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약 --------------------/호세아

호 11장 1-11절(하나님의 짝사랑) - 문기태

by Preacher 2023. 4. 25.
728x90
반응형

호11장 1-11

하나님의 짝사랑

문기태 목사 2015.11.01

창원침례교회 http://whttp://www.changwon.or.kr/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호세아 11장 1-11절)

 

신학생 시절에 한 여학생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선물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하며 그 학생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가족들의 핑계를 댔습니다. 그 여학생과 잘 되기를 바라는 어떤 사람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고향 집을 찾아 가라고요. 그래서 고향 집에 찾아가 부모님을 만나고 먼저 가족들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시골집에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온갖 시도를 하며 노력했지만 결국 짝사랑으로 끝났습니다. 짝사랑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짝사랑은 괴롭습니다. 짝 사랑은 큰 아픔이 되는 때가 많습니다. 서로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서로 사랑할 때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 호세아에는 안타까운 Love Story가 있습니다. 호세아가 사랑하는 아내 고멜은 남편을 배신하고 창녀의 소굴로 도망쳐 버리고, 남편 호세아는 창녀굴로 찾아가서 팔려간 고멜을 다시 돈을 주고 사서 데려옵니다. 그렇게 헌신적인 사랑을 하지만 고멜은 또다시 남편을 배신하고 뛰쳐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들에게 가서 이용당하고 자신을 싸구려로 팔아버립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흉하게 망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앓이를 하는 호세아의 마음을 찢어집니다. 그녀의 배은망덕한 사랑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외면하고 우상을 찾아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돌아오라고 수없이 말씀하시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에 엉뚱하게 마음을 빼앗기고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으로 일그러져갔습니다.

 

2절에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계속되는 배신은 하나님을 짝사랑하며 속앓이를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짝사랑의 몸살을 앓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애굽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그 크신 사랑을 금새 잊고 애굽의 종살이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복된 나라로 세우시려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방나라들을 동경하며 흉내 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성막과 성전을 주시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도록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풍요의 신, 다산의 신, 쾌락의 신을 찾아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며 가증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문제를 두고 깊이 고민하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그들의 삶 속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너무 많이 들어와서 온갖 부도덕과 불의로 가득 차고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 수 없도록 타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8절,'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도시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면 유명하지만 아드마와 스보임이라고 하면 잘 모릅니다.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 상태는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아드마와 소보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무서운 성적인 타락과 불법과 부패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동성애와 같은 변태적인 성 행위가 만연되어 있었고 착취와 학대가 가득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모습은 멸망 당한 소돔과 고모라와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죄를 생각하면 그들은 유황불로 멸망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심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생각이 돌고 돕니다. 무슨 뜻입니까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처럼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붙들어 주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지 않게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엄청난 갈등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이 불 붙듯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 속에서 건져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은 원치 않으십니다. 할 수만 있으면 그들을 살려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만한 것이 그들에게서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결단을 내리십니다. 9절,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임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사람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깊이 이해하십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우리의 죄 짓는 본성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아드마와 스보임같은 심판으로 하시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부담으로 돌리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무슨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성을 깊이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진노로 그들을 찾아가지 않고 그들 가운데 거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어떤 계획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 자신에게 돌리고 아들을 십자가에 다심으로 이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의 포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보임이나 아드마같이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에 대하여 오래 참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 씌우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 사함 받았습니다. 죄에 대해서는 자유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정한 기간 동안 노예상태로 버리신 다음 어떻게 하십니까 다시 그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10-11절,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전부 자신의 부담으로 돌리신 후에 큰 소리―사자같은 큰 소리―로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십니다. 그러면 포로로 잡혀 간 모든 곳으로부터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새같이 비둘기같이 거역하지 않고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큰 소리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누구든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온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다 듣고 포로 된 곳에서 돌아와 자기 집에 거하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됩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자를 먼저 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잃은 양을 찾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버림받은 자들을 은혜로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오순절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 세계에서 몰려 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고 그들이 회개하여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시는 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원래 택한 백성들이 아닌 우리들까지 사자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성을 두고 깊이 고민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모두 다 아드마와 스보임처럼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긍휼이 불 일듯 하셔서 우리를 불로 멸망시키지 않고 그 모든 책임을 하나님 자신에게로 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는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책임을 아들의 십자가에 돌리시고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옛 이스라엘백성처럼 끝끝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에 깊이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의 위대한 부르심에 기쁨으로 나아오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며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엄청난 고민가운데 세워진 십자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불순종하고 거역한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부도덕하고 부패하며 타락한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온갖 탐욕과 정욕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불신의 죄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불붙듯 그 마음에 가득하여 그렇게라도 하셔서 우리를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려고 대신 당신의 아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처럼 여러분을 향한 사랑이 가득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짝사랑하도록 외면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침을 눈을 뜨고 밤중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번도 하나님을 의식조차 않으며 다른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내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지 아무 관심도 없으며 나를 향해 긍휼이 불 붙듯 하시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말씀 드리지 않고 내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이 어떤 때에 슬퍼하시며 어떤 때에 기뻐하시는지 아무 관심도 없이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짝사랑의 불행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을 날마다 깊이 발전시켜가는 슬기로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