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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학개

학 2장 1-9절(무엇을 사모하는가) - 조영식

by Preacher 2023.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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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2장 1-9

무엇을 사모하는가

조영식 목사 2016.8.21.일

김포한신교회 http://kimpohansin.onmam.co.kr/

 

1.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0. 들어가는 글

 

8월 셋째 주일입니다. 폭염이 멈추지 않고 계속 길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에어컨 별명을 굴비라고 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굴비를 매달라 놓고 바라만 보면서 밥을 먹었듯이 전기 누진세가 무서워서 에어컨을 틀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니까 굴비라고 한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70년 지난 후에 그들이 포로에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을 추진하였지만 주변의 방해로 14년 동안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개 선지자의 독려로 중단 되었던 성전을 다시 재건하였습니다(학1:14). 그러나 그들은 다시 재건한 성전을 보면서 실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이 실망한 이유를 깨닫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스스로 굳세게 하였는가?

 

한국 교회가 교회를 건축할 때 학개서를 많이 인용합니다. 그러나 학개서는 교회를 절대로 크게 지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학개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한 달 만에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학1:15,2:1). 그 이유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그 재료로 성전을 건축하였기 때문입니다(학1:8). 그리고 한 달 만에 건축한 성전을 7년 동안 건축했던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보니 너무나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3절). 우리들은 이전 것보다도 나중 것을 더 크게 지어야 하나님이 복 주셨다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전 것보다도 더 작고 초라하게 지은 성전을 보면서 무척 실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망하는 그들에게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를 세 번씩이나 말씀하였습니다(4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성전의 겉모양을 보면서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솔로몬의 성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이 그들의 믿음을 지켜주지 못하고 파괴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대단한 건물의 교회를 다닐지라도 우리들의 믿음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규모나 숫자 등의 겉모습만을 보면서 평가를 합니다.

 

저도 어떤 교회가 좋은 장소에 세워져서 많은 숫자가 모인다는 소문을 들으면 괜히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규모에 위축되지 않고 굳세게 하라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그러므로 성전의 겉모양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이 없으면 언제나 겉모습을 비교하면서 위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믿음이 있으면 겉모습에 위축되지 않고 스스로 굳세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겉모습에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굳세게 세워가는 믿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둘째는 세상의 핍박을 받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다시 재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핍박이 두려워서 14년 동안 성전 공사를 중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변에서 많은 핍박이 있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민족들의 비난 때문에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굳세게 해야 합니다.

 

저도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위축되어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흔들인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지 않으면 사람들 눈치 보다가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향을 잡을 때 믿음을 굳세게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가 세상의 비난에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굳세게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들도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을 굳게 세워 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는 자신들의 초라한 존재를 보면서 위축되지 말고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정착하여 그런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바벨론에서 이루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보니 현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현실에서의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초라한 처지에 있는 백성들에게 마지막 세 번째는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라고 동사를 다르게 말씀합니다(4절). 그들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계속하여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5절). 포로생활에도 머물렀던 성령님은 돌아와서도 계속 그들 가운데 머물러 계심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 할수록 저의 무능함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의 무능한 모습에 위축되어서 초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능하고 초라할지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머물며 위로와 소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까? 성령님은 제가 무능하고 초라한 존재가 맞지만 그럴수록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하늘에 소망을 굳세게 가져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건강할 때도 머물러 계신 성령님은 연약해졌을 때도 계속 머물러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세상에서 무능하고 초라해질수록 성령의 위로로 하늘에 소망을 굳세게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무엇을 사모하는가?

 

교회는 겉모습보다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영광이 충만해야 합니다(7절). 어떻게 주님의 영광의 충만할 수 있습니까? 학개 선지자는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고 합니다(7절). 하나님의 성전은 보배를 통해서 영광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입니다. 오직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본문에서 ‘보배’ 위에 작은 1자를 표시하고 아래에서 ‘사모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7절). 그러므로 우리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이 보배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사모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편 기자는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합니다(시73:25). 하늘과 땅에서 오직 사모하는 보배가 주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어떨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보배가 된다면 천국에 대해서 어떤 부연 설명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기 때문에 천국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땅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 보배가 된다면 어떤 시험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보다도 다른 것을 사모하기 때문에 시험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고난이 있다면 오직 주님만을 사모하는지에 대한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오직 보배 되신 주님만을 사모함으로 믿음을 굳세게 세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들이 겉모습에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함으로 믿음을 굳세게 세우며, 사람들의 말보다 주님의 말씀으로 방향을 잡아서 믿음을 굳세게 세우며, 세상에서 무능하고 초라해질수록 성령의 위로로 하늘의 소망을 가지게 하소서. 하늘과 땅에서 오직 사모하는 보배는 주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모든 교회들이 오직 보배 되신 예수님만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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