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14장 1-9
내가 네게 이슬과 같으리니
허창수 목사 17.04.02 1
동성교회 [창원시] https://https://cafe.daum.net/huhcs48/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양이나 송아지를 잡아 제물로 드림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돌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않고 이방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이방신과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짐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신앙행위입니다. 예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예배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예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했다고 해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예배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별것 아닌 이유로 예배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아주 위험한 행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 하였고 손으로 지은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하였습니다(3). 하나님을 떠나므로 ‘고아’처럼(3) 되었고 불의함으로 엎드려졌습니다(1).
하나님을 떠나므로 고아처럼 버려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호세아는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1)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모든 재앙의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에서 떠난 데 있습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올바른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3절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말씀입니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2)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란 ‘모든 불의를 제거 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라는 말입니다. 회개의 기도와 사죄의 은총에 대한 감사 찬송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제물은 수송아지였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습관적으로 하나님께 수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지냈습니다. 귀한 제물을 바쳤지만 회개가 동반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진정한 예배를 드릴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진정한 제사는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회개하는 자의 상한 심령이요 입술의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앗수르를 의지하였던 것입니다(3).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시 강대국인 앗수르를 의지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말을 탓습니다. 말을 탓다는 말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믿고 교만했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손으로 만든 우상을 우리의 신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를 청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말을 타지 아니하며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예배는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예배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시 수송아지는 제사 지낼 때 가장 귀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한 제물을 받쳐도 자신의 죄 때문에 송아지가 죽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렸던 것처럼, 습관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입니다.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비는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습관적이지는 않은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는지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수송아지가 아니라 회개하는 자의 상한 심령이요 회개하는 찬송의 입술의 열매입니다. 입술의 열매는 예수님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리이다’(시51:17)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을 떠난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신령과 진리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성도에게 최고의 축복입니다. 예배를 회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4절에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회개한 자에게 임할 회복의 축복입니다. ‘반역을 고치고’란 등을 돌리고 떠났던 백성들을 돌이켜 관계를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죄인 된 우리가 하나님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진노가 떠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회복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풍성한 사랑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회복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십니다. 오늘 말씀의 중심이 바로 ‘이슬’입니다. 5절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론의 백향목 같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슬’은 메마른 광야에 말라죽어가는 식물에게 있어서 생명을 살리는 축복을 상징합니다. 강우량이 적은 팔레스틴에서의 이슬은 초목과 농작물의 소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 이슬과 같으리니’란 말씀은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성립되면 하나님께서 이슬 같이 되셔서 죽은 영혼을 소생 시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가뭄이 계속되어도 이슬이 내리면 식물은 말라 죽지 않습니다. 식물들의 잎과 줄기를 보면 이슬을 받아 자신의 뿌리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이슬만으로도 식물이 자랄 수 있습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므로 엘리야가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만 내리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왕상17:1). 이슬이 내리지 않는 것은 무서운 저주입니다. 이슬도 내리지 않으면 모든 식물들을 다 타 죽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치 가뭄으로 타 들어가는 것과 같은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가 매우 심각합니다.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마치 가뭄에 타 들어가는 것처럼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만 올바르면 하나님께서 이슬이 되셔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슬과 같은 축복이 매우 필요한 때입니다.
그럼 이슬이 주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먼저 아름다움의 복을 받습니다. ‘내가 네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5), 이슬이 내림으로 백합화 같이 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백합화는 희고 향기가 좋으며 자태가 고울 뿐 아니라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백합화는 순결하고 아름다움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예배를 회복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이슬같이 되셔서 영육간에 매우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백합화는 티가 없고 맑고 순결하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실 때 백합화와 같이 아름다움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처럼 맑고 순결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는 것도 부담이 되고 전화만 들어도 부담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즐거움을 줍니다. 백합화는 보는 사람마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이슬과 같이 되시면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심으로 안전의 복을 받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5)고 하셨습니다. 뿌리가 깊지 못하면 약간의 비바람에도 흔들리고 뽑히게 됩니다. 그러나 뿌리가 깊이 박히면 어떤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하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직장이 불안하고, 자녀들이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바람 앞에 등불처럼 매사가 불안합니다. 이슬이 주는 축복이 없기 때문에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고 작은 비바람만 쳐도 흔들리고 뽑혀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슬과 같이 되신다면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직장과 사업이 안전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바르게 자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슬 같이 되셔서 뿌리가 깊이 박힌 레바론의 백향목과 같은 흔들림이 없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심으로 성장과 번영의 복을 받습니다. ‘그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도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의 백향목 같으리니’(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퍼지며’란 성장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성장과 육적인 번영의 복을 주십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도 같다’는 말씀은 잎과 열매가 다 같이 무성한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신다면 여러분의 가정은 번영하고 사업은 확장되고 재산이 늘어나고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슬과 같이 되심으로 여러분에게 가지가 퍼지고 아름다움이 넘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 향기는 레바논 같으리니’란 향기가 주변에 진동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의 삶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아름다운 향기는 많은 사람을 돌아오게 하여 거주하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 ‘그 그늘 아래’란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신다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그늘 아래 거주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슬이 되심으로 곡식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의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7). 하나님께서 내게 이슬 같이 되시면 내가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슬 같이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슬 같이 되실 수 있는 것은 예배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이슬이 주는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슬이 주는 복은 눈에 보이지 않게 소리도 들리지 않게 내리는 복입니다.
이렇게 이슬이 주는 복을 받은 자는 고백합니다. ‘내가 다시는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라고 고백합니다. 지난날에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때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 이였던가를 비로소 깨달았다는 고백입니다. 진심어린 회개요 고백입니다. 다시는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응답은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8)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오세요. 예배를 회복하세요.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슬같이 되시므로 이슬이 주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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