해 정치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를 거창하게 대던 이들이 자기 집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4절,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이 말씀은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것은 결코 경제적인 궁핍이나, 때가 아직 되지 않은 것 때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치적 여건 때문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우선권을 두지 않고, 자신과 세상살이에 우선권을 두고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판벽한(세푸님)”이라는 말은 ‘지붕이 덮인 상태’를 나타내기도 하며, ‘호화스러운 사치품으로 치장하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은 기초공사로 끝났는데 반해 그들의 집은 완전히 갖추었다는 말이고, 성전은 엉망인데 반해 그들의 집은 아주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말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을 치장하면서도 보기 흉할 정도로 훼파된 성전은 돌아보지 않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집보다 자기 집을 더 사랑한 것이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대하여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5)”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優先權을 두어야 할 일이 아닌 次善 三善의 일들에 우선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은 그들의 잘못된 우선권의 결과를 말씀하셨습니다.
6절,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집을 짓기에 빨랐을 때 그들에게 무슨 실제적인 이익이 있었나를 말씀하십니다. 우선 그들이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했습니다. 먹어도 배부르지 못했습니다. 마셔도 만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였습니다. 품꾼이 품삯을 받아도,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사건사고가 터져서 그들의 돈은 어느샌가 다 빠져나가고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어떤 만족도 있을 수가 없었지요. 즉 그들이 성전보다 먼저 자신의 집을 건축한 것이 그들에게 그 어떤 도움이 되지 않았고 도리어 손해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7절에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하신 후, 9절 이하를 보십시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이스라엘이 지난 15년 여 세월 동안 힘들게 어렵게 살아온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거둘 수 없고, 저축할 수 없고, 불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10절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집을 황폐하게 내버려두고 오직 자기 일에만 매달린 결과를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습니다(10).” 이슬은 팔레스타인처럼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곳에서는 농사를 짓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슬의 그침은 땅이 소출을 낼 수 없으며 가뭄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 가뭄, 旱災는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했습니다(11).
한 마디로 이슬이 내리지 않은 결과로 인한 가뭄의 재앙은 유다 백성의 삶 전체를 파괴했다는 말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과 예배와 성전에 대해 무관심하고 세상의 것 땅의 것 사람의 것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귀환자들의 현실이었습니다.
4) 성전부터 건축하라!
그렇지만 감사한 것은 아무리 깨닫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이제 그 불행한 삶에서 이끌어내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성전 건축을 당장 행동으로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8절,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당시 유다 백성들이 거주하던 곳은 지난 70년 동안 거의 버려져 있다 시피 하였기 때문에 나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느 8:15,16). 하나님은 큰 돈, 많은 돈이 드는 자재를 가지고 성전을 건축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솔로몬처럼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재로 성전을 건축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드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고후8:11,12). 하나님은 화려한 건물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들로 성전을 건축하기를 바라셨던 것이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그 명령에 순종하면 그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고 기뻐하십니다. 8절,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기서 이 ‘기뻐하고’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희생 제사를 나타낼 때 사용된 용어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전이 하나님께서 즐거이 받으실 만한 희생 제사와 같은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성전을 완공할 때 영광을 얻으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은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면 그들과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3).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과 함께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고단한 삶에 지친 그들을 위로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도우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14, 15절에 보면, 주께서 유다 총독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의 마음과 대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아 있는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즉 그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고, 그 결과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모세 시대 성막을 제조할 때처럼 성전을 짓는 일 역시 성령으로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이 가능하도록 성령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등 지도자들과 온 백성들이 성전짓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첫 성전을 건축하고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대하6:18)” 하나님은 사실 이 땅에 거주지를 정하여 스스로 제한하시고, 또 피조물 가운데 계실만한 분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이 집, 성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왜 성전을 지으라고 하십니까? 결국 그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예배 없이, 성전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바르게 살고, 온전한 예배자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산다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지 못하니까, 당신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그 백성들 때문에 성전을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 그들의 안정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성공을 위하여!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귀환자들이 성전 공사를 再開한 때는 “다리오 왕 제 2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습니다(15). 학개가 첫 번째 메시지를 선포한 때가 “제 2 년” 유 월 1일이었는데요(1), 백성들이 학개의 말씀을 듣고 꼭 세 이례, 즉 3주 만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3. 우리 세대의 우선순위, 교육관 건축
말씀을 맺겠습니다.
미국에서 구두로 돈을 엄청나게 번 ‘브라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에게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 성공의 비결은 우선순위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사에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그리고 구두를 만드는 것은 셋째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성도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의 삶의 질과 양을 결정짓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시계가 하나인 사람은 시간을 정확히 알지만 시계가 두 개인 사람은 확실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력이 분산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목표를 정해도 목표에서 빗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일들이 크게 부풀려져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토저(Aiden Tozer, 1897~1963) 목사는 충고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삶의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그럴 때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일 수 있다” 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여러분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살아 오셨습니까? 아니면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힘과 시간과 돈을 써가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요? 오늘 본문이 말하는 신자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나보다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내가 할 일보다 예배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내 집보다 성전이 우선입니다. 이 단순한 원칙에서 벗어났던 포로 귀환자들이 얼마나 불행했습니까?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신자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나, 예배보다 내 일, 성전보다 내 집, 다음세대보다 지금의 나를 우선으로 한다면, 모든 것에 실패하고 그 모든 것을 잃는 것, 바로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안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우리 교회가 건축하려는 교육관은 우리보다 하나님, 우리 일보다 하나님의 일, 우리 집보다는 성전, 그리고 우리 세대보다는 다음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헌신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헌신하는 자들을 복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 증명하는 것이요, 교회 역사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먼저 하십시오. 하나님께 시간과 물질을 먼저 드리십시오. 그렇게 하여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관을 지읍시다. 그러면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을 더 하시고, 물질에 넘치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구약 -------------------- > 학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 2장 18-19절(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 양인국 (0) | 2023.08.06 |
---|---|
학 2장 20-22절(나의 인 스룹바벨) - 윤석준 (0) | 2023.07.23 |
학 2장 1-9절(무엇을 사모하는가) - 조영식 (0) | 2023.06.30 |
학 1장 12-15절(열정이 있는 일꾼) - 김창규 (0) | 2023.06.23 |
학 2장 2-4절(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 조성노 (0) | 2023.06.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